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 ㈜로제타 시네마


해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전적으로 미디어 덕분이었다. 만화 <원피스>를 읽으며 루피 일행의 우정과 모험에 가슴이 벅찼고, SBS 드라마 <태양속으로>에서 권상우와 정태우가 연기한 해군 장교와 수병의 패션은 내가 봐왔던 어떤 군복보다도 멋졌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원피스를 발견하리라고 생각했다거나, 단순히 세일러복을 입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다. 배를 타고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던 셈이다. 결국 나는 2004년에 해군 수병으로 입대했고, 함정 근무에 자원해 평택 2함대 예하의 한 초계함에 배속되면서 꿈을 이뤘다.

1999년의 제1연평해전과 2002년의 제2연평해전(당시에는 '서해교전'으로 불렸다-기자 주)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부대 내에는 참수리 357호정이 전시되어 있었고, 전사자를 기리는 전적비도 세워져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대중 앞에 선보인 영화 <연평해전>은 그래서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연평해전>은 좋은 작품이 아니다. 재연 장면이 삽입된 역사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모를까, 각색과 편집을 통해 창작된 상업영화로서의 <연평해전>은 결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초반부 예비군 안보교육 자리에서나 볼 법한 NLL(북방한계선)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라든가 후반부로 갈수록 비중을 높여가는 실제 뉴스 장면은 이 영화를 자꾸만 영화 바깥으로 끌어낸다. 결국 영화가 주는 사회적 의미를 빼면 <연평해전>에 남는 것이라곤 거의 없어진다.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 ㈜로제타 시네마


김학순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가족과 인간에 관한 이야기로 봐달라"고 강조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 그려지는 휴머니즘은 지나치게 넓고, 그래서 얕다. 캐릭터들이 갖는 지분은 윤영하 대위(김무열 분), 한상국 하사(진구), 박동혁 상병(이현우)이라는 세 인물에게 고르게 분배된다. 영화 초, 중반부 그들은 한정된 러닝타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에피소드를 보여주기 위해 각자 소모되는데, 그 안에서 개인의 깊은 갈등이나 성찰의 과정은 무시되기 일쑤다. 결국 관객은 가족애와 전우애라는 공통의 선을 따르는 그들 중 누구에게도 쉽사리 감정 이입하지 못한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전쟁터다. 그리고 국내에서 가장 위험한 전선은 아마도 NLL일 것이다. 철책도 없는 그곳은 북한 영토의 서측 해안에 깊숙이 자리한 남한의 최북단 도서 지역이다. 영화 속 참수리 357호정 승조원들과 다르지 않게, 군함 승조원으로서의 내 생활은 동시에 늘 존재하는 전투(죽음)의 가능성을 곁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나의 해군 생활이 더욱 소중하게 남은 건지도 모르겠다. 수평선 아래로 잔잔한 핑크빛을 흘리며 사라져 가는 태양, 우리 배 옆에서 나란히 헤엄치던 돌고래들, 보름간의 출동을 마치고 돌아온 항구에서 마주한 봄의 신록까지. 등골을 엄습하는 긴장감 속에서, 나는 그곳에서 겪은 모든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오롯이 만끽했다.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 ㈜로제타 시네마


영화 <연평해전>이 우리에게 내민 과제는 '그들을 잊지 않는 것'이고, 그건 분명 남은 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6명의 전사자를 잊지 않는 것과 더불어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영화의 방식을 좇아 그들을 단순히 '좋은 사람'으로 뭉뚱그리는 대신, 그들 각자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를 상상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군 생활이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듯 긴장되면서도 설렐 수도 있다. 참수리 357호정의 전사자들은 숭고한 희생정신을 보여준 국가적 영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군인으로서의 삶이 불운했다고 매도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단언컨대 나는 내가 해군이어서 좋았다.

연평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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