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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 부품 꿈을 안고 혼자 떠난 호주의 워킹홀리데이는 죽도록 고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어 신선한 문화충격과 더불어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었다. 다시 20살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호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간혹 뉴스에서 호주 워킹홀리데이 사건 사고 소식이 나면 데자뷰처럼 20년 전 일이 떠오른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잊히지 않는 순간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그 순간이 영화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시드니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은 날이었다. 집을 나서려는데 평상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옆방 룸메이트와 화장실을 오래 쓰는 문제로 말다툼이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온 순간 핸드폰을 집에 두고 온 걸 알았지만, 다시 얼굴을 마주치기 싫어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은행에 들러 초조하게 내 순서를 기다렸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여행사에 계약을 하고 마지막 한달만은 자유롭게 여행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드디어 나의 순서가 되었다. 그동안 모았던 돈을 모두 찾아 가방에 넣었다.

시드니를 떠나기 한달 전, 모아둔 돈을 찾다

순간 10개월 가까운 나의 생활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처음 3개월 동안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시드니 대학교 청소를 하고 낮에는 고급 아파트를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했다. 저녁에는 킹스크로스 캐피탈호텔 아리랑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기도 했다. 돈이 조금 모아져 영어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인근 관광지를 가보기도 하였다.

그것도 잠시, 그동안 모은 돈도 다 떨어져 오페어를 신청하게 되었다. 오페어는 한국말로 베이비시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집에 살면서 영어도 배우고 월급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가사도우미나 다름없었고, 저임금에 청소부터 요리 설거지까지 거의 모든 집안 일을 해야 했다. 결국은 힘들지만 다시 청소와 서빙일로 돌아갔다. 마지막 남은 한달을 위해서.

고급 아파트 청소하다 말고 휴식을
▲ 1999 호주 워킹홀리데이 고급 아파트 청소하다 말고 휴식을
ⓒ 공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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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아파트 청소하던 시절
▲ 1999년 호주 워킹홀리데이 고급아파트 청소하던 시절
ⓒ 공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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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찾은 가방을 앞으로 해서 안고 집주인을 기다렸다. 오지 않아 공중전화로 연락을 하니 30분 정도 늦는다고 한다. 월세도 줘야 하고 같이 점심도 먹기로 했던 터라 은행 바로 옆 맥도날드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가져올 걸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맥도날드엔 평상시 처럼 사람들이 많았다.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고 가방을 가슴에 안은 채 입구를 바라봤다.

햄버거를 편하게 먹기 위해서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순간, 동양인으로 보이는 깜끔한 차림의 여성이 내 가방 있는 테이블위로 콜라를 엎질렀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맥도날드 직원이 밀대를 가지고 와서 콜라를 닦았다. 순간 나는 가방을 내 의자 뒤에 걸 수밖에 없었고 순식간에 이 모든 것이 일어났다. 집주인이 도착한 순간 내 의자 뒤에 걸어놓은 가방은 사라지고 없었다. 5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던것 같다. 내 가방 안에는 대학시절 학교 다이어리와 그동안 모았던 나의 전재산이 들어있었다.

맥도날드에서...순식간에 사라진 내 전재산

가방이 사라졌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믿어지지 않았다. 맥도날드을 다 뒤지고 직원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만 하였다. 30여 분이 흐른 뒤 친구들과 함께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하였다. 울며 불며 걱정하는 나에게 친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애타는 마음에 하루가 지났지만, 나는 가방을 찾을 수 없었다. 더 정확히는 돈을 찾을수 없었다.

이번에는 호주인 친구를 불러 맥도날드에 갔다. 맥도날드 직원은 CCTV를 보여줄 수 없다고 한다. 경찰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 다시 경찰서에 가서 이야기 했지만, CCTV에 뭔가 나타나면 전화를 주겠다고 한 후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장문의 편지를 경찰관에게 썼다. 호주에서 어떻게 생활하였는지, 어떤 과정으로 가방이 사라졌는지와 의심스러운 맥도날드 직원에 대해서. 하지만 답이 없었다. 길을 걷다 경찰관이 보여 내 사정을 이야기 해보았지만, 경찰관의 대답은 "왜 그렇게 많은 돈을 한꺼번에 찾았냐? 그건 너의 잘못이다"라는 절망스런 답변뿐이었다. 계속 울고 있는 나를 바라보던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네가 만약 가방을 가져가는 녀석을 알아보고 따라갔으면 넌 다리가 잘렸을지도 몰라."
"돈만 잃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친구는 200달러를 주면서 이걸로 일단 밀린 월세를 내라고 하였다. 집주인은 월세를 받지 않았다. 자신도 곤란한 상황이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일하던 레스토랑에서는 선불로 돈을 지불해 주었다. 나는 다행히 친구들의 도움으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고 여행을 포기한 채 다시 한달을 열심히 일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교회 거실에 매트를 깔고 잠을 자기도 하였다.

지금 같았으면 맥도날드를 상대로 소송도 했을 테지만, 그 당시 20대 초반의 작고 영어도 어수룩하고 세상물정을 몰랐던 나는 그대로 모든 불합리함을 감당해야 했다. 만약에 내가 정말 범인을 알아보고 따라갔다면 더 끔찍한 일이 생겼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시엔 친구의 말이 야속했지만, 그것이 호주의 현실이었다.

진정한 재산은 사람이다

살면서 정말 단 한 푼도 없는 거지가 된다면 어떨까? 내가 시간당 10달러씩 받으며 모았던 돈은 한 순간에 사라졌다. 그때 나는 한순간에 사라질 수 없는 뭔가를 내 인생에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은 사람과의 관계라고 여겼다.

내가 언제든 손내밀면 조건없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 당시 내 주변엔 나를 사랑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 사건을 통해 삶에서 어떤 것을 중심에 놓고 나아가야 하는지 경험한 듯하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빈털털이가 되었을 때 밥을 사줄 수 있고 거실을 내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 편집ㅣ김미선 기자



태그:#호주, #워킹홀리데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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