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착하지 않은'이라는 수식어다. '나쁜' 여자들이 아니다. '착하지 않다'는 것은 착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의미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여자들이 아니라, 맞서 싸운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단순히 앉아서 착하게 기다리기만 하는 인물은 이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후자가 아니라 전자인, 그러니까 착하게 보였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들 역시 이 드라마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인물이다. 나말년(서이숙 분)은 겉으로는 존경받는 교사였고 우아한 사모님이지만 속은 편견과 오만, 독선에 가득 찬 인물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가서야 민낯을 드러낸 박은실(이미도 분)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나쁜 짓을 한다. 나말년은 단순히 도덕적인 결함을 가진 인물인데, 박은실은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허위 사실 유포와 절도 행위까지 저지른다.

 KBS 2TV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한 장면

KBS 2TV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한 장면 ⓒ KBS


그러나 박은실은 단순히 악을 위한 악녀가 아니다. 그는 불우한 환경을 배경으로 성장하여 12년간 강순옥(김혜자 분)의 제자로 살았다. 항상 친절하고 따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김현숙(채시라 분)가 요리에 재능을 보이자 열등감을 폭발시킨다.

그는 김현숙이 들깨찜 요리의 맛을 봐주지 않자 "김현숙이 재수 없다"고 외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는 강순옥의 요리 노트를 훔치고, 장부를 조작해 횡령까지 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화를 참지 못했다. 그러나 강순옥은 달랐다. 강순옥은 확실한 증거를 보고도 "박은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박은실이 만들어 간 요리를 맛보며 "머위 들깨찜 합격이다. 바로 이 맛이야"라고 문자를 보내고 "요리 노트는 내가 주는 선물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요리, 힘 나는 요리 만들도록 해. 새 메뉴 돌아오면 언제든지 돌아오고. 넌 아주 훌륭한 제자였다"라고 음성 메시지까지 남겼다. 결국 박은실도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강순옥은 앓아누운 상황에서 신고하겠다는 현숙의 친구 안종미(김혜은 분)에게 "종미야, 너 은실이한테 왜 너네 집 옷 하나도 안 줬니? 걔 그거 예쁘다는 말 여러 번 했는데. 하나 사줘야지 생각만 하고 여태 못한 나도 잘못이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에게 박은실은 그냥 제자가 아니었다. 설령 자신을 배신해도 그 아픔을 끌어안고 용서할 수 있는 자신의 딸이었고 가족이었다. 모든 질책과 엄격한 기준은 그를 위한 사랑이었다. 그의 사랑은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졌다. 종미는 자신의 가게에서 박은실에게 줄 옷을 따로 챙겨 놨고, 김현숙 역시 한층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한 장면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한 장면 ⓒ KBS


김현숙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인물이었다. 퇴학당했던 과거에 사로잡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돈을 날리고 도박까지 손을 댔다. 그러나 그에게는 엄마도 있고, 사랑하는 남편도 있고, 그의 일이라면 두 팔을 걷고 나서는 믿음직한 친구도 있고, 결정적으로 요리에 대한 재능까지 있었다. 그는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포기하지 않고 앞을 향하는 불굴의 정신까지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박은실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불안했고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불행을 딛고 일어선 김현숙과 대비되는 인물이지만, 김현숙과 그에게 같은 무게의 책임감을 요할 수는 없는 이유다.

그를 울린 것은 "전화 좀 받으라"는 다그침이나 "고소하겠다"는 협박이 아니었다. 들깨찜이 합격이라는 애정어린 한마디였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도 그 아픔을 그대로 돌려주지 않고 가슴으로 끌어안은 강순옥의 행동은 시청자에게도 같은 무게로 전해졌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역설적이다. 제목에서부터 주인공들이 착하지 않다고 항변하지만 그들은 사실 착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보 같은 무능함이 아니다. 그저 다른 이를 품을 수 있는 바다 같이 넓은 마음이다. 결국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은 사랑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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