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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2015년의 허리인 6월도 지나간다. 날씨 참 좋다. 그야말로 하늘은 푸르고 햇살 좋고 바람도 살랑 분다. 이런 날은 도시락 싸서 좋은 벗들이랑 축령산에라도 오르면 좋겠다. 이 좋은 날 다들 무얼 하는지 마을이 하도 한가로워서 언젠가 해인사를 찾았을 때 마중 나온 스님과 경내를 거닐며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아, 정말 조용하네요."
"예, 절이 절간처럼 조용하지요?"
"하하하! 그러네요."
"경내가 경내 선생이 오는 줄 알고 오늘은 더 조용하네요."


그 때 나는 경내(절 안)라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고 크게 웃고 말았다. 스님도 같이 쾌활하게 웃었다.

내 친구 10살 영민이네

영민이 가족들이 사진찍기 부끄러워해서 집만 찰칵.
▲ 영민이네 집 영민이 가족들이 사진찍기 부끄러워해서 집만 찰칵.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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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 마을은 오후가 되어 우리 앞집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짜리 영민이(가명)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을에 아이 소리와 함께 영민이네 멍멍이 다미도 반갑다고 목청껏 짖어댄다. 다미가 짖어대면 이집 저집에서 견공들이 각자 자기 존재를 알리느라고 한바탕 떠들어 댄다. 그 때부터 옆집 할머니가 나오셔서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당신네 개를 야단치는 소리를 시작으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고 동네도 한결 활기차 진다. 아이 하나의 역할이 정말 대단하다.

사람 사는 곳은 도회지나 시골이나 거의 비슷비슷하다. 영민이네 식구는 엄마 아빠 누나 영민이 멍멍이 다미 이렇게 다섯 식구다. 아침이면 영민이 아빠는 미리 출근을 하고 영민이 엄마가 아이들을 태워서 학교에 보내고 자기 일을 본다. 그렇다고 일정한 직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민이 엄마는 도회지에서도 보기 드물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저렇게만 살면 가난하게 사는 사람 없겠구나, 싶게 부지런한 사람이다.

영민이 엄마는 아이들 등교시키고 집에 돌아와서 부랴부랴 집안 살림을 해 놓고, 초등학교 앞 분식집으로 출근을 한다. 본인이 직접 아주 작은 분식집을 하는데, 학교 특히 초등학교의 특성상 아이들이 하교하는 낮 12시에서 3시 사이에만 잠깐 붐비고 나머지 시간은 파리가 날린단다. 그래서 궁리 끝에 오후에는 재가 요양보호사 일을 나간단다. 요양보호사 일도 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몹시 불안해서 방학 때는 학원 미니버스 운전을 한단다. 내가 깜짝 놀라며 감탄을 하자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분식집은 학교 앞이라서 방학하면 손님이 없어요. 대신에 학원으로 아이들이 몰리지요. 학원 버스 운전을 방학 때만 하면 저도 좋고, 방학 때만 특히 바쁜 학원 측에서도 좋은 일이지요."
"아니, 어떻게 그 일을 다 감당하세요?"
"어쩔 수 없잖아요, 한 살이라도 젊고 아이들 어릴 때 벌어야지 나중에 고생을 안 하지요."


나는 나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영민이 엄마의 손을 잡고 주저 없이 존경한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그 다음부터는 영민이네 식구를 보면 괜스레 미소가 지어지고 내 가슴이 뿌듯하다. '이렇게만 부지런하다면 어디에 살아도 가난하게 살지는 않을 것 같다'는 내 말에 영민이 엄마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얘기를 해 줬다.

"저희도 도회지에 살다가 제 작년 봄에 이사 왔어요. 도회지는 정말 살기 힘들어요. 첫째 집장만은 언제 할지 막막하잖아요. 그런데 이 집은 이층집인데 도회지에 살던 전셋집의 절반 값에 산 거예요. 일거리만 해도 그래요, 무슨 일을 하건 인건비는 도회지와 비슷한데 지출이 적잖아요. 채소는 텃밭에서 다 나오니까 먹는 데 드는 돈도 많이 절약이 돼요. 진작 시골로 들어 올 걸 그랬어요."
"그럼 애들 교육은 어쩔 거예요? 중고등학교 때는 도회지로 갈 거예요?"
"아니요, 시골에도 학교 있고, 학원 있어요. 삭막한 도회지가 싫어서 시골 왔는데 아이들을 왜 또 그 경쟁 속으로 들여보내요."


영민이 엄마 말은, 도회지에서 고생하는 만큼 시골에서 하면 수입대비 지출이 적다는 것. 도회지는 눈으로 보는 것들이 많아서 낭비도 보는 만큼 하게 된다. 반면에 시골은 그만큼 덜 쓰니 돈을 빨리 모을 수도 있고 일거리 경쟁률도 낮아서 마음은 훨씬 부자라는 것이었다.

시골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내려왔으면

영민이네 멍멍이 다미
▲ 다미 영민이네 멍멍이 다미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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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민이가 참 좋다. 나이는 10살이지만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얘기를 해 보면 제법 궁리가 훤하다. 같은 초등학생이지만 고학년인 누나는 하교 후에 학원에 가고 자기는 혼자서 집에 있지만 심심할 겨를이 없단다. 학교 갔다 오면 다미랑 놀아줘야지, 숙제해야지, TV도 봐야지, 책도 읽어야지. 그러면서 심심하냐고 묻는 내 말에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심심하면 아줌마, 아니 할머니라고 해야 하나?"
"야, 할머니는 너무 심했다. 아줌마라고 불러."
"아 예, 아줌마가 놀아주실 거잖아요. 아줌마 집에 놀러 가도 되지요?"


고 녀석 참 귀엽기도 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러라고, 제발 놀러 좀 오라고 했지만 아직 영민이는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없다. 영민이네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일거리가 없어서, 경쟁이 싫어서, 혹은 건강이 안 좋아서, 어떤 이유나 경우에서건 시골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내려 왔으면 좋겠다.

요즘은 시골도 문화생활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인근에 위성 도시가 있으니까. 우리 집에서 광주광역시 번화가까지 버스로 30분이면 갈 수 있다. 꼭 승용차가 없어도 움직이는 데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는 말이다.

오디는 6월 10~15일 사이에 수확한다. 이곳은 익은 오디를 거의 다 따고 덜 익은 것은 주인이 먹으려고 남겨 두었다.
▲ 뽕나무 오디는 6월 10~15일 사이에 수확한다. 이곳은 익은 오디를 거의 다 따고 덜 익은 것은 주인이 먹으려고 남겨 두었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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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지는 인구대비 땅이 좁고 일거리가 귀하지만 시골은 땅이 많으니 집값도 싸고 일거리는 본인만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있다. 내 주변에는 특수 농작물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한 가지 소개를 하자면, 먹거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알록달록 푸드'(내가 만든 말)가 그것이다.

보라색 음식 중에 한때는 복분자가 인기를 끌었었지만 요즘은 뽕나무에서 생산되는 오디가 우리 동네에서는 대세다. 뽕나무는 다년생이라서 심어서 키워 놓으면 해마다 오디가 열린다. 그것을 따서 팔기도 하지만 일손이 모자라면 오디를 시중에 파는 도매상 사람들이 직접 와서 따 가기도 한다. 오디뿐만이 아니라, 뽕잎이 연할 때 따서 뽕잎차로도 만들어서 팔기도 한다. 군데군데 구지뽕을 심으면 그것은 뽕나무 자체가 약이라서 그것도 돈이 된다고 뽕나무를 가진 사람이 귀띔해 준다.

농사라는 게 물론 몸은 힘들겠지만, 그들의 수입을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더러는 고생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도 인내와 근성만 있다면 얼마든지 성공적인 농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시골에 가면 텃새를 부린다. 배타적이다'고들 하지만 모두가 제 할 탓이다.

모쪼록 젊은이들이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긍정적인 눈으로 농촌을 보고 생각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뽕나무, #오디, #특수작물, #귀농, #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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