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이경

tvN <초인시대>에 출연 중인 배우 이이경 ⓒ 이정민


범상치 않은 배우다. 2012년 영화 <백야> 속 하루살이 삶을 살아가는 청춘과 KBS 2TV <학교 2013> 속 사이가 틀어진 친구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던 불량학생으로 인상을 남기더니, 어느덧 이이경은 김기덕 감독의 작품과 SBS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대중작 사이를 넘나들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이 한참 동안의 '널뛰기'를 뒤로 하고, 최근 이이경은 밝고 코믹한 역할에 눈을 돌리고 있다. JTBC <하녀들>의 허윤서는 글공부보단 여색을 탐하는 데 마음을 쏟는 말 많고 철없는 남자였다. 웹드라마 <취업전쟁2>의 이이경은 온 세상의 정의는 혼자 다 지킬 것 마냥 허세를 부리다가도 컵밥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는, 역시 말 많은 고시낭인이었다.

"이런 역할들이 더 재밌죠. 특히 <하녀들> 같은 경우엔 말을 갖고 노는 캐릭터다 보니 (대사에) 운율을 만들어야 했어요. 또 원래 대사를 자연스럽고 디테일하게 말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대본은 문어체로 쓰여 있지만 그걸 표현해 내는 배우는 구어체로 말해야 하잖아요. 일부러 현장에 미리 도착해 혼자 걸으면서 대사가 입에 붙을 때까지 계속 연습하는 편이예요."

최근 방영 중인 tvN <초인시대> 속 이이경도 겉은 멀쩡해도 속은 2%, 아니 20%쯤 부족한 '힙스터 워너비'다. "오디션을 보고 합류했는데, 제작진이 <하녀들>과 <취업전쟁2>를 봤더라"는 이이경은 "원래 개그에 박장대소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초인시대>는 대본이 정말 재밌다"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실제 이이경 또한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으로 '개그맨'을 꼽았을 정도"로 "분위기 주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배우 이이경

ⓒ 이정민


 배우 이이경

"연기하기 전부터 사극을 멀리하는 마음이 사실은 있었어요. 지금 이 현대사회를 살면서도 현대 연기를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인데,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다루는 거니까요. 흉내만 내게 될까봐 조심해야 할 장르라 생각했는데 <하녀들>은 그 인식을 깨 줬어요. 기피하고 불안해 할 수록, 더 도전해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 이정민


"이 작품들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제 개그 욕심을 풀었으려나 모르겠어요. (웃음) <하녀들>이 사극이었다면 이번 <초인시대>는 말도 안 되는 초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코미디니 (대중에)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별에서 온 그대>의 그 비서가 이런 작품을 하네'라고 알아봐 주시지 않아도 좋아요. 그저 '처음 보는 배우인데, 재밌네'라고 생각하셔도 좋으니까, 친숙하게만 느껴 주셨으면 좋겠어요. 서른이 되기 전에 더 많은 경험을 해 보고 싶거든요. 지금은 쉬고 싶지도 않고, 찾아주시는 게 감사할 뿐이에요.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30대부터는 오차 없이 발돋움하고 싶어요."

"많은 일 있었지만...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더라"

사실, 여기까지 이야기하는데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자리에 앉아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이이경은 재담을 섞어 가며 솜씨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실생활에도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 크다"는 그가 가장 많이 한 말 중 하나는 과거 MBC <무한도전>에서 김제동이 쓸쓸함을 달래려 되뇌었던 말,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였다.

이이경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마음가짐 덕분이다. 운동으로 체대까지 갔지만 어느 순간 드라마를 보고 연기에 매력을 느꼈고, "책에서 20대 때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들끓"은 나머지 제대 후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부모님 모두 그의 뜻을 듣자마자 반대했지만 학원과 카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순전히 혼자 힘으로 서울예대 편입에 성공했다. 모두 순수하게 자신을 긍정했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물론 많은 일이 있었죠.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에(이이경은 전학 후 자신이 소속됐던 운동부가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없어지자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했다- 기자 주) 낮에 버스카드를 찍으면 '학생입니다' 소리가 나잖아요. 그럼 사람들이 다 저를 쳐다보는데…제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아르바이트도 많이 해봤고,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고, 그런 데서 오는 박탈감이나 소외감을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하지도 못해요.

그런데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정말 하나도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요리를 다 만들어 가는 찰나에 엎었다고 쳐요. 그러면 '아이고 저런?' 하고는 '이건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로 만든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거든요. 또 친구들이 가끔 제 또래인 기성용 선수나 이청용 선수가 받는 연봉을 이야기하며 부럽다고 해요. 그런데 저는 뭐가 부럽나 싶어요. 우리들은 그 시간에 또 다른 걸 했다고 생각하니까요."

 배우 이이경

지금 이이경은 부모님에게서 독립해 '혼자남'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가 모 기업 계열사 사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화제를 낳았지만, 이이경은 "집에서 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거실이라고 해봤자 네다섯 걸음 정도면 가로지를 정도지만, 나름 혼자만의 공간으로 꾸며놨어요. 스크린을 설치해 영화도 볼 수 있고, 대본을 보관할 수 있는 곳도 있죠." ⓒ 이정민


지금도 이 '긍정'의 자세는 유효하다. "(연기를 시작할 때) 첫 목표가 '연예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그는 "무엇보다 연기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연기가 그가 해 왔던 운동처럼 한 번에 승부를 가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에도, 오히려 이이경은 "연기가 어려워서 재밌다"고 눈을 빛낸다.

어쩌면 이 긍정적인 모습은 이이경이 답이 없는 길을 걸어가며 선택한, 그만의 무기일 지도 모른다. '대책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이경은 쉬이 지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좋은 배우'를 꿈꾼다는 그에게 '언제쯤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느냐'고 물었다. 약 한 시간 내내 재잘재잘 수다를 이어가던 이이경이 골똘히 생각에 잠긴 끝에 입을 열었다.

"좋은 사업가는 사업을 잘 하는 사람일 거고, 좋은 배우는 좋은 연기를 하는 사람이겠죠? 그런데 늘 (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이상 '언제쯤 만족할까'를 내다보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질문에 답하는 건 숙제로 남겨둘게요.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막 말할 순 없잖아요. (웃음) 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런 건 사실 없어요. 언젠가 한번쯤은 무너질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요. 하지만 또 일어서겠죠.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다니까요!"

이이경 초인시대 하녀들 취업전쟁2 별에서 온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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