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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산골마을에 살고 있다. 뒤란에 두 그루의 팽나무와 오래 된 감나무가 있고 마당에는 100년 묵은 참나무가 있다. 그들은 긴 팔을 뻗어 집 유리창을 어루만지고, 넓은 그늘로 마당을 얼싸 안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온통 산천지로 사방에서 새의 울음소리가 퍼져 나간다. 사과, 배, 포도나무 등, 과실나무를 심고 그것들이 커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또 얼마나 큰 낙인지!

산골에도 여름이 와락 다가섰다. 덥기까지 하다. 엊그제 연두색으로 온 세상이 출렁였건만 세월은 또 흘렀다. 땅에서, 나무에서 솟구치던 생명의 환희.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신비롭고 은혜롭다. 자연은 경이로운 태동으로 시작하여 뭇 생명이 열정적으로 성장하는 봄 끝까지 왔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여름을 향해 가야할 때다. 상추밭을 위한 발걸음이 잦고, 가지, 고추를 묶는 수고로움도 이내 넘어섰다. "무성한 여름과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도 얼마 남지 않았나보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생명의 환희만 노래하기에는 우리 산천의 현실이 녹록치 않다. 자연이 사람에게   말없이 베풀 수 있는 임계점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언제까지 인내해 줄 수 있을까. 부르트고 갈라진 상처투성이의 지금에 이르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터무니가 없다. 자연 속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은 모든 생명이 함께 누려야 하는 모두의 권리다. 자연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다른 생명 없이 살 수 없는 인간은 그 삶의 속성상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의 자연에 대한 인식과 처방은 너무나 열악하다. 자연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은 거의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정책에서도, 민간부문의 역할도 정치나 경제 등 다른 부문에 비해 크게 아쉽다. 이제 우리는 물론, 후손들을 위해서도 제대로 된 노력을 기울일 때가 되지 않았는가! 더욱이 전원생활이 붐업되고 베이비부머가 '백금세대'로 일컬어지는 시기를 맞았으니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실수요도 증대하고 있는 것이다.

동네 할머니들께서는 산골에 문득 나타난 나를 머리만 쓰다듬지 않을 뿐 '젊은이'로 융숭하게 대접하신다. 지나는 길이면 상추와 무, 배추, 대파를 쑥 뽑아 건네시곤 한다. 호박과 고구마를 갖다 주시고, 감을 몇 차례나 얻어먹었다. 시골 어른들이 주기를 좋아하시고 사람을 얼마나 그리워하시는지 이곳에 살면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그런 할머니들께 차마 말씀드리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는 일이 있으니 난처하기 짝이 없다.

농사용 쓰레기의 처리문제다. 굴러 온 돌이 어찌 다박다박 모두 말씀드릴 수 있겠는가. 솔직히 흙을 덮어 작물을 키운 비닐과 농약병 등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시는듯하니 안타깝다. 집을 지을 때도 마당가에서 폐비닐과 병, 그리고 옷가지 등속이 한 무더기 묻혀 있는 것을 캐냈었다. 어째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우리 농촌의 이런 잘못들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장님께 물었더니 지금도 빈 병이나 비닐은 마을회관 앞에 모아 놓기만 하면 면사무소에서 수거한다는 대답이었다. 그것들을 가지고 움직이기가 버겁거나 더러 귀찮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렇다면 적정한 보상을 통해 노인들이 가지고 오시도록 만드는 것이다.

시골의 노인들 대부분 작은 용돈도 긴하게 쓰시니 예컨대 거두는 날짜를 정해 가져 오시게 하고 무게를 재서 작더라도 보상을 해드리는 것은 어떤가. 고물상의 예로도 어느 정도의 액면보상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작지만 보탬이 되는 시스템에 대해 거듭 고민했으면 좋겠다. 경험으로 미루어 예산은 큰 부담이 아닐 것이다. 산 밑자락의 맑은 개울에 생채기처럼 팽개쳐진 희고 검은 비닐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런 저런 궁리를 해본다.

덧붙이는 글 | 광주일보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산골, #쓰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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