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김현정 역의 배우 도지원이 21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김현정 역의 배우 도지원이 21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최근 종영한 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그동안 주로 주말드라마로 편성됐던 가족극도 얼마든지 미니시리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드라마였다.

이렇게 드라마가 가족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듯,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배우들 또한 이 드라마를 통해 새 옷을 입었다. '국민 엄마' 김혜자가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온 몸을 던져 발차기하고, '카리스마 여걸' 채시라가 화장이 잔뜩 번진 얼굴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리라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상대역을 맡은 손창민(이문학 역)과의 풋풋한 로맨스 연기로 색다른 매력을 뽐낸 배우 도지원 또한 이 '재발견'의 수혜자다. "이렇게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 연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라고 입을 연 도지원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것인지를 현정을 통해 얻은 것 같다"면서 "한 인물이 (사랑을 통해) 24부 동안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준 대본으로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이 행복한 일이었다"고 했다.

"이 드라마는 저에게 배우로서, 또 인간으로서 생각할 것들을 많이 주었죠. 현정과 같은 역할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어요. 정말 행복하게 연기할 수 있었고, 시청자에게도 새로운 도지원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극중 '뭬야' 대사, 큰 짐 덜게 했다...그동안 흘려보낸 시간도 다시 시작"

 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김현정 역의 배우 도지원이 21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김현정 역의 배우 도지원이 21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커리어우먼이었던 김현정이 다시 재기에 성공하는 결말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도지원은 "공모전 결과를 확인하고 미소지었던 그 모습이 앞으로의 현정의 성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오로지 문학이와 현정이만 나오는 드라마였다면 아기도 가지고, 일적으로도 성공하는 장면도 나왔겠지만 워낙 여러 인물이 나오는 드라마였잖아요. 현정이의 그 미소가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을 상징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 이정민


특히 그에게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각별한 이유는 오랫동안 그를 따라다녔던 <여인천하>(SBS, 2001)의 경빈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 방영 당시 악랄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경빈이 외치는 한 마디, "뭬야"가 유행어가 됐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하지만 그에게 <여인천하>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 감사한 작품인 동시에 떼어내기 어려운 꼬리표 같은 것이었다. 그에게 또 다른 대표작, <웃어라 동해야>(KBS)가 나타난 건 그로부터 9년 후의 일이었다. 그동안의 시간을 도지원은 "흘려보냈다"고 표현했다.

"<여인천하>부터 <웃어라 동해야> 사이의 저를 생각해 보면 기억나는 작품이 없을 걸요? 그 10년에 가까운 좋은 시절을 흘려보낸 느낌이에요. 물론 <여인천하>는 저에게 큰 선물을 준 작품이에요. 배우로서의 발판과 확신을 마련해 줬거든요. 하지만 양날의 검이기도 했어요. 제작자나 시청자도 저를 경빈과 연관해 생각했고, 더욱이 외모까지 차가워 보이니 그냥 경빈과 제가 동격이 됐던 거죠.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제 연기가 그 한 작품에 고정되어 버릴까 걱정이 컸어요. 떨쳐버릴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그동안 어떤 자리에서도, 누구의 부탁을 받아도 쉽게 "뭬야"를 반복하지 않았던 건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그가 연기한 김현정이 혼수와 예단 문제를 두고 기 싸움을 벌이던 나말년(서이숙 분)에게 "뭬야"를 외치기까지, 도지원의 내적 갈등도 컸다고 했다. "사실 그 대사가 나오기까지 생각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그는 "그래도 그 대사를 통해 경빈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정말 큰일을 한 것 같다"고 후련해 했다.

"처음 그 장면의 대사를 보는데, '뭬야'가 없어도 감정만큼은 경빈과 비슷하더라고요. 그동안 그 말을 하자고 해도 안 하려고 했고 지워버리려고 했는데,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죠. 나중에 듣기론 김인영 작가님도 그 대사를 썼다가 지우셨다고 하고…. 그 마음이 보이면서도 '왜 해야 하지' '여기서 하는 게 맞나' 스스로 많이 반문했어요. 결국 현장에서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딱 한 번 해 봤는데, 반응이 괜찮았더라고요. 그래서 본 촬영 때도 그대로 했는데,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벗어난 느낌이 들었죠. 의외였어요."

이후 이 장면에 대한 시청자의 호평을 확인한 도지원은 경빈에 대한 제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같지 않을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가 경빈에게서 확실히 놓여나는 순간이었다. "이번 작품이 굉장히 큰 짐을 덜어내 준 셈"이라고 말한 도지원은 "<여인천하>와 <웃어라 동해야> 사이의 시간을 생각하면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좋은 역할을 더 할 수 있었을까' 싶다"면서도 "그래도 그 시간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끝까지 연기하겠다곤 못 하지만...중요한 건 이 순간 최선 다하는 것"

 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김현정 역의 배우 도지원이 21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어요. 그동안의 드라마와 달리 이 부분을 표현할 수 있어서 마음에 두고두고 담고 감사해 할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를 찾아가는 그 과정을 혼자 한 건 아니었죠. 주변에서 도와준 덕분이었어요. 손창민 선배님을 비롯한 많은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렇게 행복하게 일을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게 또 몇 번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정말 각별한 드라마예요."

데뷔 27년 차. 여느 촬영장에서였다면 최고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달랐다. 쟁쟁한 '선생님'과 '선배님' 틈에서, 도지원은 자신을 다잡을 기회를 얻었다. "연기자는 기술적인 의미일 뿐이니 배우라는 말을 써야 한다"는 철학을 설파한 손창민, "'말'을 모른 채 대사를 하는 건 배우가 아닌 배우"라는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준 이순재(김철희 역), 그런 이순재와 대사의 장단음 하나까지 상의하던 김혜자 등을 두고 도지원은 "공부가 됐다"고 했다.

이러한 '공부'는 그가 앞으로 해 나갈 연기에 적지 않은 추동력이 될 듯하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보여드리지 않았던 부분들을 보여드렸으니, 이제 이걸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켜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도지원은 "또 '앞으로는 좀 더 깊이 있게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쏟아 부어 (대본에서) 하나의 의미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해석을 해내야만 장면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됐다"고 강조했다.

무용수의 삶을 살다 1989년 한 화장품 회사의 모델이 되어 연예계에 데뷔한 것은 순전히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내 선택대로 한다면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데뷔 초 했던 이 다짐처럼, <착하지 않은 여자들>을 마친 지금 도지원은 굳은 각오로 무장을 마쳤다.

"'끝까지 연기하겠다'는 말은 못 하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마음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고, 이 순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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