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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는 군사정권과 야합한 3당합당에서 시작되었다. 김영삼은 90년 3당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문민정부를 자임했다. 사진은 지난 2003년 2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노무현) 취임식에 참석한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
 문민정부는 군사정권과 야합한 3당합당에서 시작되었다. 김영삼은 90년 3당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문민정부를 자임했다. 사진은 지난 2003년 2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노무현) 취임식에 참석한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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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군사정권에서 권위주의 산업화 시기를 겪었던 국민들은, 민주화 항쟁 끝에 1987년 노태우로부터 6.29 민주화선언을 받아냈다. 비록 군사정권이 5년 더 생명을 연장했지만, 90년대 한국 사회는 변화의 흐름을 맞이한다.

임금과 평균 여가 시간은 늘었으며, 주당 노동 시간은 줄었다. 성장위주 경제정책에서 소외됐던 노동자들의 경제적, 문화적 숨통이 조금은 트였다. 그러나 당장 문화생활 선택지가 넓진 않아서, 국민들은 여가시간 대부분을 일방향적 대중매체인 텔레비전을 보거나 잠으로 보냈다. 그나마 이루어지는 문화생활도 학력, 경제적 계층, 도시와 농촌에 따라 불평등하게 이루어졌다.(통계청: 1996 요약)

결국 권위주의 산업화는 '문화적 불평등'이라는 쉽게 떨치기 힘든 후유증을 남겼다. 또 텔레비전처럼 '가깝게' 즐길 수 있는 매체가 생긴다면, 국민들이 여가시간을 쓸 가능성이 높은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이때 등장한 게, 바로 'PC통신'이다.

풀뿌리 네트워크에서, 자본주의로... PC통신 점점 현실과 '닮은 꼴'

지난 2013년 tvN에서 방영돼 평균 시청률 10.4%을 기록하는 등, 크게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1994>의 스틸컷. 지금의 초고속 인터넷망 등장 이전, 80년대 후반~9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PC통신이 등장하고 있다. 당시에는 PC가 보급되지 않은 가정이 많아, 국가자본이 PC와 비슷하게 생긴 소형 단말기를 보급하기도 했다.
▲ 신인류의 사랑 지난 2013년 tvN에서 방영돼 평균 시청률 10.4%을 기록하는 등, 크게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1994>의 스틸컷. 지금의 초고속 인터넷망 등장 이전, 80년대 후반~9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PC통신이 등장하고 있다. 당시에는 PC가 보급되지 않은 가정이 많아, 국가자본이 PC와 비슷하게 생긴 소형 단말기를 보급하기도 했다.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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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PC통신 절정기였던 97년도에 이만제 교수(원광대 신문방송)가 발표한 257쪽 분량의 연구를 발굴해보았다. 노태우가 6.29 선언을 한 87년 바로 그해, <한국경제신문>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PC통신 서비스 케텔을 시작한다. 이후 국가자본인 한국통신(KT)과 합작으로 회사를 설립해, 92년도부터 케텔을 '유료화'하고 그 유명한 하이텔로 이름을 바꾼다. YS가 대통령이 되던 해다.

이 교수는 유료화 이전을 '전(前) 산업적 단계'로 설명한다. 이땐 소수의 컴퓨터를 좋아하던 개인들이, 자기 PC로 소규모 사설 BBS(전자게시판)를 운영해 통신 문화를 형성했다. 이들은 아직 '모든 정보와 지식은 인류의 공유재산'이라는 개념이 강해, 저작권과 상관없이 자료를 공유했다. 또 친목모임의 성격도 지녔었다. 인류사에 빗댄다면, 일종의 원시 공산사회나 풀뿌리 네트워크에 가까웠던 셈.

그런데 PC통신 유료화와 더불어, '산업적 단계'로 접어들고 자본이 유입되면서 상황은 바뀐다. 하이텔·천리안(데이콤)·유니텔(삼성SDS)과 같은 거대자본이나 나우누리 같은 중소자본의 서비스들이 급부상한다. 이들은 자본력을 밀어붙여, 사설 BBS가 감당하기 힘든 양의 정보를(마치 현재 포털처럼) 제공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PC통신 서비스가 유료화된 이상. 다른 문제는 전화요금이다. 당시는 전화선을 PC에 연결해 접속하는 방식이어서, 전화요금이 많이 들었고 특히 사설 BBS 운영자들의 부담이 상당했다. 이때 PC통신사와 한국통신은 통신인들에게 고속 전용망을 개설하거나, 전화요금을 할인해 주는 등 '고객 유치' 전략을 쓴 것이다. 한편으론, 자신들 서비스 내에 기존 사설 BBS를 '흡수 통합'할 수 있는 동호회 코너를 마련해 각종 혜택을 주는 전략도 쓰면서...

자본주의 앞에서, 사설 BBS는 복속되고 말았다. 92년 하이텔 유료화 직후 하이텔 가입자 중 24.3%가 여전히 사설 BBS를 이용했지만, 94년에 2%로 급감한다.(한국정보문화센터: 1992, 1994) 즉 PC통신 문화가 풀뿌리 공동체적 성격이 약화되고, 자본주의 영향 하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셈이다.

PC 보급 증가, 기술의 발전, '정보화사회' 담론들도 연이어졌다. 마침내 95년 공식 PC통신 유료 가입자가 약 190만 명에 이르렀고(통계청: 1996), 시장규모 800억 원에 매년 50%씩 성장이 전망됐다.(전자신문사: 1996)  이렇게 PC통신은 텔레비전처럼 국민들에게 '가깝게' 즐길 수 있는 매체가 되고, 자본주의 영향 하에 들어왔다. 이제 PC통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밖과 '닮은 꼴'의 일들이 일어난다.

당신이 얼마나 밑천을 가졌느냐에 따라, PC통신 내 지위가 결정된다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스틸컷. 당시 PC통신은 접속시, 파란 바탕의 배경이 뜨고 게시판이나 자료실 등을 선택해 이용할 수 있는 단순한 구조였다. 지금은 유무선 랜을 통해 초고속 인터넷망 이용이 가능하지만, 이 때는 속도가 매우 느린 모뎀에 전화선을 연결해 접속했다. 따라서 주로 이미지를 제공하는 인터넷 브라우저는 이용하기에 상당히 답답하다는 제한이 있었고, 텍스트를 주로 제공해 송수신 자료용량이 상대적으로 작은 PC통신이 강세였다.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스틸컷. 당시 PC통신은 접속시, 파란 바탕의 배경이 뜨고 게시판이나 자료실 등을 선택해 이용할 수 있는 단순한 구조였다. 지금은 유무선 랜을 통해 초고속 인터넷망 이용이 가능하지만, 이 때는 속도가 매우 느린 모뎀에 전화선을 연결해 접속했다. 따라서 주로 이미지를 제공하는 인터넷 브라우저는 이용하기에 상당히 답답하다는 제한이 있었고, 텍스트를 주로 제공해 송수신 자료용량이 상대적으로 작은 PC통신이 강세였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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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에 따르면, 산업적 단계의 이용자들은 '정보지향/오락지향', '고참여/저참여'를 기준으로 크게 네 유형으로 나뉜다. 후자를 나누는 건, 월 1~2회라도 통신망에서 유통될 '상품(게시물)' 생산 여부다. 또한 네 유형은 각자가 가진 밑천 즉 학력, 통신 경력, 글쓰기 능력, 경제적 지위, 이용시간 등. 소유한 문화자본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 또 PC통신에 대한 의미부여도 다르다.

'정보지향 고참여형'은 '논객'의 초기 모습이다. 소위 명문대 출신이 많고, 대학교지나 운동권 출신도 꽤 있었다. 자주 전문적 글쓰기를 했으며, 비교적 긴 통신경력을 지니는 편이다. 또 PC통신을 주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할 수 있는 자유롭고 평등한 정보 공동체나, 의사소통 공론장으로 의미부여하는 경향이 강했다. 주로 동호회 활동이 왕성하고, 한결같이 불편해하는 건 인터넷이 '느리다는 것' 뿐.

'정보지향 저참여형'은 '눈팅족'의 초기 모습이다. 정보불평등 사회를 우려하는 예민한 감각을 보였다. 그러나 사회 변화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피곤하지만', 꿀벌처럼 정보를 열심히 수집하는 경향을 보였다. 소위 비명문 대학 출신이 많고, 비교적 통신경력과 이용시간이 짧은 편이다. 특이하게도 통신을 텔레비전처럼 일방향적 매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오락지향 고참여형'은 월 평균 400 이상 '고소득'이 많다는 게 특징이고, 학력은 고르고 통신경력도 중간 정도다. 이들의 코드는 '정보화사회가 별 거 있냐'는 식이다. 통신은 그저 흥미위주로 즐기는 매체이며, 자본주의 발전에 필요한 방향이라고 간단히 규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동호회, 채팅, 성인자료 공유 등 활동폭이 넓고, 주로 시간을 때우려고 이용하면서 가끔 '의미없는 글('뻘글'의 초기형태로 보임)'도 쓴다는 고백도 눈길을 끌었다.

'오락지향 저참여형'은 '채팅족'들이 많다. 논객이나 눈팅족이 채팅을 부정적으로 보고, 심지어 '감정 배설'이나 '인생 낭비'로 깎아내린다면. 이들은 '통신'하면 주로 채팅을 많이 떠올리는 코드를 지녔다. 또 통신을 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오락적 기호에 따른 선택이 폭이 넓은, 특별한 대중문화로 보는 건 고참여형과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게시판 글쓰기를 거의 안 하고, 채팅에 더 열광한다는 점.

이들도 '정보화사회' 담론을 피곤해하고, 불평등한 사회로 의미규정해 이 점에선 눈팅족과 비슷했다. 차이는 통신경력은 길지만, 주로 지방대나 전문대 출신으로 비교적 낮은 문화자본을 지녔고 정보가 그리 필요한 입장이 아니라는 점.

초고속 인터넷망이 보급되면서, 설국열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영화 <설국열차> 스틸컷. 얼어붙은 항구, 컨셉아트 버전.
 영화 <설국열차> 스틸컷. 얼어붙은 항구, 컨셉아트 버전.
ⓒ CJ엔터테이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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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급격한 '산업적 단계'를 맞이한 통신인들 사이에 통신 밖에서부터 후유증으로 남아있던 '문화적 불평등'이 안에서도 가시화된 셈이다. 각자가 지닌 문화자본(학력, 경제적 지위, 통신 이용경력 및 글쓰기 능력 등)이 달라, 통신에 대한 의미부여와 실천도 다르다.

이 교수는 자신이 게시물 수집, 참여관찰, 심층인터뷰를 통해 분석한 '대중매체 모니터링 동호회'(아래 대모동)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대모동은 초기부터 PC통신에 자리 잡았던, 논객 성향의 통신인들이 설립한 동호회다. 취지는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 같은 대중매체를 모니터링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느낌대로 자유롭게 비평해보는 비주류 운동이었다.

그런데 회원이 점점 유입되며, '전문적 글쓰기'를 강조하는 고참자와 '자유로운 관계와 친목'을 강조하는 일부 신참 운영진 사이의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서로 각자 동호회에 대한 의미부여를 인정해달라는 '투쟁'이 일어나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정작 회원 대부분이 저참여 유형이라 이 논쟁에 끼지도 못하고 맥락과 동 떨어진 글을 쓰는 등 '겉도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

이 교수가 여기서 주목하는 건 바로 이 '저참여 유형'의 회원들이 기존 질서를 재생산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동호회에 참여한 지도 얼마 안 됐고, 문화자본도 적어 게시판 논쟁에 대해 '당황스럽고 두려운' 마음을 가진다. 동호회가 자기 취향과 안 맞으면, 언제든지 짐을 쌀 준비도 돼 있다. 그러나 이들이 '오인'하는 건, 자신들도 대모동의 정체성을 의미규정하고 '상품(게시물)'을 생산할 권리가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투쟁은, 주류였던 논객 진영의 승리로 끝나고 이들은 '명성'을 얻는다. 이렇게 명성을 얻은 통신인들의 게시물들을 '상징상품'이라고 부른다. 이 상징상품은 글로 엮어, 시중에 출판하는 등 '경제상품'으로 전환될 잠재성도 지닌다. 그리고 여기서 이 교수가 던지는 질문은 의미 심장하다. 이러한 일련의 동호회 활동과 투쟁과정에서, 서로 상처받고 일부 만이 이윤을 쟁취하게 되는 동안 정작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주체가 누구인지 말이다.

답은 바로, PC통신사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본가들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자들을 임금으로 부려 상품과 잉여가치를 생산케 한다. 노동자는 결국, ① 자신의 임금 ② 상품 ③ 잉여가치 모두를 스스로 생산한다. 철학자 칼 맑스는 이를 자본가의 '착취'라고 생각했다. 이 교수는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이론으로 문화의 영역, PC통신에서도 '상징상품' 생산을 통해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고 설명한 셈이다.(통신인들은 '임금'을 받긴 커녕, '요금'을 내기 때문에 사정이 더 나쁘다).

그렇다면, PC통신이 산업화 단계에 접어든 이후 사이버공간은 <설국열차>의 모습과 가까워졌다. 이 안에서는 서로의 투쟁이 일어난다. 그러나 최종적인 승리자는, 꼬리칸 승객도 머리칸 승객도 아니다. 행복한 건 열차, 오직 열차 뿐이다. 그리고 98년 '두루넷'과 같은 초고속 인터넷 망이 보급된 이후, 이 열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교수의 논문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미래사회는 PC통신 문화가 현재의 양상대로 발전된다면 그 문화장 내에서 문화적 불평등이 존속되리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우리는 열차 밖 광장에 모여, 인류애를 되찾을 수 있을까
▲ 당신은 꼬리칸 승객인가, 머리칸 승객인가 우리는 열차 밖 광장에 모여, 인류애를 되찾을 수 있을까
ⓒ CJ엔터테이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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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현실에 직면하고자, 누군가의 향수에 금을 내는 일을 해야한다는 건 곤혹스러운 일이다. 특히 3040 세대가 간직한 90년대 PC통신 감성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 나정(고아라)의 다음 독백처럼, 3040 세대와 PC통신 자체를 분리해 본다면 조금은 위안이 되진 않을까.

"PC통신으로 사랑을 찾고, 삐삐로 마음을 전하며, 음성메시지로 이별을 통보하던... 우린 역사상 가장 젊은 인류였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신인류의 사랑이 설레고 가슴뛰는 이유는 삐삐도, 스마트폰도, 최첨단의 그 어떤 유행 때문도 아니다. 젊음은 서툴고 투박해야 하며, 사랑은 해맑고 촌스러워야 한다. 그것이 내 스무살의 사랑이 설레고 가슴뛰게 기억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태그:#PC통신,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응답하라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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