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농성중인 광화문앞으로 행진을 시작한 가운데,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겹겹이 설치했다.
▲ 겹겹이 설치된 '근혜산성'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농성중인 광화문앞으로 행진을 시작한 가운데,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겹겹이 설치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수고하십니다, 강신명 경찰청장님.

오늘도 민생치안을 위해 여념이 없으십니다. 바쁘시겠지만, 부디 잠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저는 대학생 시민기자로, 저 역시 중간고사 기간이지만 어렵게 청장님께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한창 밤을 지새우며 학구열을 불태워야 할 시간인데도, 지난 18일 마음이 뒤숭숭해 도저히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 이후 일어난 시민과 경찰 사이의 충돌 때문입니다.(관련 기사: 무너진 '근혜장벽'... 시민들 "우리가 이겼어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카메라와 노트북을 챙겨 광화문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이 보내온 현장영상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틈틈이 전해 듣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네요. 대신에 개별적 충돌에 집중하기 보다 시위의 전체적 흐름을 조망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꼭 청장님께 이 편지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불법·폭력 집회? 오히려 경찰 지휘부가 '어그로' 끌진 않았나

18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광화문앞에서 농성중인 유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가려다 저지하는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18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광화문앞에서 농성중인 유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가려다 저지하는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청장님, 혹시 '어그로 끈다'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어그로는 (문제의) 악화, 도발 등의 뜻의 영단어 '애그러베이션(Aggravation)'에서 기원한 말로,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나 게임 상에서 자주 쓰입니다.

가령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문제를 일으키고, 거기에 사람들이 반응을 하면서 분위기가 과열될 때 특히 자주 쓰이지요. 그런 식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이 모두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러 그런 식으로 행동해 사람들을 자신의 숨은 의도대로 놀아나게 하기도 한답니다. 오해는 하지말아 주세요. 저는 청장님께서 꼭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이번 시위가 폭력·불법 집회였다는 일반화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오히려 평화롭게 끝날 문제였는데 경찰 지휘부가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바라볼 뿐입니다.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농성중인 광화문앞으로 행진을 시작한 가운데,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겹겹이 설치했다.
▲ 겹겹이 설치된 '근혜산성'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농성중인 광화문앞으로 행진을 시작한 가운데,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겹겹이 설치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광화문에서 농성 중이던 유가족들에 대한 경찰 연행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은, 광화문으로 집결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광화문에 계셨던 분들도 있지만, 소식을 듣고 유가족들을 만나러 나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는 이날 낮시간만 해도, 비어있던 광장을 찍은 사진 한 장이 두 말 없이 증명해줍니다. 하지만, 그 사진에는 어마어마하게 길게 늘어서 교통을 막아버린 기동대 버스와 차벽이 있었고, 유가족들을 만나러 온 대다수 시민들이 '근혜산성'과 맞닥뜨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또 유가족들을 만나려는 시민들과 막는 경찰 사이의 충돌도요.

19일 경찰청은 브리핑을 통해, 미리 차벽을 설치한 적이 없다고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분명 꽤 많은 시민들에게 차벽은 그들을 '기다리던' 장애물이었습니다. 브리핑에서는 경찰 74명의 부상 상황과 경찰버스 등 장비 파손 상황을 집계도 발표됐으며, 민형사 상의 책임을 주도자들에게 묻겠다는 내용도 밝혔습니다. 또한, 이번 시위를 '4·18 불법·폭력 집회'로 규정했지요.

18일 오후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광화문앞에서 경찰버스를 흔들자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하며 저지하고 있다.
 18일 오후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광화문앞에서 경찰버스를 흔들자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하며 저지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청장님. 저는 경찰 지휘부가 무엇을 지키고자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젊은 제복 입은 시민들을 동원해, 시민의 앞 길을 막아세워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입니까. 캡사이신에 모자라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무차별적으로 발사하며, 지키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현장의 기자들까지 물대포를 맞기도 하고 "기자도 방해하면 연행한다"는 맥락 없고 위화감 느껴지는 방송까지 내보내며 지휘부가 지키고자 한 것은, 비어있는 청와대인지 아니면 콜롬비아로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이신지 불분명합니다.

결국 차벽은 뚫려 시민들은 광화문에 도착해 유가족과 만났고, 이들은 평화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고 포옹한 뒤 헤어졌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경찰력이 결과적으로 막은 것은 '시위'가 아니라 '만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경찰력이 대통령의 정치적 알리바이를 만드는 데 기여하나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개최한 가운데, 광화문광장에 경찰 바리케이드가 겹겹이 설치되었다.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개최한 가운데, 광화문광장에 경찰 바리케이드가 겹겹이 설치되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경찰 지휘부가 시위대를 비난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집시법에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폭력적이라는 것입니다. 공공의 안녕에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청장님, 4대강의 흐름이든 교통의 흐름이든 억지로 막는 것이 더 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게 자연과 인간사회의 이치이듯. 마찬가지로, 역사적 진보의 흐름을 법률을 남용해 막는 것도 더 큰 혼란을 불러올 뿐입니다.

불법과 합법을 서로 주장하며 민중과 경찰이 법률 대 법률로 맞닥뜨려서는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또 문제를 지엽적인 내용들에 집착해 '시민폭력 대 국가폭력'의 구도로 끌고 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진정 국민의 안녕과 통합을 원하신다면, 경찰 스스로가 교통을 막은 거리에서 확성기로 "여러분들이 공공의 안녕을 위협하고 다른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알리바이를 만드는 일에 국민 세금을 소비해서는 안 됩니다.

진짜 국민 세금이 쓰여야할 곳은,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바다 속에 가라앉은 대한민국의 존엄성부터 인양하고 진실을 떳떳하게 밝히는 일입니다. 진정한 판단은 가치와 사회진보가 탈색된, 법률 형식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닌 정치적 내용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풀어야 합니다.

아돌프 아이히만(O. A. Eichmann, 1906~1962)은 제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 전범으로 독일의 SS중령(최종계급)으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 즉 유대인 박해의 실무 책임자였다. 전쟁 직후 국제 전범으로 수배 중에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이름을 바꾸고 15년 동안 살았다. 1960년 이스라엘 정보 기관 모사드에 체포돼 이스라엘에서 공개 재판 후에 1962년 5월 31일에 처형됐다. 재판 당시 그는 자신이 유대인을 박해한 것은 상부에서 지시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한나 아렌트는 부당한 명령이라도 한 번 받아들이면 무비판적으로 그 부당한 명령을 수행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즉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정치적 구조악에 대한 저항이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아돌프 아이히만(O. A. Eichmann, 1906~1962)은 제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 전범으로 독일의 SS중령(최종계급)으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 즉 유대인 박해의 실무 책임자였다. 전쟁 직후 국제 전범으로 수배 중에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이름을 바꾸고 15년 동안 살았다. 1960년 이스라엘 정보 기관 모사드에 체포돼 이스라엘에서 공개 재판 후에 1962년 5월 31일에 처형됐다. 재판 당시 그는 자신이 유대인을 박해한 것은 상부에서 지시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한나 아렌트는 부당한 명령이라도 한 번 받아들이면 무비판적으로 그 부당한 명령을 수행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즉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정치적 구조악에 대한 저항이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 위키미디어

관련사진보기


독일의 여성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 총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다룬 바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그런 반 인륜적이고 반 사회진보적인 범죄를 무감정하게 저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이히만의 대답은 자신은 그저 "명령 받은 대로, 법률에 따라서" 행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유가족들이 걱정스럽습니다. 또 유가족을 지지하는 시민들과, 경찰이라는 공통이름과 침묵 아래 묶여 감정과 의사도 익명으로 처리되는 의경들 개개인의 안전도 걱정스럽습니다.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책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청장님이 제 학점을 책임져주시진 않겠지요.

그래서 청장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어그로' 끌지 말아주십시오.

졸업이 늦어 슬픈 대학생 시민기자 올림.


태그:#촛불시위, #세월호, #세월호 인양, #세월호 유가족, #단원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