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 작곡가 인터뷰 1편에서 이어집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이동준 작곡가에게 통했다. 1990년대 초반 독자적으로 '영화 음악' 활로를 모색하려 했던 이 작곡가는 서울예술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한다. 이 작곡가는 "당시에 뭐라도 해보겠다는 열정이 너무 강했다"며 "공연 영상을 찍어서 집으로 가져와 작곡해 보기도 하고, 전문 서적들도 열심히 읽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졸업한 지 3년이 지난 1994년, 영화계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지난 24일, 이동준 작곡가가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지난 24일, 이동준 작곡가가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 고동완


- 영화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음악은 그냥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10대 사춘기 때부터 락, 팝 음악을 즐겨 들었거든요. 영화도 엄청 좋아했죠. 시네마 키드였던 셈이죠(웃음). 그림도 좋아해서 미대를 갈까, 영화감독을 할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음악가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 긴 시간 고민을 했어요. 영화를 너무 좋아했고. 어렸을 때 봤던 벤허나 007 음악을 들으면 잔향이 많이 남아서 영화 음악가가 되어야겠다 싶었죠."

- 영화 음악엔 어떻게 입문하게 됐는지?
"처음엔 우리나라에 영화 음악을 배울 만한 곳이 없어서 미국 유학을 생각하다가, 형편상 꿈도 못 꿨죠. 영상 음악이 많다고 하는 일본으로 갈까도 생각을 해봤어요. 그래도 부담스러워, 마침 서울에 실용음악과가 있다고 해서 뭔가 싶어 알아봤어요. 영화와도 관련돼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학교로 갔죠. 이미 입시는 끝나서 입학하려면 실기 시험을 치러야 했어요. 다행히 전부터 음대에 갈려고 준비해둔 게 있어서 학교로 들어갈 수 있었죠.

학교 다니면서 영화 음악을 하겠다고 교수님들에게 얘기하곤 했죠. 교수님이 공연 작업을 많이 시켰어요. 그런 작업을 하다가 우연찮게 사석에서 신씨네(영화 <편지>, <약속> 등을 제작한 영화사> 대표님을 봤어요. 그 대표님이 <구미호>란 영화를 제작 중이었거든요. 상상도 안 했는데 그 대표님이 시나리오 줄 테니 사무실로 오라 하더군요. 신인인 건 알지만 왠지 신선할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어요. 엄청난 기회잖아요. 2주간 열심히 만들어서 음악을 보여 드렸는데, 반응이 좋아서 그렇게 출발하게 됐습니다."

"음악제작비, 10년 전보다 더 떨어졌죠"

이 작곡가가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발을 담글 무렵, 영화 음악은 아직 개척하지 못한 분야가 많았다. 그 중 녹음하는 과정이 그랬다. 지금이야 오케스트라를 활용해서 곡을 녹음하는 게 보편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한 방법이었다. 이 작곡가는 영화도, 드라마도 웬만하면 작곡한 곡들을 오케스트라를 통해 선보이려고 했다.

"오케스트라는 모든 음색 구성이 가능해요. 그 기준으로 다른 악기들을 또 추가할 수 있고요. 슬픈 시점에서 피아노 말고도 여러 악기를 연주하면 더 애절하게 갈 수 있어요. 지금은 많이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만 해도 오케스트라를 쓴다는 건 이례적이었죠.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대규모 오케스트라로 곡을 녹음했고, <아이리스>는 방송이라 소규모로 녹음했죠.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가장 음악답게 표현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도구입니다."

이 작곡가는 이창동 감독과도 인연이 있다. 이 감독의 1997년 데뷔작 <초록물고기>의 음악을 맡은 것이다. <초록물고기>에서 심혜진(극 중 미애)이 나이트클럽에서 애절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지금도 회자된다. 원래 없던 설정이었던 그 노래도 이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작곡가는 그 해 <초록물고기>로 청룡영화제와 대종상영화제 음악상을 거머쥔다.

첩보물에서 누아르까지 영화 장르를 불문하고 작곡의 외연을 넓힌 이 작곡가도 "과거보다 음악을 제작하는 환경이 퇴보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기대와는 달리 저작권료로 얻는 수입도 거의 없는 실정인 데다 음반도 십중팔구 적자라 그 짐을 스스로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형 영화를 숱하게 맡은 그에게도 지금의 제작 환경은 여의치 않은 셈이다.

- 영화 음악 환경은 어떤가요?
"영화 제작비가 사실은 크게 올라가지는 않았어요. 평균 제작비가 정점을 찍었을 때가 2004~2006년 이 기간 같은데, 영화 산업이 크게 부흥했던 때죠. 그때보다 음악에 들어가는 제작비는 더 떨어졌어요. 영화 제작비가 백억이나 2백억이면 음악 제작비도 높게 책정되는데, 이번 <장수상회>는 순제작비가 30억 조금 넘는 수준이거든요.

2005년도 기준으로 보면 작은 영화이긴 하지요. 그 때 제 기억으로 60억~70억 원 영화가 대세였거든요. 제작 여건은 지금이 더 안 좋아졌죠. 어떤 모 음악 감독님도 '옛날보다 (음악 제작) 가격이 더 내려간 거 아니에요?' 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느끼고요."

- 방송에서도 곡이 많이 쓰였을 텐데, 작곡가에게 돌아오는 저작권료나 그런 건 없을까요?
"작곡한 곡이 방송에 많이 쓰이긴 했죠. 사람들이 매번 물어봐요. <태극기 휘날리며>에 나오는 곡들만 가지고도 저작권료 많이 받아갈 것 같다고. 전 제로라고 말해요. 광고나 행사는 작곡가에게 허락을 맡는데, 방송에 쓰이는 건 방송국이 저작권을 관리하는 협회에다 일괄적으로 돈을 주고 협회에서 작곡가에게 사용 건수에 따라 분배를 하거든요.

<쉬리><태극기 휘날리며>가 인기가 많았던 일본에선 지금도 저작료가 들어오거든요. NHK가 제 곡들을 어떻게 썼는지 상세한 기록이 일본 협회를 통해서 저에게로 들어와요. 우리나라는 방송에서 곡을 수백 번 써도 과연 제대로 기록해서 작곡가들에게 분배하고 있는지 의문이에요."

영화음반, 적자라도 계속 내는 이유

 영화 <쉬리>의 한 장면.

영화 <쉬리>의 한 장면. ⓒ (주)강제규필름


- 영화 음반 시장은 어떤가요?
"전 그야말로 순수 영화음악 위주로 음반을 내왔어요. 노래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쉬리>야 'When I Dream' 삽입곡 정도만 있었을 뿐이지. <태극기 휘날리며>나 <은행나무침대>도 다 연주곡이었거든요. 제 기억으론 <태극기 휘날리며> 음반이 9천 장 정도 팔렸어요. <쉬리>는 8만 장 팔렸거든요. <쉬리>가 (음반 전성기)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가 잘 되면 OST도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태극기 휘날리며>도 그러니 '음반 시장이 좋지만은 않구나' 생각했어요.

음반을 꾸준히는 냈지만 적자가 나면 제가 모든 걸 책임져야 해요. 지인들 도움을 얻어 같이 투자해서 음반을 내기도 하거든요. 이번에 낸 <장수상회> 음반도 형태는 배급사가 내는 거지만, 실질적으론 저희가 투자해서 내는 거예요. 결과는 적자여도 기록과 서비스의 의미로 내는 거죠. 그래도 음반이라는 게 아날로그 감성이 있잖아요. 하다못해 CD 하나를 선물로 드리면 피부에 와 닿으니까."

그럼에도 이 작곡가는 곡들을 사랑하는 팬들을 우선 생각했다. 음반 시장이 냉랭하기는 하지만, 적자를 무릅쓰고 그간 작곡한 곡들을 묶어 세상에 내놓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작곡가는 "작곡한 영화 음악 중 <마이웨이>를 비롯해 내지 않은 OST가 꽤 많은데, 그 음원들을 포함,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아온 곡들을 정리해서 내놓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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