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4년 전 <특허전쟁>을 통해 삼성전자-애플 특허 소송의 본질을 짚었던 '글쓰는 변리사' 정우성 임앤정특허사무소 대표
 4년 전 <특허전쟁>을 통해 삼성전자-애플 특허 소송의 본질을 짚었던 '글쓰는 변리사' 정우성 임앤정특허사무소 대표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이제 명목상 소송만 남았죠."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전쟁'이 불붙은 지 4년이 지났다. 아직 소송은 진행중이지만 포성은 잦아들었고 언론과 사람들 관심에서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 사이 두 회사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한 채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허전쟁에선 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는 셈이다.

당시 <특허전쟁>(에이콘)이란 책에서 이 같은 특허 소송의 본질을 짚었던 정우성(43) 변리사를 4년 만에 다시 만났다(관련기사: "사실상 삼성 승리? 국내 언론 사실 왜곡").

2011년 4월 시작된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은 한 변리사의 인생을 바꿨다. 정 변리사는 언론 취재에 응할 뿐 아니라 저술 활동에도 적극 나섰고, 이듬해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애플 완승'은 애국심 탓? '삼성 관점' 벗어야 보인다)로 직업 언론인들을 제치고 KAIST 과학저널리즘대상 인터넷부문상을 받았다(관련기사: '삼성 애국주의' 벗긴 시민기자, 과학저널리즘상 받다).

이후에도 <세상을 뒤흔든 특허전쟁 승자는 누구인가>(에이콘)에 이어 아빠 육아 이야기를 담은 <나는 아빠다>(알마)를 냈고 각종 매체 기고 활동을 통해 '글 쓰는 변리사'로 활약하고 있다.

휴대폰 특허 많은 삼성이 '신참' 애플에 고전한 까닭

지난 29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난 정 변리사는 변리사 5명을 포함해 직원 8명이 일하는 임앤정특허사무소 대표였다. 삼성-애플 특허 소송은 두 당사자와 우리 사회, 그리고 정 변리사 자신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특허가) 워낙 전문적인 영역이라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기는 어려워요. 단순하게는 기업 경영에서 특허가 정말 중요하다, 이 소송을 교훈 삼아 우리 산업에서 특허 경쟁력을 찾자는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건 문제의 겉모습일 뿐 자세히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흥미롭게도 삼성전자는 휴대폰 업계 선발주자이고 애플은 2007년 처음 휴대폰을 만든 후발주자예요. 삼성이 애플보다 무선통신분야 특허가 10배나 더 많았어요. 특허전쟁이 벌어지면 당연히 삼성이 압도적으로 이겨야 하죠. 삼성 특허팀도 그런 전략을 폈을 테고 소송이 9개 나라로 번진 것도 삼성이 주도했어요. 그런데 소송 전개 과정에서 삼성이 밀렸고 애플이 주도했어요. 우린 여기서 교훈을 찾아야 해요."

특허는 '숫자 싸움'이 아니다. 특허가 많을수록 유리하다는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나야 특허 전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가에서 원천기술을 강조했듯 삼성도 원천특허와 표준특허로 애플을 공략했지만 결국 무용지물이 됐어요. 특허가 독점인 만큼 책임이 있어요. 바로 독점 규제죠. 우리 산업은 대기업이 주도해 속성으로 발전하다 보니 독점을 어느 정도 봐줬고 특허의 독점적 속성도 고찰하지 못했죠."

삼성전자는 처음에 휴대폰을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될 무선통신기술 관련 '표준특허'를 앞세워 애플에 맞섰지만 외국 법원에서 '프랜즈 조항'에 발목이 잡혔다. 자칫 표준 특허를 보유한 기업이 특정 산업을 독점할 위험이 있어, 경쟁사도 합당한 사용료를 내고 그 기술을 쓸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애플이 앞세운 제품 외관 같은 디자인 특허는 힘이 약해 보여도 법원뿐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만한 내용이어서 '여론전'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원천특허와 표준특허는 일부 대기업이나 가능하지 중소기업은 대부분 소외될 수밖에 없었어요. 산업이 대기업 중심이듯 특허도 대기업 중심이었던 거죠. 스마트폰 등장으로 산업 패러다임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대기업-하청기업 수직적 구조에서 플랫폼 중심의 수평적 구조로 바뀌었어요. 기업의 특허 전략이나 국가의 특허 정책도 달라져야죠.

요즘 중소기업, 스타트업, 청년창업, 창조경제 얘기하는데, 특허는 그런 비즈니스 활동에서 아이디어나 브랜드, 디자인이 나오게 하는 촉매제이고 아이디어 유통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생각해요. '권리' 이전에 하나의 '과정'인 거죠. '권리'로서 특허가 중요했다면 삼성-애플 소송에서 삼성이 큰 승전보를 가져왔어야죠. 애플 아이디어는 전통적인 시각에서 보면 사소한 것들이지만 지금은 그런 게 혁신이죠."

"창조경제 지원에 행정업무 늘고 '허수 특허'도 비일비재"

정우성 임앤정특허사무소 대표 변리사가 만든 소책자 3종 세트.
 정우성 임앤정특허사무소 대표 변리사가 만든 소책자 3종 세트.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요즘 IT(정보기술) 업계 화두인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로 이어졌다.

"창조경제 담론도 좋고 멋지잖아요. 창조경제란 말을 생각해 낸 사람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수직적 체계에서 에코시스템으로 바뀌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을 텐데 반대할 이유가 없죠.

다만 창조는 누가 하느냐. 사람이 하는 거죠. 사람의 활력과 자율성이 중요한데 타율성에 의해서는 창조 활동이 안 나온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정부 지원 사업이 다양하게 나오는데 현장에선 그걸 '눈먼 돈'이라고 해요. 지원 사업은 행정과 유대해야 하는데, 창조경제와 행정의 관계를 풀지 않으면 창조경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요.

기업들이야 불경기고 자금 사정도 어려운데 정부에서 각종 명목으로 자금 풀고 지원 사업하니 좋죠. 그런데 많은 기업들이 행정 업무에서 힘들어해요. 국가가 지원하면 평가와 감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서류 구비나 평가 준비에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어요.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나 서비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창의성이 행정 업무에 소모되고 있는 거죠."

한마디로 주객이 뒤바뀌는 현실이다.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특허 생태계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가 지식재산권을 강조하다보니 아이디어가 정말 가치 있는지 생각하기보다 일단 정부 지원을 받으려고 내는 특허가 비일비재해요. 기업도 그렇고 국책연구기관도 허수가 많아요. 연구개발을 평가하기 가장 좋은 게 특허 출원이나 보유 특허 건수거든요."

변리사는 개인이나 기업이 발명한 독창적 아이디어부터 개발 단계인 기술이나 상품, 서비스가 독점적 권리를 인정받도록 특허 출원을 돕는 전문가다. 특허를 받으려면 각 나라 특허청을 상대로 상품이나 기술 같은 실체 대신 글과 도면이 담긴 문서로 모두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기술을 잘 이해하고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변리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쨌든 특허 출원이 늘어나면 변리사 업계에선 반길 일 아닌가요?
"아니죠. 변리업계도 심각해요. 지금 변리업계는 2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어요. 우선 시간이 흐르면 가격이 오르는 제품 가격과 달리 변리사나 변호사, 회계컨설팅 같은 서비스 가격에는 물가 상승률이 반영되지 않아요. 시간이 흘러도 가격 안 오르고 경쟁이 심해지면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죠. 국책연구기관이든 기업이든 무의미한 특허나 행정에 수반되는 특허에는 굳이 많은 비용을 지불하려고 하지 않아요. 변리사 서비스 수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우리 같은 전문가가 보기엔 가치 없는 특허가 태반이에요.

두 번째 문제는 국가가 창조경제 명목으로 자금을 많이 풀면서 다양한 기획 사업이나 컨설팅 사업을 만들어요. 여기서 수행기관과 수혜기관이 나오는데, 컨설팅 사업은 특허와는 무관하지만 돈은 커요. 몇천만 원, 몇억 대가 될 수도 있으니 변리사가 머리 짜내서 특허 권리화에 필요한 글을 쓰기보다 컨설팅해서 발표 자료나 행정업무평가에 필요한 서류 만드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해요. 그럴수록 실무 역량이 떨어지는 거죠. 좋은 특허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발명가)과 그 아이디어를 문서화하는 사람(변리사) 협업으로 경쟁력이 확보돼요. 후자가 열악해져서 좋은 특허도 실무자 때문에 나쁜 특허가 되면 심각하죠. 그런데 이렇게 막말해도 되나(웃음)."

거침없이 말을 이어가던 정 변리사가 이 대목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자신이 10년 넘게 몸담은 변리사 업계에 대한 비판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후배 변리사들이 걱정돼요. 일(변리사 고유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 일을 잘하려면 장인이 돼야 하는데 그럴수록 경제적 빈곤함이 동반하는 현실. 변리사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에요. 그런 정통 실무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입증하는 게 제 시대적, 직업적 소명이에요."

이날 정 변리사를 만난 직접적 계기는 소책자였다. 정 변리사는 지난해 <특허, 더 나은 생각>에 이어 최근 <디자인 극장>이란 소책자를 비매품으로 펴냈다. 어른 손바닥만 한 작은 판형에 100쪽 안팎에 그쳤지만 특허와 변리사 업무에 대해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었다.   

"원래 회사 홍보 자료를 만들려고 했는데 팸플릿 같은 건 대부분 버리잖아요. 이왕이면 세상에 이로운 걸 만들자고 해서 책자를 만들게 됐고 크게 만들면 들고 다니기 힘들 테니 양복 주머니나 핸드백에 들어갈 크기로, 쉽게 버리지 않게 (디자인을) 예쁘게 만들었어요."

실제 책 표지는 웰스의 소설 <우주전쟁>(1899)의 원작 삽화와 19세기 화가 구스타프 카유보트의 명화 <비오는 날의 파리 거리>(1877)처럼 저작권 시효(저작권자 사후 50년)가 지난 옛 그림을 사용해 아름답게 꾸몄다. 여기엔 지식재산권이 창작자의 '권리 보장' 못지않게 후세들의 창작에 '활용'돼야 한다는 가치관이 반영돼 있다.

"지금까지는 특허를 기술과 권리(법률)로만 '2원론'으로 봤는데 전 '경영(비즈니스)'을 더해 '3원론'을 주장해요. 기업이 망하면 권리는 사라지고 기술도 패러다임이 바뀌면 죽어요. 특허는 '경영'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죠. 기업이나 정부도 경영 관점으로 특허를 보면 시각이 달라져요.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경우엔 특허 출원을 안 해도 되고 어떤 경우엔 꼭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 거죠.

이 책을 만든 것도 특허에 대해 어렴풋이 아는 사람은 많은데, 모호하고 심지어 잘못된 정보가 만연돼 있어요. 잘못된 정보를 만든 사람도 문제지만 저 같은 전문가가 전문성만 고집한 나머지 쉽게 이야기하거나 안내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특허를 쉽게 안내하고 좋은 지식을 전달하자는 차원이죠. 만족해요. 예쁘니까. 비매품이지만 사람들 반응도 좋고.(웃음)"

"염치없는 짓은 말자"... 대표실 버리고 출입구 택한 까닭

임앤정특허사무소 대표인 정우성 변리사의 자리는 직원들이 가장 꺼려하는 사무실 출입구쪽 자리다.
 임앤정특허사무소 대표인 정우성 변리사의 자리는 직원들이 가장 꺼려하는 사무실 출입구쪽 자리다.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실제 그사이 특허 등 지식재산권 문제는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왔다. 인터넷에 올린 서체나 사진, 그림을 빌미로 누리꾼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저작권 장사'가 있는가 하면 대기업에 기술이나 상표권을 빼앗긴 중소기업이 소송을 벌이는 사례도 많다.

"그만큼 세상이 복잡해졌어요. 우리나라에 매년 특허 신청이 20만 건 정도 상표, 디자인 권리까지 포함하면 연간 40만-50만 건이 넘어요. 내 권리를 찾는 목소리도 커진 거죠. 권리가 무수히 많은 세상에서 권리를 바라보는 시각도 성찰할 필요가 있어요. 과연 40만 개의 권리가 정말 도덕을 결정하느냐, 모두 진짜 권리냐 하는 거죠. 사실 그 가운데 외형은 갖췄지만 실제 권리가 아닌 허수도 많아요.

회사 경영 이념 맥락도 '염치없는 짓은 하지 말자'는 거예요.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개인의 아이디어를 뺏어갔다는 언론 보도가 많은데, 사실 권리적, 법리적으로만 바라보면 대기업이 잘못한 게 별로 없어요. 대기업은 법무팀이 있으니 잘 분석했겠지만 개인이나 중소기업은 잘 몰라서 법적 행위를 잘못한 경우가 많을 거예요. 전통적 법리 시각으로 보면 대기업은 면책이지만 우리 정서로 보면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전문가는 소송에서 권리 분석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더라도 일상에선 도의적으로 정당한지 따져봐야 해요."

정 변리사는 회사 경영에 18세기 독일 철학자인 칸트의 윤리학을 접목했다. 이른바 '칸트주의 경영'이다. 정 변리사가 1년 전 대표실 밖으로 나오면서 일반 직원들이 가장 꺼리는 사무실 출입구 쪽 자리를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칸트는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는데, (직원에게) 가급적 좋은 것을 제공하는 게 칸트 윤리학에 맞아요. 제 자리는 컴퓨터로 뭘 하고 있는지 누구든 볼 수 있어 직원들이 싫어해요. 전 눈치 볼 사람이 없는 대표니까 심력이 강해 괜찮지만, 심력이 가장 약한 말단 직원에게는 나쁜 환경인거죠. 오히려 제겐 이 자리가 채찍질 돼서 딴짓 안 하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직원들이 농담 주고받는 것까지 다 들을 수도 있어 좋아요. (웃음)"

명색이 회사 대표지만 정 변리사는 아주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저녁 약속이나 야근을 하지 않는다. 저녁이나 주말만큼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게 철칙이다. 2년 전엔 보통 아빠의 육아 이야기를 담은 <나는 아빠다>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아내가 외국인(일본인)이다 보니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별로 없어 가급적 일찍 집에 들어갔어요. 자연스럽게 아홉 살, 일곱 살 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많은 걸 배웠어요. 전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게 자기 자신에게도 좋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배우고, 잠도 많아져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져요. 남자의 진정한 발전은 아빠 역할을 할 때 시작한다고 할까. (웃음) 아이들이 없었다면 다른 길을 갔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 길이 훨씬 낫다는 거죠."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정우성, #변리사, #창조경제, #특허전쟁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