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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 폴 루벤스 '로물루스와 레무스'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오른쪽의 목동 파우스툴루스가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 로물루스와 레무스 페트로 폴 루벤스 '로물루스와 레무스'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오른쪽의 목동 파우스툴루스가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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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바로크 회화들을 만날 수 있는 '카피톨리니 박물관' 2층의 회화관. 한 작품, 한 작품 모두 자세하게 소개하고 싶지만, 고대 로마를 그린 두 작품을 우선 만나 보겠습니다.

먼저 만날 작가는 페테르 폴 루벤스입니다. 바로크의 아이콘이며 최초의 국제적 스타였던 루벤스. 당신은 기억하고 있는지요? 어린 시절 보았던 애니메이션 <플란더스의 개>. 그렇습니다. 화가를 꿈꾸던 가난한 소년,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볼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말했던 작품의 화가가 루벤스였습니다.

실제 그의 작품 앞에서 네로와 파트라슈가 함께 죽음을 맞는 장면을 보고 얼마나 가슴 아팠던지 어린 마음에 그림의 작가 루벤스가 몹시 얄미웠던 기억이 납니다(네로가 죽음을 맞이한 그림은 벨기에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있는 <십자가를 세움>과 <십자가에서 내림>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미술 기행에서 꼭 만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루벤스가 그린 <로물루스와 레무스(Romulus and Remus)>가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났습니다.  

'바로크'라는 사조를 뛰어 넘는 작가들의 개성

르네상스가 지향했던 보편적 유형의 인간이 아닌 화가의 취향과 감수성이 반영된 인간형. 그래서 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풍만하고 건강하며 때로 유쾌하게 보이는 인물들. 그리고 춤을 추는 듯 화려한 색채의 향연까지... 테베레 강의 신, 티베리우스와 어머니 실비아의 비호 아래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양치기 파우스툴루스가 구출하는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에도 루벤스의 개성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반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흐름을 타고 카라바조와 안니발레 카라치로부터 시작돼 루벤스와 렘브란트에 의해 국제성을 획득하게 된 바로크 회화의 전통. 그런데 이즈음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카라바조나 카라치, 루벤스,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등의 그림이 앞선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시기의 그림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정도는 미술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없이 작품들만으로도 충분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바로크 거장들의 공통분모를 찾는 것은 어떨까요? 기초적인 지식 없이는 아마 쉽지 않은 일일 테지요. 비전공자인 나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 한 번 언급했듯이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tenebrism, 어두운 방식)'에 자극을 받은 일련의 작가들, 즉 루벤스,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등의 초기 작품에서는 어느 정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극단적 리얼리티의 카라바조, 자유로운 화면 구성과 현란한 색채를 선보인 루벤스, 순수한 회화적 요소인 빛과 색채에 주목한 벨라스케스, 주체적 작가 정신을 드러낸 렘브란트. 그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과 후반기의 그림들을 보면, 어떤 공통점을 찾아서 그들을 '바로크'라는 양식으로 묶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바로크'라는 말 자체가 고전주의의 부활을 지향했던 18세기 중, 후반의 독일 미술 사학자들이 17세기 미술을 비하할 의도로 만들어낸 말인 걸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어쩌면 사조를 뛰어넘는 작가의 개성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주제넘은 생각을 하며 루벤스를 지나 그림의 미로를 헤쳐 갑니다. 아직은 여전히 이 로마에 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황홀한데, 이렇게 매 순간 카라바조를, 루벤스를, 벨라스케스를, 베르니니를 만나고 르네상스와 바로크와 고대 로마 속을 걷고 있다는 게 깨고 싶지 않은 꿈 속 같습니다.

다음으로 만날 작품 역시 고대 로마를 소재로 한 그림,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의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입니다.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는 그렇게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코르토나는 베르니니, 보로미니와 함께 바로크 시기 뛰어난 건축가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가 남긴 '바르베리니 궁전'의 천장화와 피렌체 '피티 궁전'의 천장화는 화려한 바로크 천장화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는 동생 레무스를 살해하고 권력을 독차지한 로물루스가 일으킨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도시 건설 초기 인구 부족으로 고민하던 로물루스는 대규모 정착지를 만들어 이웃 나라 사람들을 불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추방자, 망명자, 떠돌이, 범죄자들로 대부분 남자뿐이었죠. 로물루스는 이들에게 짝을 지어주기 위해 이웃의 사비니 부족에게 여자들을 좀 보내 줄 것을 부탁합니다.

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하죠. 그러자 로물루스는 이웃 부족들을 초대하여 축제를 벌이고 그 과정에서 부하들로 하여금 사비니의 여자들을 납치하게 합니다. 비무장 상태의 사비니 남자들은 도망가기에 바빴겠죠. 몇 년 후 전열을 정비한 사비니 부족은 이 사건에 대한 복수로 로마를 침공합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이미 로마인의 아내이자 어머니가 된 사비니의 여인들이 전투의 한 가운데 뛰어들어 두 부족을 중재하고 나선 것이죠. 이후 두 부족은 화합을 이루게 되고 동맹 관계를 맺습니다. 말하자면 고대 부족 간의 혼인 동맹 관계를 상징하는 이야기인 셈입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 떠올리게 한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로물루스 왕의 신호로 사비니 여인들을 납치하는 로마 병사들의 모습입니다. 바로크 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그림입니다.
▲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로물루스 왕의 신호로 사비니 여인들을 납치하는 로마 병사들의 모습입니다. 바로크 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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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토나의 그림은 로물루스의 신호를 시작으로 여자들을 납치하는 로마 병사들과 뜻밖의 사태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비니 여자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 특유의 극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묘사가 잘 드러난 작품이지요. 그런데, 점잖게, 납치란 단어로 표현했지만 실제 로마인들의 행동은 겁탈이고, 집단 성폭행이었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이지요. 그에 비하면 사비니 부족의 복수는 정당해 보입니다.

나아가 전쟁과 이후 이어질 비극의 악순환 보다 평화를 선택한 사비니 여인들의 행동은 자기 희생에 바탕을 둔, 처절하지만 주체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이 그림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우리 역사의 비극의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이웃 나라가 우리의 여성들에게 저질렀던 치떨리는 만행. 반성과 사죄는커녕 아직도 왜곡과 부정만 일삼고 있는 이웃 나라의 위정자들을 떠올리면, 여인들의 중재 이후 적극적인 사죄와 포용 정책으로 이웃과의 공존을 이끌어냈던 고대 로마의 지도자는 그나마 "패자마저도 자신에게 동화시킨다"(플루타르코스)는 역사의 평가(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대 로마의 폭력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를 받을 수 있었겠지요.

니콜라스 푸생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푸생의 작품으로 바로크 양식의 코르토나의 그림과 좋은 비교가 됩니다.
▲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니콜라스 푸생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푸생의 작품으로 바로크 양식의 코르토나의 그림과 좋은 비교가 됩니다.
ⓒ 위키피디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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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라는 소재도 그렇지만 이 그림을 주목한 다른 이유는 니콜라스 푸생의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와의 비교 때문입니다. 푸생은 서양 미술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로 매너리즘과 바로크 시기에 활동했지만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시조로 분류되는 작가입니다. 코르토나와 푸생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바로크와 고전주의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죠. 푸생의 뒤를 이은 신고전주의 작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와 함께 보면 그 차이는 더 명확합니다. 오래 전 서양미술사를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코르토나의 작품을 끝으로 지하 통로를 통해 박물관의 또 다른 건물, '누오보 궁전'으로 갑니다. '누오보 궁전'도 고대 로마의 조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각종 신들의 상을 비롯해 황제들의 흉상과 고대 로마의 지배층의 조각상들 중에서 꼭 만나봐야 할 작품은 <카피톨리노의 비너스(Capitoline Venus)>입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밀로의 비너스>보다는 유명세가 떨어지긴 하지만, 고대 그리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의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청동 조각상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카피톨리노의 비너스>.

좀 쑥스러운 기분으로 한 전시실을 오롯이 차지하고 있는 미의 여신의 누드를 삥 둘러가며 자세히 감상합니다. 여신은 목욕을 준비하다가 낯선 시선을 의식하고는 몸을 움츠리고 있습니다. 앞서 라파엘로의 <라 포르나리나>를 통해 언급했던 베누스 푸디카 즉, '정숙한 비너스'의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생각보다 많이 풍만해 보이긴 하지만, 한쪽 발에 무게 중심을 두고 다른 쪽 무릎은 자연스럽게 약간 구부려서 전체적으로 완만한 'S'자 모양을 보이는, 이른바 '콘트라포스토' 자세도 자연스럽고 볼수록 매력적입니다.

'카피톨리노의 비너스'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밀로의 비너스' 보다 앞선 시대의 것으로 고대 그리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의 원작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
▲ 비너스 '카피톨리노의 비너스'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밀로의 비너스' 보다 앞선 시대의 것으로 고대 그리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의 원작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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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누드를 보고는 약간은 황홀해진 기분으로 다른 작품들을 감상합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은 발도, 허리도, 터진 물집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렇게 작품을 감상하던 내 발길이 어느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 멈춥니다.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그 속에 한 남자의 고통스러운 뒷모습이 보입니다. 큐레이터는 얄궂게도 그의 맞은편 창문에 사랑의 신 큐피드와 연인 프시케의 키스 조각상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그들을 보는 것이 힘든 듯 고개를 숙이고 목에 밧줄을 매단 채 죽어가는 남자, 그는 바로 <빈사의 갈리아인>(원명은 카피톨리노의 갈리아인 Galata Capitolino)'입니다.

헬레니즘 시기의 청동 작품을 모방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 작품은 비록 모작이지만, 뛰어난 작품성이 돋보입니다.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한 갈리아인(오늘날 프랑스 지역) 전사로 발 밑의 관악기로 보아 나팔수로 추정되는 작품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빈사 지경, 죽어가고 있습니다. 오른쪽 가슴 아래의 선명한 상처, 아무 기력도 남아 있지 않은 듯 위태롭게 땅을 짚고 있는 오른팔, 그리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벌어진 입에선 가쁜 숨마저 새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토록 고통스러운 작품이 또 있을까요? 앞에서 만난 살가죽이 벗겨져 죽은 '마르시아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빈사의 갈리아인'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고통 속 '빈사의 갈리아인' 상 맞은편에 큐피드와 프시케의 키스 상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 빈사의 갈리아인 '빈사의 갈리아인'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고통 속 '빈사의 갈리아인' 상 맞은편에 큐피드와 프시케의 키스 상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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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사의 갈리아인'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오른쪽 가슴 아래의 상처. 힘겹게 버티고 있는 오른팔. 죽음을 앞둔 사내의 고통이 저리게 전해옵니다.
▲ 빈사의 갈리아인 '빈사의 갈리아인'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오른쪽 가슴 아래의 상처. 힘겹게 버티고 있는 오른팔. 죽음을 앞둔 사내의 고통이 저리게 전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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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자체도 감동적이지만 잠시 언급한 것처럼 햇빛과 다른 작품을 이용한 큐레이터의 탁월한 작품 배치는 감동을 더 해줍니다. 하긴, 달리 이탈리아겠습니까?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뿔 달린 모세... 왜?

이렇게 엄청난 조각 작품과 루벤스와 카라바조와 틴토레토, 코르토나의 명화들까지 만나고 '카피톨리니 박물관'을 나오니​ 이미 오후 3시 반. 점심도 거른 채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발뒤꿈치 물집이 터진 자리가 또다시 아려옵니다. 현재까지도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마르첼로 원형극장(Teatro di Marcello)'과 항구의 신을 모신 '포르투누스 신전(Tempio di Portuno)'을 거쳐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Cosmedin)'으로 향합니다.

연인들의 날, '밸런타인 데이'의 유래가 된 성 발렌티노의 유골이 있는 이 성당은 로마를 찾는 이면 누구나 한 번쯤 찾아오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또 다른 상징,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a)'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죠.

항구의 신을 모신 '포르투누스 신전'입니다. 멀리 왼쪽에 보이는 탑은 '진실의 입'이 있는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입니다.
▲ 포르투누스 신전 항구의 신을 모신 '포르투누스 신전'입니다. 멀리 왼쪽에 보이는 탑은 '진실의 입'이 있는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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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입' 로마,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하수구 뚜껑으로 사용되기도 한 '진실의 입'은 트리톤의 얼굴을 조각한 것입니다.
▲ 진실의 입 '진실의 입' 로마,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하수구 뚜껑으로 사용되기도 한 '진실의 입'은 트리톤의 얼굴을 조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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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진실의 입'은 트리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인데 한때는 가축 시장의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역시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이 손을 넣고 물린 척 장난을 쳐서 오드리 헵번을 놀라게 하는 장면에 등장하여 유명세를 타게 됐죠.

지금도 수많은 여행객이 이곳에서 그 장면을 연출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나도 다른 여행자들과 마찬가지로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사진을 찍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사진 찍히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히 한 컷 남겨야겠죠? 혼자라서 다른 여행객에게 부탁할까 생각했는데, 약간의 기부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렇게 '진실의 입'까지 만나고 나오니 더 이상 움직일 기력이 없습니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급하게 '리조' 뭐시기로 시작하는 메뉴를 시켰더니 정말 반갑게도 덮밥 같은 것이 나왔습니다. 닷새 만에 처음 먹는, 쌀로 된 음식입니다. 허겁지겁, 말 그대로 흡입을 하고 뜨거운 물까지 마시고 나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습니다.

식당에서 나와 다시 콜로세움을 거쳐 오늘의 마지막 일정,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Basilica di San Pietro in Vincoli, 성 베드로를 묶었던 쇠사슬을 보관한 성당)'으로 향합니다. 한 대학의 부속 건물에 포함된 성당이라 그런지 다른 성당과 달리 외관 자체는 별 볼일 없이 매우 소박합니다. 그런데 이 소박한 곳에서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상 중 하나인 '모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느 성당과 다른 구조에다가 찾아오는 여행객도 별로 없어서 입구를 못 찾고 잠시 주위를 헤맸습니다. 하지만 성당을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언뜻 '모세상'이 보입니다.  또 다시 전율이 일어납니다. 가까이 가보니 좀 어두컴컴합니다. 1유로를 넣으면 조명이 들어오고 자세히 모세상을 볼 수 있는데, 이 꼼쟁이 같은(?) 서양인들은 아무도 동전을 넣지 않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동전을 넣고 한참 동안 '모세상'을 감상합니다.

로마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중앙 제단. 성 베드로를 묶었던 쇠사슬을 보관하고 있는 성당입니다.
▲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로마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중앙 제단. 성 베드로를 묶었던 쇠사슬을 보관하고 있는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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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모세상' 로마,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잘못된 번역의 결과 머리에 뿔을 달고 있는 모세의 모습이 사실적이면서도 신비롭습니다.
▲ 모세 미켈란젤로 '모세상' 로마,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잘못된 번역의 결과 머리에 뿔을 달고 있는 모세의 모습이 사실적이면서도 신비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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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을 들고 막 일어서는 순간의 모세. 특이하게도 그의 머리에는 뿔이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뿔 달린 모세상'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는 당시 "모세 얼굴에서 빛이 났다"는 구약성서의 구절 중 빛을 뜻하는 'cornatum'이란 단어를 라틴어, '뿔(cornatus)'로 잘못 번역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12세기에서 16세기의 모세상에는 뿔이 많이 달려 있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뿔 때문에 미켈란젤로의 이 '모세상'에서는 사실적인 모습에다가 신비로움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지도와 계획에 얽매이지 않고 고대 로마의 흔적들을 찾다보니 길을 잘못 들어서기도 했고 출구를 못찾아 여러 번 헤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호텔로 돌아와 보니 고대 로마의 '오래된 미로'(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가 아닙니다.) 속을 막 빠져나온 것 같아 색다른 기분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로마를 떠납니다. 그런데 많이 아쉽지는 않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이틀 동안 다시 로마를 만날 테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내일, 내 꿈과 그리움의 도시, '피렌체'로 향합니다.

'목신 판'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누오보 궁전'의 중앙 정원. 거대한 '마르포리오 분수' 좌우에 목신 판의 섬세한 조각 한 쌍이 서 있습니다.
▲ 목신 판 '목신 판'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누오보 궁전'의 중앙 정원. 거대한 '마르포리오 분수' 좌우에 목신 판의 섬세한 조각 한 쌍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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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 5편 '피렌체'로 이어집니다.

2014년 12월 5일부터 2015년 1월 4일까지 이탈리아 미술기행을 다녀왔습니다.



태그:#카피톨리니박물관, #이탈리아, #미술기행, #로마, #이탈리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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