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였던가, 나는 매년 한두 차례 두드러기를 심하게 앓곤 했다. 주로 돼지고기를 잘못 먹으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맨밥에 김치만 먹으며 약을 복용하면 일주일 내 증상이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20대 중반부터 두드러기는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두드러기를 앓는 빈도가 점점 늘어났다. 내과와 피부과를 오가며 약을 처방받았지만, 붉게 부풀어 오른 피부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먹는 약만으로는 호전이 되지 않아 바르는 약도 처방받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두드러기는 점점 만성화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극심한 가려움이었다. 가려움증은 밤과 새벽에 특히 심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도중에 깨는 일이 다반사였다. 스트레스로 정신까지 피폐해졌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본적이고 확실한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알레르기 전문 한의원을 찾아갔다.

병원에서는 무엇보다 먹는 것에 주의하라고 했다. 치료를 받는 동안 돼지·닭고기를 피하고, 식품 첨가물이 많은 육류 가공 식품, 시중의 빵·과자·아이스크림은 치료 후에도 가급적 먹지 말라고 했다. 전부 내가 즐겨먹던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육류 가공 식품을 특히 좋아했다. 남들은 반찬으로 먹는 햄이나 소시지를 간식으로 먹곤 했으니까.

그 후 나는 두드러기를 앓지 않았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의 효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식습관의 변화가 없었다면 완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많은 개·고양이 반려인이 그렇듯 나 역시 반려고양이를 기르면서 동물들의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농장 동물이 사육되는 방식에 마음이 쓰이면서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밥상에서 육류가 점차 사라졌고, 자연히 가공 식품·인스턴트 식품과도 멀어졌다.  

긁고 또 긁어도 사라지지 않는 가려움. 그 고통은 실제로 겪기 전에는 알기 힘들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고통도 아토피 환자의 괴로움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아토피를 앓는 자녀가 잠을 자는 동안 피부를 긁어 상처가 나지 않도록 손을 묶어둬야만 했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토피 환자들과 그 가족의 고통을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아토피 환자는 사람 말고도 더 있다. 오늘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많은 개가 아토피를 앓는다. 지구 상의 수많은 종 가운데 유독 사람, 그리고 사람이 기르는 개들이 아토피로 고생한다.

아토피의 양상은 사람과 동물 모두 동일하다. 증상이 한 번 나타나면 반복적으로 재발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진다. 이것은 아토피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을 괴롭히는 고민이다. 아토피는 완치가 불가능한 병일까? 박종무 수의사의 책 <개 아토피 자연 치유력으로 낫는다>는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시작됐다.

아토피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 

<개아토피 자연치유력으로 낫는다>
 <개아토피 자연치유력으로 낫는다>
ⓒ 리수

관련사진보기

여느 수의사와 마찬가지로 <개아토피 자연치유력으로 낫는다>의 저자는 서양 의학 시스템에서 수의학을 공부했고, 서양 의학에 따라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는 다른 질병과 달리 완전히 낫지 않는 아토피의 치료법을 찾아 수많은 피부병 세미나에 참석하며 그곳에서 얻은 원리와 처방을 임상에 적용했다. 하지만 저자의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서양 의학에 따르면 아토피는 완치될 수 없는 질병이었다. 세계적인 피부병 전공 수의학박사의 세미나에도 참석했지만, 그곳에서도 "아토피는 완치되는 질병이 아니며, 약으로 평생 관리를 해야 하는 질병"이라고 했다.

저자의 오랜 고민은 서양의학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면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서양 의학은 몸에서 일어나는 이상 증상을 '있어서는 안 될 것'으로 간주하고, 질병의 '원인'을 밝히기보다는 '증상'을 없애는 데 집중한다. 가려움증이 있으면 가렵지 않게 하는 처방을, 염증이 생기면 염증을 잠재우는 처방을 내리는 식이다.

이렇게 증상에 따라 처방하는 것을 '대증 요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증상만을 잠재우는 서양의학의 프레임에는 그러한 증상이 '왜(why)' 일어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원인은 내버려둔 채 불편한 증상만을 잠재우는데 주력하기 때문에 아토피는 계속 재발하게 된다.

저자는 이것을 '화재 경보기 원리(smoke-detector principle)'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화재 경보 시스템이 갖춰진 건물이 있다. 그런데 이 건물에 불량배들이 수시로 들어와 불장난을 한다. 그 결과 화재 경보 시스템이 요란하게 울린다. 여기서 건물이 몸이라면, 화재 경보 시스템은 해로운 물질에 대한 몸의 면역 반응, 즉 가려움증이나 염증과 같은 아토피 증상이다. 서양 의학에 따른 현재의 아토피 치료는 시끄럽다는 이유로 화재 경보 시스템을 차단하는 격이라고 한다. 

서양 의학이 아토피 증상을 '있어서는 안 될 것'으로 간주하는 것과 달리, 동종 요법은 똑같은 증상을 '신체가 질병을 이겨내는 치유의 과정'으로 본다. 동종 요법은 독일의 사무엘 하네만이라는 의사가 '유사성의 법칙'에 따라 창시한 것으로, 어떤 증상을 나타내는 약물은 같은 증상을 나타내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원리에 입각하여 처방을 내린다. 동종 요법은 국내에는 아직 낯설지만, 미국·프랑스·영국·인도 등 많은 나라에서는 대체 요법으로 자리를 잡아 병원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동종 요법에 따르면 신체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항상성(homeostasis)'을 갖고 있다. 동종 요법은 가려움이나 염증 등의 아토피 증상을 몸이 어떤 해로운 것에 대항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싸우는 과정으로 본다. 그리고 이런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데 주력한다.

동종 요법은 질병에 걸린 환자에게 그 병과 유사한 증상을 일으키는 약물을 투여해 신체의 자연 치유력을 촉진한다. '레메디(remedy)'라고 하는 이 약물은 몸이 질병을 배출하는 것을 돕는다. 레메디의 종류는 5000가지에 이르며, 주로 동물·식물·광물 등으로 만들고 세균이나 곰팡이, 심지어 태양광으로 만든 것도 있다.

또한 동종요법은 아토피를 피부만의 문제가 아닌 몸 전체의 관계 속에서 이해한다. 몸은 해로운 물질이 들어오면 주요 장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 스스로를 보호한다. 피부와 귀는 바로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장소다. 반려견의 귀·피부에 생기는 가려움증과 염증은 몸이 해로운 물질을 제거하면서 생겨나는 반응이라고 한다. 

아토피의 원인과 완치

시중에 판매되는 식품의 상당수가 기업의 이윤 추구 수단으로 전락해 소비자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오직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개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상업 사료와 간식을 꼽는다. 실제로 개들에게 아토피가 급격히 증가한 1980년대 이후는 사료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수입·판매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시중 사료와 간식의 문제점은 주 재료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오늘날 가축들은 햇빛 한 점, 바람 한 줄기 들지 않는 공장식 농장에서 항생제를 비롯한 온갖 화학 물질이 첨가된 사료를 먹고 자란다.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육된 가축의 고기로 만든 사료가 그것을 먹는 개들의 건강에 좋을 수 있을까?

또한 많은 사료 회사가 원가 절감을 위해 병든 동물의 신체 부위를 비롯한 축산 업계의 부산물을 재료로 쓴다. 게다가 전 세계를 상대로 사료를 판매하기 때문에 제품 변질을 막기 위해 방부제·살균제·산화방지제·발색제·표백제·향미증진제·유화제·안정제·증점제·감미료 등의 첨가물을 넣는다. 사료에 들어가는 유전자 조작 식품(GMO) 역시 문제다. GMO의 위험성은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저자는 아토피 개선을 위해 자연 치유력과 면역력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시중에 판매되는 사료와 간식 대신 반려인이 좋은 식재료로 직접 만들어 먹이는 방법도 추천한다. 이 책에는 아토피에 도움이 되는 식재료로 사료와 간식을 만드는 방법이 소개돼 있다.

아토피는 좋은 음식만으로도 상당히 호전되지만, 증상이 심한 개들에게는 가려움증 관리가 필요할 수 있다. 이 때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스테로이드·항히스타민제·항생제 등을 이용한 대증 요법이다. 이들 약물은 당장의 심한 증상을 가라앉히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장기간 사용할 경우 부작용과 내성, 간이나 신장의 손상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아토피 증상을 완화하는 동종 요법 약물과 아로마 테라피를 소개한다.

식물은 동물처럼 몸을 움직여 위험을 피할 수 없기에 스스로를 보호하는 힘이 내재돼 있는데, 에센셜오일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에센셜오일은 식물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세균 침입에 대한 항 미생물 작용을 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면역력을 촉진한다. 아로마 테라피는 다양한 식물에서 채취한 에센셜오일을 이용하여 반려견의 신체와 정신을 종합적으로 치유하는 홀리스틱 요법이다.  

설퍼는 유황으로 만든다. 아토피 피부염을 포함한 동물의 피부 질환에 흔하게 사용된다.
▲ 동종요법 약물인 설퍼(Sulphur) 설퍼는 유황으로 만든다. 아토피 피부염을 포함한 동물의 피부 질환에 흔하게 사용된다.
ⓒ 조세형

관련사진보기


이 책이 지적했듯이 아토피는 '환경병'이다. 아토피의 원인은 음식 외에도 오염된 공기, 콘크리트와 각종 유해물질로 이뤄진 반 생명적인 주거 환경,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 무수히 많다. 이 책은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가 썼지만, 책에 담겨있는 문제들은 사람과 동물 모두의 문제이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의 고민과 제안들은 결국 생명 친화적인 삶을 되찾기 위한 노력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것들로부터 너무나 멀어진 오늘날, 생명 친화적인 삶이 막막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얻은 지식을 일상에 적용하는 독자들의 실천이 보다 지속 가능하고 생명 친화적인 세상을 향한 작은 발걸음이 되리라고 믿는다. 아토피를 비롯한 알레르기를 앓는 개를 둔 반려인은 물론,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도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개 아토피 자연치유력으로 낫는다 | 건강한 먹거리와 자연주의로 제시하는 개 아토피의 새로운 패러다임> (저자 박종무·리수 펴냄)



개 아토피 자연치유력으로 낫는다 - 건강한 먹거리와 자연주의로 제시하는 개 아토피의 새로운 패러다임

박종무 지음, 리수(2015)


태그:#반려견, #아토피, #피부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