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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현대 미술 축제인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지난 5월 9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베니스 비엔날레(Venezia Biennale)는 '휘트니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 축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 세계적인 미술 축제에서 한국 작가가 은사자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예술계의 경사다. 더욱이 이번 수상이 주목받는 것은 수상 작가가 해외 유학파도 아니며, 그동안 관심에서 멀어졌던 노동 현장과 정치 이슈, 소외계층을 주로 다뤘기 때문이다. 그 화제의 주인공은 임흥순(46) 작가다.

임 작가는 경원대 회화과를 나와 소외받는 계층에 대한 영상 작업을 줄곧 해왔다. 2000년대 초에는 '믹스라이스'라는 프로젝트 단체를 결성해 이주노동자에 관한 문제를 영상으로 담아냈다. 이후 2013년, 한 할머니의 가족사를 통해 제주 4.3사건과 강정마을 이야기를 다룬 장편 영화 <비념>을 선보이며 미술과 영화를 넘나드는 작품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임 작가의 수상이 이번 비엔날레에서 주목받는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은사자상'. 이 상은 원래 35살 이하 젊은 작가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올해로 46살 작가가 수상했다는 것은 이변이다. 둘째는 '본 전시' 수상. 한국은 지난 1986년 처음 참가한 이래 1995년부터 국가관을 세워 한국 작가를 춤품해왔다. 한국관이라는 상설관에서 전시했던 전수천(1995년)을 비롯해 강익중(1997년), 이불(1999년)이 연속해서 특별상을 수상한 바는 있으나 본 전시에 개별 초청받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셋째는 영화와 미술의 경계라는 점이다. 미술계로 대표되는 비엔날레에서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수상한 것이 화제의 중심이다.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받은 영화 <위로공단>이 오는 8월 13일 개봉한다."

지난 2일 영화 배급사인 엣나인필름에서 임 작가의 비엔날레 수상작 <위로공단>(Factory Complex)을 개봉한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그동안 영화배급 시기에 관해 문화예술계 안팎에서 관심이 증폭됐고, 당초 연말에 발표할 계획을 앞당겨 8월로 확정한 것이다.

<위로공단>은 총 제작 기간만 4년 이상이 걸렸으며, 구로공단에서부터 캄보디아와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아시아를 넘나드는 스케일, 40년 이상의 시간을 담아내는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 영화는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과 제18회 상하이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 5월 비엔날레 수상 이후 기자는 임 작가와 두 번의 인터뷰를 통해 임흥순이 걸어온 길, 비엔날레 현장, <위로공단>까지 상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잊힌 개인사에 대한 관심"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작가는 <위로공단>을 "우리가 잃어버리고, 잊고, 사라져버린 여성 노동자들의 얼굴을 또 다른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머나먼 곳이 아니라 그것은 나의 어머니와 여동생이었다. 이론과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탕으로 신념과 마음을 전달했다"이라고 말했다.
▲ 임흥순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작가는 <위로공단>을 "우리가 잃어버리고, 잊고, 사라져버린 여성 노동자들의 얼굴을 또 다른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머나먼 곳이 아니라 그것은 나의 어머니와 여동생이었다. 이론과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탕으로 신념과 마음을 전달했다"이라고 말했다.
ⓒ 김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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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동안 '제주 4.3사건' '구로공단' '여성의 노동' 등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이슈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왔던 이유는 무엇인가.
"가족을 촬영한 영상물로 <미술주변전>(덕원갤러리, 1998)이라는 첫 전시를 했다. 가족에 대한 관심은 개인사다. 이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잊힌 개인사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 올해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오는 7월 말, 일본 동경에 있는 국립신미술관에서 일본작가 5명과 한국작가 5명이 참여하는 전시가 계획됐다. 11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교류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전시를 위해 일본 측에서 한국작가 50명과 일본작가 50명을 포함해 약 100명 정도를 만나 리서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럼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것인가?
"꼭 그렇다기보다는 전시기획 의도와 맞지 않았나 생각한다."

- 일본 쪽에서 (이번 비엔날레 수상 소식을) 좋아했을 듯하다.
"어디나 (입주 작가로) 속해 있던 곳은 (수상 사실을) 반겼다. 지난번 <월간미술>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금천예술공장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작업의 전환점이 된 곳이다. 창작 공간 없이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지역주민을 찾아가서 진행한다. 그런데 금천예술공장의 경우는 지역주민들이 이곳으로 찾아와서 하는 형식이다.

워크숍, 전시, 답사, 미술공부 등을 비롯해 수다스러운 이야기도 많이 했다. 이런 지속적인 만남은 자연스럽게 영화 워크숍으로 이어졌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2년 동안 입주했는데, 다음해에는 지역 주민들이 입주 작가의 자격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전문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에 지역주민들이 들어간 경우는 한국에서 처음인 듯하다.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 금천예술공장에 입주 소감은?
"공간의 시설적인 것을 200% 이상 활용했다. 첫 장편이 만들어졌을 때도 물리적인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해서는 지역 연계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금천예술공장 직원들과도 많은 논의와 소통의 시간을 가졌고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서로 간의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지역과 함께하는 공공미술... 커뮤니티 아트의 실천

임흥순 작가는 "미술가와 활동가 사이 때론 미술가와 복지사 사이, 지금은 미술가와 영화감독사이에서 작업하고 있다. 예술은 관습에 대한 배신, 배반이 되더라도 새로운 것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임흥순 임흥순 작가는 "미술가와 활동가 사이 때론 미술가와 복지사 사이, 지금은 미술가와 영화감독사이에서 작업하고 있다. 예술은 관습에 대한 배신, 배반이 되더라도 새로운 것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김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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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
"내가 (지역으로) 들어가서 주민들과 얘기하는 것보다 주민들이 예술 공간으로 찾아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 된다. 주민들에겐 다양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나에겐 주민들의 삶과 지역의 문제를 알아가고 배우는 통로가 된다."

- 처음에 (주민들을) 직접 찾아갔을 때 반응은 어땠나?
"대부분의 반응이 좋아하기도 하지만 약간의 거부감이나 이질감도 느낀다. 이전에는 소수자, 소외 지역을 찾아가 공공미술을 했다면 금천예술공장에서는 달랐다. 여기서 만난 분들은 대부분이 중산층이고 일반 시민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분들이 예술의 또 다른 소외계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사로잡혔던 시선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됐다."

- 시선의 확장이 <위로공단> 작품에 영향을 끼쳤나?
"물론이다.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하기 전부터 금천구와 공장이 있던 자리, 공간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 공간에서 일하던 여성들, 구로공단과 여공들, 일명 '공순이'라고 말하는 분들에 대해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의 부모님이 모두 노동자였기 때문에 쭉 그런 생각을 해왔다. 나 같은 경우는 작업을 하면 보통 최소 2년 이상을 하기 때문에 시간을 길게 봤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기 전 지역주민들과 함께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 구체적으로 주민들과 어떤 작업을 했나?
"첫 번째로 지역 주부들을 대상으로 미술 워크숍을 열었다. 두 달 동안 19명이 팀을 만들어서 작업을 했다. 2년 후 마지막 워크숍으로 <금천블루스>라는 영화워크숍을 진행했고 주민들이 직접 연출하게 했다. 주민들이 바라보는 금천구, 구로공단, 여공, 이주여성, 재중동포(조선족)를 간접적으로 느꼈다. 이것은 정극, 애니메이션, 실험극, 뮤직비디오 등 4~5분짜리 4개의 옴니버스 영화로 완성됐다. 결과물 이전에 이러한 제작과정 자체가 하나의 '커뮤니티 아트'라 말할 수 있다."

- <금천블루스> 영화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 달라.
"커뮤니티에 참여한 주부들 중 언니가 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두 분이 참여했다. 그 중 한 분의 언니는 실제로 구로공단에서 일했다. 나머지 분의 언니는 전주에서 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는 언니에게 느꼈던 동생의 감정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내가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느꼈던 감정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가족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가족 중에 한두 명은 늘 희생했고, (희생을 했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그것에 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다."

- 이전 <비념>의 흥행 성적은 어땠나?
"<비념>은 23개관에서 진행했다. 총 관객은 2400명 정도 된다. 생각보다는 많이 안 봤는데, 개봉까지는 정신이 없었다."

- <비념>의 관객 수가 너무 적어서 아쉽지 않았나?
"꼭 그렇지는 않다. 물론 관객 수를 보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비념>과 같은 예술영화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관객 수가 전부는 아니다. 관람한 분들이 2400명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본 분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상업영화는 재미있게 보고 문 밖을 나가면서 다 잊어버리지만, <비념>과 같은 영화는 극장 문을 열고 나가면서 더 생각나게 만든다."

- 포털 다음에서 보니 한 누리꾼이 '꿈에만 그리던 이상적인 작품'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비념>이 비평적으로는 나쁘지는 않았다. 2013년, '씨네21' 올해의 한국영화베스트 9위에 올랐다."

미술 작가와 영화 감독의 사이에서

- 기존 영화와는 다른 콘셉트가 있는 듯하다. 어떤 포인트인가?
"독립영화에서 다큐멘터리가 보여줬던 형식과는 다르다. 아무래도 내가 미술가이기 때문에 기존 방식보다는 미술가로서 나만의 방법이나 시선을 만들고자 했다."

- 미술작가로서 화면구성은 영화감독들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것과는 다른가.
"약간은 그런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상업영화는 내용에 몰입하게 해서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그런데 미술은 이미지들이 해체돼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이 재편집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능동적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념>은 그 중간에 있었다. 서사적이지 않고 파편적이다. '이분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분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얘기했다. 이미지와 목소리를 어긋나게 하는 낯선 기법들을 활용했다. 아마도 미술에서 익힌 습관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듯하다. 어떻게 보면 장점이다."

- 영화감독이냐, 미술작가냐에 대한 질문이 많다. 이미지나 스토리 중 어떤 것이 먼저 떠오르나?
"아무래도 미술작가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스토리보다 먼저 떠오른다. 장면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 요즘 무용에서도 영화감독과의 협업 사례가 많다. 미술가가 영화를 진행한 첫 번째 사례로 봐도 되는가?
"2002년 전주국제영화제, 2003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작품을 상영했지만 영화라고 보긴 어렵다. 미술작가로서 본격적인 영화작업을 처음한 사람은 박찬경 감독이다. 극장 개봉한 영화로 보면 <비념>이 첫 번째인 듯하다. 이후에 박찬경의 <만신>, 정윤석의 <논픽션 다이어리>, 박경근의 <철의 꿈> 등이 나왔다."

- 작업하는 방식은 어떤가?
"프로젝트팀을 만들어서 진행한다. 기본적으로 혼자서 하기보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계속적으로 의견을 나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지역, 이주, 도시, 공동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다. 이러한 '사회, 현실문제에 대해 미술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와 같은 고민을 많이 했다."

임흥순 작가가 전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현장

- <위로공단>이 '세계의 모든 미래'라는 올해 비엔날레 주제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비엔날레는 세계 현대미술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베니스 같은 경우는 현대미술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큰 전시를 생각하면서 작업한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왔던 것은 로컬(local) 그 자체였다. 총감독이 생각하는 정치적인 성향과 주제가 맞았다고 생각한다."

-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 이후로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과 대화한 적이 있나.
"오쿠이가 수상 이후 파티에서 '축하한다, 너의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고 말했다. 나는 '당신 덕분에 이런 전시에 작품을 소개할 수 있어서 고맙다, 아시아의 노동 문제에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비엔날레 현지 관객 반응이 궁금하다.
"베니스는 나도 처음이었다. 미술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상당히 많이 관람한 듯하다. '95분짜리를 어떻게 보냐?'고 하시는데, 보는 사람들은 계속 보게 된다. 상대적인 것도 있다. 본 전시 전체가 총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 배치가 중요하다.

처음 봤을 때는 동선도 안 좋고 공간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열어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처음 스타트(입구)에 들어서면 그곳이 한 번 쉴 틈이기도 했다. 기존 작품들은 이론적이면서 개념적인 반면에 (나의 작품은) 실질적이고 현실감을 살려주니까 관객들에게 조금 더 세게 전달해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 번 앉으면 계속 보게 된다."

- 전시 공간에는 몇 명 정도 들어가는가?
"20~30명 정도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다. 스크린도 상당히 크게 준비했다. 아마도 베니스 비엔날레 중 가장 큰 스크린인 듯했다."

-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은 작가 개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에 던지는 의미가 있다. 개인적인 소감과 이번 수상이 갖는 의미에 대해 얘기해 달라.
"개인적인 소감은 영광이지만, 여기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새로운 작업들 때문에 생각할 여유가 없다. 수상 의미는 20년 정도 지나서 생각해보고 싶다."

은사자상 수상의 화제 영화 <위로공단>

임흥순 작가가 <위로공단>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은 '얼굴을 가리는 퍼포먼스'
 임흥순 작가가 <위로공단>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은 '얼굴을 가리는 퍼포먼스'
ⓒ 임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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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공단> 영화 소개를 보면 눈을 사로잡는 영상들이라고 했다. 어떤 장면이 그런가?
"퍼포먼스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그분들이 얘기해주는 말과 말투와 표정, 신념과 슬픔 등 그런 것이 가장 크게 다가온다. 솔직히 사람 자체가 컸다. 연출도 그렇지만 그분들이 살아오신 이야기들 그것보다 더 마음을 끄는 것은 없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것을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인터뷰를) 진심으로 해줬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이 말을 못 알아듣지만 그분들 표정을 보고 생각한다. 특히 캄보디아 여성노동자들의 표정이 강하다. 그것을 통해 많은 분들이 당시의 여공의 모습을 얘기한다. 실제로 얘기를 듣는 것과 가서 보는 것은 다르다.

과거의 구로공단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캄보디아에서 '아! 이런 것이구나...'를 대신 느낄 수 있었다. 작업에서는 실제로 내가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얼굴을 가리는 퍼포먼스 같은 것이 나왔다. 단순히 멋있게 보이려고 한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먼지 나는 공장에서 염하듯이 눈과 귀를 뜰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안 좋은 곳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런 곳을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병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 심정으로 얼굴을 가리고 싶지 않겠나? 이것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잊고, 사라진 여성 노동자들의 얼굴을 또 다른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머나먼 곳이 아니라 그것은 나의 어머니와 여동생이었다. 이론과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탕으로 신념과 마음을 전달했다."

- 그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은?
"한국에서 최초의 동맹파업이라 일컫는 '구로동맹파업' 당시 대우어패럴 여성노동자였던 강명자씨의 인터뷰 장면이다. 생각해 보면 서글픈 이야기인데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예를 들면, 파업 당시 어느 17살짜리 동생이 '나도 나이키를 신고 싶다'고 외쳤던 모습을 이야기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어렸을 적에 느꼈던 감정이다.

개인적인 것과 투쟁현장이 겹치기도 한다. 컵이나 형광등, 난로는 누가 만드나? 다 노동자들이 만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무시한다. 캄보디아에서 그런 얘기를 바탕으로 인터뷰했다. 장면이 아름다운 것은 아닌데, 그분이 해준 얘기가 즐겁지만 슬프다. 아이러니하다. 강명자씨는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노동자상이다. 후회 없는 지난 삶과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녀는 현재까지 미싱 일을 하고 있다."

- 처음에 인터뷰를 할 때 영화가 될 것이라는 것을 다 이야기했는가.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말한다. 잘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동문제를 고민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전달하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가 만들어지면 시사회를 통해서 확인해주는 부분도 있다. 불편한 점이 있거나 그런 부분이 있으면 얘기를 듣고 수정한다."

-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할 때 <위로공단>이 다 만들어졌었나?
"지난해 8월에 한국에서 베니스 비엔날레의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과 미팅을 했다. 그 당시 부산국제영화제를 준비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만들어지긴 했다. 짧게 (총감독에게) 보여줬다."

<위로공단> 포스터.
 <위로공단> 포스터.
ⓒ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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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8월 13일에 개봉을 한다. 당초 8월에 계획이 있었나?
"올해 하겠다는 계획은 있었는데, 정확히 8월은 아니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나가기 전까지 배급사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위로공단>이 주제나 장르적으로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나는 덜 했지만 김민경 피디가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 지금의 배급사가 나서줬고, 결국에 베니스에서 좋은 일이 생겼다. 지금의 배급사가 해주겠다고 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 <위로공단>이 개봉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디어 단계부터 시작해 4~5년 만에 개봉한다. 2011년 말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강명자, 김영미, 심상정, 박순희, 윤혜련 다섯 분을 인터뷰하면서 시작했다. 중간에 <비념>이라는 첫 장편영화를 만들면서 잠시 쉬었다가 2013년부터 다시 진행했다."

- 상영관이 몇 개 정도 되는가?
"정확한 수는 일주일 전에 알 수 있다. 대략적으로 50개 정도 되지 않을까. 일반 영화관이 아니라 CGV아트하우스와 같이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할 계획이다. 흥행에 성공하면 일반 영화관으로 확장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예술영화는 보통 일주일 정도 하다 바로 스크린을 내린다. 아니면 상영시간이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시간으로 바뀐다."

- 대중들에게 영화 <위로공단>을 소개한다면?
"영화는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됐다. 자연스럽게 과거 동일방직, 청계피복 이야기부터 현재의 대형마트, 콜센터, 항공승무원 등 서비스 즉 감정노동까지 다루게 됐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특정 직업만을 얘기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살아오신 분들에 대한 이야기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출된 도발적이면서 환상적인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이 영화는 이분들의 신념과 함께 인간의 존엄성, 노동의 가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영화가 젊은 20~30대가 많이 보길 바란다. 이분들이 어떻게 일하며 살아왔는지 대한 것은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하는 일과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 <위로공단>에서 '위로'는 어떤 의미인가?
"당시 1970~1980년대 여성 노동자들이 국가와 가족을 위로해줬다면, 지금은 이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위로해줘야 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임흥순 작가의 개인사와 예술세계

- 부모님이나 여동생은 노동자로서 어떤 편이었나?
"일반적이었다. 투쟁 현장에서 싸우거나 시위한 적이 없을 거다. 그냥 시키는 일을 하는 분이다. 아버지는 내게 공고를 가서 취직해 돈을 벌라고 하셨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은 미술이 하고 싶으면 그것을 하라고 말했다. 돈이 없으면 옆집에 가서 돈을 빌리면서까지 미술 재료를 사줬다. 어느 날은 회사에 미리 가불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 과정과 어머니 마음, 감정들이 섞이면서 가족사에서 부모님에게 느꼈던 감정을 사회적으로 얘기했다."

- 어머니, 여동생, 형수님 등 말하기 쉽지 않은 개인사를 작품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많이 드러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어떻게 결정을 내렸나. 결정을 내렸을 당시와 지금 가족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사람들은 내 가족의 삶을 얘기할 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들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면 좋지. 그 정도가 아닐까 한다. 나도 그렇고 가족 또한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 (남의 얘기를) 잘 들어줬다는 말을 했는데…. 들어주는 능력은 어떤 것인가?
"예술이라는 것은 자기표현이다. 남의 표현을 들어주는 것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공감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은 자기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어떤 방식이든지 믿음이나 신뢰를 주는 방법을 만든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존중이다. 인터뷰라기보다는 나이든 사람들이 살아온 것에 대한 존중이 잘 전달돼야 한다."

- 어려운 점도 있었나?
"사람과의 관계는 힘든 것 같다. 일단은 인터뷰 자체가 어렵다. 더 좋은 얘기는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얘기해 주는 것이다. 때로는 인터뷰를 해주신 분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을까봐 걱정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어렵다기보다는 조심스럽다."

- 작가 개인적으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어머니와 여동생의 희생과 지원을 통해서 하고 싶은 미술을 했고, 결국 세계적인 상을 수상한 것이 젊은 20대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줬다.
"사실 나보다는 출연해주신 분들이 자기 몸을 불태워온 삶이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빛을 온몸으로 받은 것뿐이다. 그런 희망을 만들어온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여성들은 대체로 국가·가족·제도에서 중심보다는 주변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세상을 좀 더 객관적이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시선과 사고, 지혜로움을 배우고 싶었고 이런 표현방식을 내 작업의 표현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다. <위로공단>은 그 결과물의 하나다. 상을 수상한 것이 성공이 아니고 성공이 희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과거와 타인과 실패속에서 더 많은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다. 현실의 자신을 제대로 보는 게 희망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레지던시 임흥순 작업실 벽면에 붙어있는 <위로공단> 작업 흔적에 주목했다. 그동안 작업했던 프로세스를 비롯해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힌 '눈을 가리는 퍼포먼스' 사진이 붙어있다.
▲ 임흥순 작업실에 붙어있는 <위로공단> 작업 흔적 필자는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레지던시 임흥순 작업실 벽면에 붙어있는 <위로공단> 작업 흔적에 주목했다. 그동안 작업했던 프로세스를 비롯해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힌 '눈을 가리는 퍼포먼스' 사진이 붙어있다.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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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 예술가들은 자기 내면세계에 빠져서 작품을 형상화한다. 이에 반해 임 감독은 역사적·사회적 현상과 같은 외부에서 영감을 얻어 예술을 표현하는 듯하다. 어떻게 보면 사회 활동가 같은 생각도 드는데.
"사회 활동가? (웃음) 예술은 경계가 없는 듯하다. 초창기에는 솔직히 사회 활동가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렇다. 미술가와 활동가 사이 때론 미술가와 복지사 사이, 지금은 미술가와 영화감독 사이에서 작업하고 있다. 예술은 관습에 대한 배신, 배반이 되더라도 새로운 것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의 내면을 통해서 나를 찾고 있다. 이것은 방법과 과정이 다를 뿐이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웃음) 제가 뭘 하려고 하면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려고 한다. (웃음) 나는 이런 것이 좋다. 연민, 동정,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받은 사랑이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부족하기 때문에 채워가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또 다른 방법이다. 실제로 자신 밖에 모르는 사람은 진짜 자기를 모른다. 그게 문제다.

- 여러 작업을 중첩해서 동시에 한다고 들었다. 왜 그렇게 하는가? 지금은 어떤 것을 준비하는가?
"우선 내 작품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하나만 가지고 계속 할 수 없다. 어렵지만 중간에 겹치기 식으로 하고 있다. 주제가 다른 것 같지만 계속 만들어가다 보면 나중에는 하나의 '큰 옷'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현재는 아시아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여성의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보는 <환생>을 준비하고, <비념>에 이어 제주도에 관한 작업 등을 구상하고 있다."

- '옷'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나중에는 어떤 옷이 될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여러 천을 하나씩 꿰매고 붙이다 보면 뭐든 만들어지지 않겠나. 중요한건 그것을 어떻게 나누는가의 문제다."

- 마지막 질문이다. 작가 '임흥순'은 사후에 후손들에게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런 질문은 처음 듣는다. (웃음) 좋은 작가? 사람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삶 속에서 예술을 실천하고자했던 작가로 기억되면 좋겠다."


태그:#임흥순,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금천예술공장, #위로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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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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