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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육군부사관학교의 학교교육계획. 부사관 양성 과정에 대한 교육 과정과 계획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육군부사관학교의 학교교육계획. 부사관 양성 과정에 대한 교육 과정과 계획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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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하다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경우를 곧잘 만나곤 하는데 오늘은 그 뒷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시작은 제보였습니다. 부산 D대학 부사관학과의 군 출신 교수와 강사 일부가 전역할 때 민감한 군 내부 자료를 들고 나와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사실 이 사건은 지난해 말 부산 지역 언론 등을 통해 한 차례 보도가 되기도 했던 사안입니다. 그런데 경찰의 수사는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했고, 이후에도 유사한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제보였습니다.

그 사례로 건네받은 것은 육군부사관학교에서 사용하는 학교교육계획이었습니다. 100페이지 가량의 책자에는 육군의 부사관 교육과정, 교육 평가계획, 교육 훈련관리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전문가인 기자 눈에도 군 간부 양성 과정이 외부로 유출된다는 것은 문제로 보였습니다. 

관건은 정말 이 자료가 군사기밀이나 대외비에 해당하는지였습니다. 이에 대해 육군 공보과 관계자는 기자와 한 통화에서 해당 자료가 "교관들이 참고하는 것이지 비문(비밀문서) 내용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공개돼도 상관이 없는 내용으로 꾸려져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육군부사관학교 관계자도 기자와의 통화에서는 이 책자가 "비문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공개해도 상관없다더니... 정보공개청구하자 딴소리

국방부 청사를 방호 중인 군 병력.
▲ 진압곤봉 들고 대기 중인 군 병력 국방부 청사를 방호 중인 군 병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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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이 빠졌습니다. 군에서 해당 자료가 일반에 공개해도 문제가 없는 내용이라 밝힌 만큼 취재를 이어나가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사화를 보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가 문득 이 자료를 공개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하면 군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습니다.

곧바로 국방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육군부사관학교의 학교교육계획을 공개해달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문제 될 것이 없다던 군 당국에서 의외의 등기 우편을 보내왔습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해당 자료가) 만약 공개 시 육군부사관 교육체계 및 교과 내용 등 세부 내용이 외부(적)에 노출되어 결과적으로 국익을 저해할 우려가 있어 비공개합니다." 

군 당국은 육군의 정보공개업무 처리규정 등을 비공개 사유로 들었습니다. 공개되어도 상관없다던 자료가 공개해서는 안 될 자료가 된 겁니다. 군 관련 자료의 보안성을 군에서 판단하다 보니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의심이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때그때 줄었다 늘었다 '고무줄' 군사보안... 왜?

군 장병 교육 모습.
 군 장병 교육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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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의 이런 태도는 관련 수사의 진도마저 가로막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관련 사건은 부산지방경찰청에서 맡아 수사를 벌이고 있는데요. 경찰 관계자는 "군 수사를 경찰이 못 하니 (군에서) 협조를 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협조가 잘 되지 않아 답답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취재 과정 중 만난 한 군 출신 인사는 "유출된 자료가 설사 비문에 해당하더라도 관리와 유출에 대한 책임을 군이 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공개가 돼도 무방하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의 황수영 간사는 군 당국의 지나친 비밀주의를 탓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보공개포털을 살펴보면 올 상반기를 기준으로 국방부의 행정정보 원문 공개율은 7.2%로 정부 부처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원문공개율이 가장 높았던 산림청 (68.7%)에 비할 바가 아니라, 중앙행정기관 평균인 33.7%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습니다. 한때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원문공개율로 손가락질을 받았던 외교부도 지난해보다 10% 이상 원문 공개 비율을 늘렸으나 국방부만 제자리 수준인 겁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보통 군 당국은 국방의 특수성을 따져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안보와 국익이란 이름 뒤에 숨은 책임회피와 무사안일주의가 있는 건 아닐까요. 정책 기조 중 하나로 '국민존중의 국방정책 추진'을 꼽고 있는 국방부. 부디 이 말이 그럴싸한 헛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국방부, #군사보안, #정보공개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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