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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카페 좌파', 이것은 오랜 기간 나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지금이라고 별반 달라진 건 없지만, 스스로를 외부자로 규정해 놓고는 한가하게 카페들을 전전하면서 잡문이나 긁적이며, 허세는 또 있는 대로 부리고 다녔지요. 이를테면 조국 교수가(를?) 지칭했던 '강남 좌파'의 경상도 찌질이 버전인 셈입니다.

그런데 몇 년을 그렇게 카페 유랑을 하다 보니 꼴에 커피 맛을 알게 되어 커피와 카페를 소재로 짧은 글도 몇 편 썼습니다. 물론 그 글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만큼 내 글쓰기에서 커피와 카페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생애 첫 여행을 이탈리아 미술 기행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에 작품 감상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세부 일정을 짰습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배고프면 먹고, 정말 힘들면 쉬겠다는 각오로 식사나 휴식, 쇼핑 등에 대한 일정은 아예 짜 놓지도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들은 포기한 셈입니다.

'앤티코 카페 그레코'에서 최고의 허세를 부리다

그럼에도, 이곳 '안티코 카페 그레코 antico caffe  Greco'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찌질한, 카페 좌파'의 정체성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앤티코 카페 그레코'는 그 자체로서 중요한 문화재이고 예술과 인문의 공간이기 때문이었습니다(실제로 '그레코'는 1953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이탈리아 문화재'로 인정받았습니다).

전통이 느껴지는 안티코 카페 그레코의 실내. 자리마다 역사와 예술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 카페 그레코 전통이 느껴지는 안티코 카페 그레코의 실내. 자리마다 역사와 예술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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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폴로 광장'에서 '코르소 거리'를 걸어와서 '콘도티 거리'와의 교차로에서 다시 '스페인 광장'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아무 관심 없는 나도, 이름은 들어봤을 명품 가게들이 그냥 휙휙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자락, '스페인 계단'이 보일 즈음에 '그레코'가 있습니다.

'옛 그리스 사람의 카페'란 뜻의 '앤티코 카페 그레코'는 1760년에 만들어진,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입니다. 250년이란 시간을 버텨온 카페. 상상이 되나요? 1760년이면, 우리나라에선 영조 임금이 다스리던 시절입니다. 당연히 오랜 역사만큼이나 '그레코'는 베네치아의 '플로리안'과 함께 초기 유럽 카페 문화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카페 그레코에서는 물잔도 저렇게 나옵니다. 1760년부터라고...
▲ 카페 그레코의 물잔 카페 그레코에서는 물잔도 저렇게 나옵니다. 1760년부터라고...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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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코'가 지금의 명성을 얻은 것은 이 카페를 찾은 예술인들의 연대기 때문입니다. 두서  없이 그냥 명단만 한 번 나열해 볼까요? 괴테, 오펜바흐, 멘델스존, 쇼펜하우어, 리스트, 바그너, 빌헬름 뮐러, 보들레르, 스탕달, 안데르센, 바이런, 키츠, 셸리, 고골리, 호손, 마크 트웨인, 오스카 와일드, 프루스트, 발자크, 니체, 토마스 만, 코로, 베를리오즈, 롯시니, 비제, 구노, 토스카니니.

그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이들을 제외하고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서양 예술사를 쓸 수나 있을까 싶은, 수많은 나의 영웅들의 호흡과 체취와 정신이 가득한 곳이 바로 '앤티코 카페 그레코'입니다.

나비넥타이에 연미복을 멋지게 차려 입은 종업원이 안내해 준 자리에 앉습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라 샌드위치와 함께 탄산수, 커피를 주문합니다. 그리고 아이패드에 저장해둔 괴테를 읽습니다.

"나는 로마에 발을 들여놓은 그 날부터 진정한 재생의 나날들을 세고 있다. 나는 새로운 청춘으로 살고 있으며 매일 매일 새 곡식을 탈곡하고 있다. 말하자면 인간으로 새로 탄생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 나 자신을 되돌아오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내 정신은, 확고부동한 것이 되었고, 따뜻한 것을 잃지 않는 진지한 것이 되었으며, 즐거움을 잃지 않는 침착성을 얻었다." - 괴테, "이탈리아 여행" (을유문화사 1989) 재편집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이제 정신을 좀 차려야 될 것 같습니다. 한 달 간의 여행 중 이제 겨우 첫 날 오전 일정이 지났을 뿐인데, 봇물처럼 밀려온 로마에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되어 몇 달 간 공부해 온 것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저 감탄과 탄식과 눈물만 이어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초보 여행자라지만 이래서는 한 달을 제대로 버틸 수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다시 다음 일정의 자료들을 훑어보고 짧은 글을 씁니다.

그런데 자꾸 옆 자리, 앞 자리에 눈이 갑니다. '앤티코 카페 그레코'에서는 이렇게 괴테가, 바이런이, 스탕달이, 오스카 와일드가 자꾸만 말을 걸어옵니다. '찌질한, 카페 좌파'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허세입니다.    

루드비히 파시니 "로마의 카페 그레코" 함부르크 미술관. 위키피디아 이미지. (파시니가 그린 19세기 중반, 카페 그레코의 모습)
▲ 로마의 카페 그레코 루드비히 파시니 "로마의 카페 그레코" 함부르크 미술관. 위키피디아 이미지. (파시니가 그린 19세기 중반, 카페 그레코의 모습)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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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코'를 나와 다시 부지런히 길을 재촉합니다. '미술 기행'답게 '바르베리니 궁전 국립 고전미술관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in Palazzo Barberini'으로 향합니다.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건립된 '바르베리니 궁전'은 보로미니가 베르니니와 함께 만든 건물입니다. 현재는 궁전의 일부를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한 번 실수를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매표소 직원에게 사진을 촬영해도 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역시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촬영해도 된다고 합니다. 물품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가장 먼저 필리포 리피의 '수태고지' 앞에 섰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처녀 수태를 알리는 장면을 묘사한 '수태고지'는 유럽에 기독교가 정착하기 시작한 5세기 무렵부터 서양 미술의 주요한 주제였습니다.

필리포 리피 "수태고지" 로마 바르베리니궁전 국립고전미술관(아이의 얼굴을 한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처녀수태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림을 주문한 기부자들을 그려 넣은 점이 독특합니다.)
▲ 수태고지 필리포 리피 "수태고지" 로마 바르베리니궁전 국립고전미술관(아이의 얼굴을 한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처녀수태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림을 주문한 기부자들을 그려 넣은 점이 독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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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 리피도 여러 편의 '수태고지'를 남겼는데 이곳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의 '수태고지'는 그림을 주문한 기부자들을 함께 그려 놓은 점이 특이합니다.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꽃을 건네며 처녀 수태를 알리는 장면을 마치 참관이라도 하는 것처럼 나란히 앉아있는 두 명의 기부자들. 저렇게 어정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면 아마 필리포 리피는 이들을 그려 넣기 싫었나 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긴 하지만 저렇게 그림을 주문한 사람들이 자신의 성화에 그려달라고 하는 풍습은 생각보다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저렇게 신에게 자기와 가문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그래도 연등이나 기와에 자신의 이름 올리는 것 정도로 만족하는 우리네 시주 방식은 저 그림에 비하면 소박하고 겸손하다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만날 작품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라파엘로입니다. '라 포르나리나' 흔히 라파엘로의 연인이라고 알려진 여인의 초상화입니다.

관능을 뛰어넘은 그림에 매료되다

라파엘로 '라포르나리나' 로마 바르베리니궁전 국립고전미술관. (라파엘로가 자신의 연인 마르게리타를 모델로 그린 그림입니다.)
▲ 라 포르나리나 라파엘로 '라포르나리나' 로마 바르베리니궁전 국립고전미술관. (라파엘로가 자신의 연인 마르게리타를 모델로 그린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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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으로 가슴을 반 쯤 가린 반라의 여인, 그런가 하면 그림 아래 부분, 두꺼운 치마 위 다리 사이에 놓인 왼손, 이것은 전형적인 '베누스 푸디카', 즉 '정숙한 비너스'의 포즈입니다.

그 왼팔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팔찌(자세히 보면 라파엘로의 이름이 보입니다)가, 희미하지만 왼손 약지 끝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습니다. 만면에 홍조를 띤 그녀는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유혹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녀, '라 포르나리나 (제빵사의 딸)', 마르게리타는 자신의 연인 라파엘로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게리타, 그녀는 저렇게 연인 라파엘로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를 차고 있습니다.
▲ 라 포르나리나 (부분) 마르게리타, 그녀는 저렇게 연인 라파엘로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를 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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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과 정숙을 넘어 저토록 사랑스럽게 말입니다. 연인을 저렇게 아름답게 남긴 라파엘로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 같습니다. 라파엘로는 이 그림 말고도 그녀, 마르게리타를 모델로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좀 더 자세한 이야기들은 피렌체 편에서 하고자 합니다.  

명작들은 숨 쉴 틈 없이 이어집니다. 다음에 만나볼 작품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외국인의 작품입니다. 화가도 외국인이고 그림의 대상도 외국인입니다. 바로 한스 홀바인의 명작, '헨리 8세'입니다.

(1-4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카페그레코, #안티코카페그레코, #바르베리니, #이탈리아,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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