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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1월 10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장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한 뒤 서명서를 교환하며 악수하고 있다.
 지난 2014년 11월 10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장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한 뒤 서명서를 교환하며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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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FTA가 이르면 9월 발효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4년 11월 배포한 '한중FTA의 의미와 기대효과' 제하의 보도자료에서 "한중FTA가 역내 경제협력 및 동북아 지역통합 활성화 움직임 속에서 우리나라가 핵심축(linchpin)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고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구축과 한반도 평화 안보에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과연 정부 주장은 외교적 수사 이상의 실질적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한중FTA 협상결과와 작금의 동아시아 현실에 비춰보건대 그렇게 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체결에 급급했던 '외교 이벤트' 한중FTA

한중FTA 논의는 2004년 민간공동연구가 시작되어 국회에 비준동의안이 제출되기까지 10년도 넘게 끌어왔다. 2014년 11월 '실질적 타결'이란 이름에 따라 외교적 개가를 올린 쪽은 중국이다. 중국은 자국이 개최한 APEC 회의에서 미국에 보란 듯이 자국봉쇄를 중핵으로 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항할 포석을 놓은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가 챙긴 이득은 뭘까? 당시 정부는 12조 달러 거대시장이 탄생했다며 협상성과를 홍보하기에 바빴다. 올 6월 협정문이 공개되면서 비로소 드러난 한중FTA 협정의 전모는 '체결에 급급했던 외교 이벤트'로 집약된다.

첫째,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시장개방이 중간 수준에 그쳐 상대국시장 선점보다는 자국시장 보호에 치중했다. 서비스와 투자 시장 개방은 기존의 개방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음에도 일단 포지티브 방식으로 개방한 뒤, 발효 2년 후 네가티브 리스트 방식(금지된 목록만 나열하는)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한 데 그쳤다.

사실상 경제적으로 유의미한 협상이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양국 모두가 서로에게 1위, 2위를 차지하는 무역상대이며 워낙 지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급격한 개방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다. 이 점은 어느 정도 불가피성을 수긍할 수 있겠다. 중국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력, 한미FTA 이후 중국의 집요한 한중FTA 협상개시 요구를 마냥 거절하기 힘들었던 사정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장에도 양허이익의 균형을 추구했는지, 국익을 제대로 챙겼는지는 냉정히 따져 볼 일이다. 이 점이 협상의 두 번째 특징다. 부실협상 의혹이 제기되는, 서둘러 봉합한 협상이라는 점이다.

지난 6월 17일 국회에서 주최한 '한중FTA 검증 종합 토론회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측은 그 징후를 곳곳에서 제기하였다. 예컨대 한중FTA 서명일인 6월 1일 중국이 자발적인 관세인하를 단행한 품목은 화장품, 의류, 신발, 기저귀 등이다. 이들은 정부가 한중 FTA를 통해 중국시장 선점의 길을 열었다고 자화자찬했던 대표적인 품목들이다. 더욱이, 중국정부의 자발적 인하폭이 한중FTA에서의 그것을 상회한다.

중국은 서비스와 투자 분야에서도 '외상투자산업지도목록'의 2015년 개정을 통해 자발적인 추가개방을 단행했다. 그것이 한중FTA에 반영되지 않거나 제외되었다. 그리도 중요성을 강조했던 중국의 비관세장벽 중 기술장벽과 통관절차의 완화조치도 한중FTA에 담지 못하였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중국이 뉴질랜드와 스위스와의 FTA에 포함시킨 '최혜국 대우'가 제외되어 향후 중국이 제3국과의 FTA에서 한중FTA보다 높게 양허해 줘도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중국의 WTO 정부조달협정(GPA) 가입협상이 초읽기에 들어갔는데도 한중FTA에서는 정부조달 장이 아예 없다. 중국산 먹을거리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불안감은 날로 더해 가는데 이를 막는데 중차대한 위생검역(SPS) 장은 선언적 수준에 불과하다.

셋째로, 정부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한중FTA에는 한반도 평화정착과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미래를 그리는 청사진과 철학도, 미국형 혹은 유럽형에 견줄 만한 동아시아형 FTA 모델을 만들고자 고민한 흔적도 잘 안 보인다.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공공성과 정책주권 강화를 위한 고뇌의 흔적이 ISD, 지식재산권 혹은 환경 챕터에서 발현될 법하다. 하지만 환경 챕터는 원론적 언급에 그치고 노동 챕터는 아예 없다.

개성공단 관련 조항은 기존 것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양국 공통현안인 '압축 성장'에 이어 FTA를 통한 '압축 개방'의 폐해나 '격차 심화'를 완화하려는 노력은 낮은 수준의 시장양허에 갇혀있을 뿐이다. 양국이 맺는 건 낮은 수준의 FTA이니 그런 문제 해결은 각자의 몫이라 여기는 듯하다. 서문에서나마 선명한 미래 비전과 철학을 제시해 주며 과연 중국과 한국이구나 인정받길 기대하는 건 무리였던가.

한미FTA 모델을 차용한 한중FTA

한국은 FTA의 허브가 되고 지역통합의 린치핀이 되겠다고 한다.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두 나라가 체결한 FTA가 의외로 한미FTA의 템플릿을 차용했다는 점이다. 한미FTA 협정문과 한중FTA 협정문은 각각 국문 기준 678쪽, 290쪽으로 분량 면에서 후자가 전자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런데 후자의 각 장 순서 및 명칭이 전자와 매우 유사하다. 한중FTA 협상에 참여한 고위 관계자에 대한 인터뷰(2014년 8월 실시)에서 한중FTA 협정문 작업 시 중국이 한미FTA를 적극 참고하며 이를 기초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이 한미FTA 모델을 빌린 이유는 필자가 만난 복수의 중국 측 관계자에 더해 중국사회과학원 APEC·동아시아협력연구센터 부주임 센밍후이(沈銘輝, 2015)의 최근 발언에서 유추 가능하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상하이자유무역구에서 국내 최초로 도입한 내국민대우, 네가티브 리스트 등을 한중FTA와 중미BIT 협상에 적용시켰다.

중국이 국내에서의 점진적 구조개혁실험의 외연을 대외적으로 점차 확대해 가는 개방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은 동북아의 안보지형상 자국 영향권 내로 끌어와야 하는 나라다. 그런 한국이 2011년 전형적인 미국FTA 모델에 충실한 한미FTA를 발효시켰으니 그에 기반한 한중FTA를 맺으면 미래 지역통합과 WTO 다자협상에서 서비스, 투자, 국영기업 관련 규범, 지식재산권 등의 규범 제정 시 미국과의 한 판 승부에 대비한 예행연습에 적격인 것이다. 한국은 중국의 스파링파트너였다.

이리하여 두 나라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지속가능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 미국식 경제시스템을 집약해 놓은 FTA 모델을 자국에 이식시키게 된다. 그것이 자국과 동아시아에 적합한 모델인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선진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믿은 것인가?

패자(覇者)의 공존지대 혹은 공백지대, 동아시아

ⓒ 김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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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지역내 양자간 FTA가 일단락되면서 한미FTA를 기화로 벌어지는 패권다툼이 메가 FTA 시대를 몰고 왔다. 지역을 넘어서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는 강대국 간 메가 FTA 경쟁으로 인해 이제 '지역통합'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특히 동아시아는 미중 간 갈등에 더해 중일 간 갈등 등 역내국 간의 복잡한 갈등구도로 인해 어느 일방의 주도력이 관통하기 어려운 패권의 공존지대 혹은 공백지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때론 동북아로, 때론 동아시아로 또 때론 아태지역으로 누구의 지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지역범위도 달라지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지역이다.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향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 전역과 유럽, 아프리카까지 아우르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과 이를 뒷받침할 AIIB 설립 카드는 중국이 자신의 '나와바리' 지역을 넘보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맞서 글로벌 차원에서 던진 승부수라 할 수 있다. AIIB 설립은 기축통화국 미국에 브레튼 우즈 체제 붕괴에 버금가는 충격으로 기록될 만하다.

미국이 언제까지고 AIIB 밖에 머무르며 중국의 확고한 주도력 확보를 관망하진 않을 것이다. 결국 적절한 명분을 마련해 그 안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AIIB는 중국과 미국의 패권 주도를 둘러싼 각축장이 되어 양자간 이해관계가 제대로 조정되지 못하면 아시아의 인프라 건설이란 모처럼의 호재도 적잖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복잡다기한 역학관계로 인해 중국이나 미국 일방이 주도하는 지역 경제협력이나 통합은 난망하거나 험난하다. 역내국 간 상호의존도가 높아지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기술과 에너지까지, 자본시장과 최종재 시장을 역외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니 역내 FTA 논의의 궁극적 지향점이나 가치에 대한 합의는 불가능에 가깝다. 상당기간 가장 낮은 통합 단계인 FTA, 그것도 역내에 국한되지 않는 '열린 지역주의'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을 내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져 보자. 한국이 동아시아 통합의 핵심축이 되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앞당길 수 있을까? 정부는 우리가 49개국과 FTA를 발효하여 FTA 허브가 되었다고 자랑하나, 정작 16건의 발효·타결된 FTA를 관통하는 '한국형 FTA' 모델은 보이지 않는다. 12건의 FTA에서 개성공단을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하는 조항을 포함시키고자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내주었으나, FTA 네트워크를 활용한 개성공단산 제품의 수출실적은, 허망하게도 전무하다.

한중FTA에서 특히나 기대를 모았던 개성공단 관련 조항의 개선은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분단국 서독이 유럽통합과 자국통일을 용의주도하게 엮을 수 있었던 이면에는 경제력이라는 확고한 하드파워와 장기적 안목으로 유럽통합에 헌신한 외교역량, 즉 소프트 파워가 있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지역통합을 촉진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앞당기는 핵심축으로서 요구되는 하드 파워는 무엇이고 소프트 파워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가졌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아니 그보다 시급한 질문이 있다. 왜 한국은 타결 자체에 급급해 부실협상 의혹을 사게 되었는가? 혹여 정부의 통상업무가 이관되는 과정에서 원활한 인수인계가 되지 못한 것인지, 그래서 부실협상 결과에 누구도 책임질 사람이 없는 건 아닌지, 행여 타결을 서두르라는 상부지시에 제대로 협상도 못하고 봉합한 것은 아닌지, 국회는 다가올 한중FTA 청문회에서 필히 이 합리적 의심을 풀어야 한다.

○ 편집ㅣ박헤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양희 교수는 대구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한중 FTA, #AIIB, #동아시아공동체, #동아시아 경제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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