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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를 쾌(快) 시위를 놓는다는 데에서 결단 후의 후련함에서 ‘시원하다, 상쾌하다’는 의미가 유추된 걸로 보인다.
▲ 快 빠를 쾌(快) 시위를 놓는다는 데에서 결단 후의 후련함에서 ‘시원하다, 상쾌하다’는 의미가 유추된 걸로 보인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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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적소리가 하도 요란해 숙소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자동차 접촉사고로 차선이 막히자 뒤차들이 연쇄적으로 경적을 울려대 그 일대가 온통 소음 바다다. 우리가 '빨리 빨리' 문화라면, 중국은 흔히 '만만디(慢慢地)'라고 하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노라면 누구하나 느긋하게 만만디의 경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자동차는 고급 외제 차들인데 운전매너는 아직 그 고급스러움을 따라가지 못한 듯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물질문명과 달리 정신문명은 그 변화를 쫓아가지 못한다. 빠른 질주 뒤로 심각한 환경오염이 뒤따르고, 툭하면 부정부패 사건이 불거진다. 질주를 가로막는 것은 그것이 노약자든, 어린아이든, 학생이든 상관없이 경적을 울려댄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리다가 세도나(Sedona)에서 꼭 멈춰 쉰다고 한다. 너무 빨리 달려 혹시 영혼이 따라 오지 못할까봐 기다리는 것이라고 한다. 중국인에게도 이런 멈춤과 되돌아봄의 쉼이 필요해 보인다. 너무 빠른 것만 추구하며 혹시 놓친 풍경은 없는지, 정신문명의 디테일한 풍경은 성숙되지 못한 채 밤샘 작업의 속도전으로 어설픈 중국을 건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빠를 쾌(快, kuài) 심장의 상형인 마음 심(忄)과 화살을 엄지손가락으로 잡았다가 놓으며 활을 쏘는 동작을 나타내는 깍지 결(夬)이 결합된 형태이다. 활시위를 잡아당기기 위해 엄지손가락에 끼우던 뿔로 만든 기구인 결(夬)은 주역의 육십사괘 중 하나로 '결정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시위를 놓는다는 데에서 혼신을 다한 결단 후의 후련함에서 '시원하다, 상쾌하다, 기쁘다' 의 의미가 유추된 걸로 보인다.

빠르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지금은 시속 300km가 넘는 고속철이 오가는 시대이지만, 1899년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었을 때 시속 30km의 열차를 보고도 최남선은 <경부철도가>에서 "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 같고,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다."고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옛날 중국에 추앙추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었다. 어느 날 황제가 그에게 게 그림을 하나 그려 달라고 했다. 추앙추는 열 두 명의 시종과 집 한 채 그리고 5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5년이 흘렀으나 그는 아직 그림을 시작도 하지 않았다. 추앙추는 5년을 더 달라고 했고 황제는 이를 수락했다.

10년이 거의 지날 무렵 추앙추는 붓을 들어 먹물에 찍더니 한 순간에, 단 하나의 선으로, 이제까지 보았던 것 중 가장 완벽한 게를 그렸다. 밀란 쿤데라의 <느림>에 소개된 우화처럼 어지러운 난맥상을 일거에 명쾌하게 처리하는 쾌도(快刀斬亂麻)는 오랜 기다림과 성찰의 느림을 동반한다. 시위에서 화살을 놓기 전, 호흡을 멈추고 온정신을 집중하는, 그 애 터지는 '느림'의 순간 너머에서 '빠름'이 시작되듯.


태그:#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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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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