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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반에서 선생님이라는 큰 존재로 아이들 앞에 서 있다. 하지만, 우리학교 안을 살펴보면 나만큼 작은 사람도 없다. 그렇다. 나는 그저 그런 신규교사다. 나의 목표는 '생존'이다. 그것이 내가 신규교사 생존기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은 아마, 신규교사라면 누구나 느껴봤을(나만 느꼈으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신규교사도 사회에서는 그냥 초년생이다.
 신규교사도 사회에서는 그냥 초년생이다.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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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규교사로 처음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협의를 가진 날이다. 큰 책상을 둘러 담임교사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차지하고 학년부장 선생님께서 이것저것 3월에 처리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하신다. 우와... 아무 것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태어나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정말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중요한 말들을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각종 줄임말과 학교에서만 쓰이는 은어들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나 말고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만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만 같았다. 뭐, 처음부터 알아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했지만, 이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겠다. 어느새 회의가 끝난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옆 선생님을 잡고 물어본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말이에요?"

2. 선생님? 아니면, 형? 누나?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난 92년생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04년생. 5학년이다. 나와는 열두 살 차이(액면가는 차이가 많이 나지만), 그렇다 띠동갑이다. 요새도 가끔 들려오는 '띠동갑 결혼!', '나이를 뛰어넘은 연상연하 커플'과 같은 이야기는 괜히 내 기분을 요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와 띠동갑이더라도 우리 반 아이들한테는 절대적으로 나는 선생님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나와 선배 선생님들 간의 호칭 문제다. 학교 안에서야 당연히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서로 부르겠지만 문제는 사석이다. 사석에서 만난 이 선배 선생님들을 뭐라 불러야할지 정말 애매하다. 누가 좀 정해주면 좋으련만.

몇몇 선배 선생님들께서는 나에게 괜찮다며 형이나 누나라고 부르라고 얘기하신다. 하지만, 나와는 띠동갑도 넘어서신 분들도 있어, 자꾸 나와 띠동갑인 우리 반 아이들이 생각나 쉽사리 호칭을 내려놓기가 어렵다. 계속 선생님이라고 부르기에는 선배 선생님들이 내게 주시는 애정에 괜히 죄송스럽고. 형과 누나로 호칭을 내려놓자니 내 마음이 무겁다. 그래, 일단 신규교사 티를 좀 벗자. 그럼 나아지지 않으려나?

3. 오늘도 신규교사의 발은 저리다

종례시간, 아이들을 보내려고 준비하던 그 순간. 따르릉. 학급 전화벨 소리가 우렁차게 울린다.  "어, 애들 보내고 나면 교장실에 좀 오세요." 마음이 덜컹거린다. 교장 선생님께서 나를 왜 찾으시나. 온갖 상상력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내가 뭘 잊어버렸지? 오늘 내가 뭘 해야 하더라? 왜 부르시는 거지? 괜히 오늘 오전에 결재 올렸던 파일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 본다.

그렇게 덜컹거리는 마음 부여잡고 찾아간 교장실. 다소 싱겁게(?) 용무가 끝난다. 그래, 생각해보면 오늘 내가 잘못한 일이 뭐가 있는가. 난 떳떳하단 말이다. 도둑이 제 발 저려야 하는데 나는 도둑도 아닌데 발이 저리다. 교장 선생님만이 아니다. 나는 선배 선생님들께서 나를 찾으시노라면, 다시 온갖 상상력이 총출동한다. 신규교사의 발은 오늘도 저리다.

4. 실습생이었던 때가 그리울 때도 있다

나는 교육대학교에서 5학년 아이들과 함께 3주간 수업 실습을 했다. 우연찮게도 내가 처음 담임을 맡고 있는 내 아이들도 5학년이다. 나는 수업 실습에서 열두 번의 수업을 했고, 다행히 내 컴퓨터에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기록들은 내 수업에 아직도 많은 도움이 되곤 한다. 그래서 우리 반 수업을 준비하다가 도움을 받으려고 실습 폴더를 확인하면 새삼 이걸 내가 다 준비했었나 싶을 정도로 놀랍다.

괜히 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3주라는 짧은 시간동안 함께했던 아이들에게는 이토록 하나의 수업에도 온갖 정성과 고민을 쏟으며 준비했던 나인데, 정작 실습생이 아닌 진짜 선생님으로 서 있는 지금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명을 하자면, 그때는 수업 하나에만 정성을 쏟으면 되는 실습생이고 지금이야 수업뿐만 아니라 학급 업무에, 학교 업무에도 정성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상황이긴 하다.

선생님으로서는 불행하게도 내가 업무의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면 학교에 큰 문제가 생기지만, 반대로 아이들의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면 학교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시선을 나눠주는 대신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는 시간도 많다. 내게 주어진 업무가 먼저인지, 학급의 아이들이 먼저인지 혼란스럽다. 내가 공무원인지 선생님인지도 말이다. 가끔은, 업무는 없고 아이들에게만 오롯이 집중했던 실습생 때가 그립다.

5. 강에 떠 있는 오리배가 슬퍼 보인다

"그거 다른 초짜 직장인들도 다 겪는 일인데 엄살 피우지마라. 오히려 너는 편한 거다." 내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이 들린다. 나의 아빠다. 힘내라는 말인 건 알겠지만, 서럽다. 솔직히 선생님의 입장에 서 본 사람이 아니라면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특히,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 역시도 그랬었다.

누군가 초등학교 선생님은 한강에 평화로이 떠 있는 '오리배' 같다고 했다. 밖에서 볼 때에는 평화로이 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끊임없는 페달질이 계속 되고 있는 그 오리배 말이다. 하지만, 신규교사인 나에게는 그 페달질이 정말 힘겹다. 내게 주어진 일들이 낯설뿐더러 처리하는 속도도 한없이 느리기 때문이다. 또, 쉽게 보일 수 있겠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가르치는 내용의 난이도를 떠나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 많은 고민과 생각이 필요하다.

9시부터 15시까지 우리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온갖 기와 힘은 다 빠져나간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가방을 던져두고 털썩 드러누워 버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나도 안다. 다른 첫 직장을 경험하고 있는 사회 초년생들이 얼마나 힘든지 말이다. 그런데, 나는 비교보다는 '잘하고 있다', '열심히 하고 있다', '고생이다'라는 격려와 칭찬의 말을 듣고 싶다.

오늘도 나는 우리 반에서 선생님이라는 큰 존재로 아이들 앞에 서 있다. 하지만, 우리학교 안에서의 나는 아직도 한없이 작다. 그렇다. 나는 그저 그런 신규교사다. 오늘도 여전히 나의 목표는 '생존'이다. 세상 모든 신규교사들아, 파이팅이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태그:#초등학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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