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이 시대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지도자다. 이는 단순히 NBA 통산 1000승과 5번의 파이널 우승, 그리고 .685(1022승470패)라는 높은 승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포포비치 감독은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를 키워내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시즌 동부 컨퍼런스 1위를 차지한 애틀랜타 호크스의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감독과 단장, 코치들이 포포비치 감독에 의해 양성됐다.

NBA와는 달리 국내 프로농구(KBL)에서는 이런 사례가 흔치 않았지만 2015년에는 울산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하던 이들이 연이어 다른 구단의 사령탑으로 부임하고 있다. 바야흐로 '유재학 사단'의 전성시대다.

짧았던 현역 시절의 아쉬움을 지도자 생활로 달랜 '만수' 유재학 감독

유재학 감독은 현역 시절, 당시만 해도 국내 농구에 흔치 않았던 정통 포인트 가드였다. 유재학 감독은 1988-1989 농구대잔치에서 기아를 우승으로 이끌며 MVP를 차지했다. 허재, 김유택, 한기범, 강정수 등 중앙대 출신들이 득실거리는 기아에서도 유재학 감독은 언제나 붙박이 주전가드로 활약했다.

하지만 기세등등하던 천재 가드도 부상이라는 뜻하지 않은 불운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무릎에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있던 유재학 감독은 세 차례나 무릎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재기에 실패하고 28세라는 이른 나이에 현역 생활을 접었다.

하지만 유재학 감독은 짧았던 현역 시절의 아쉬움을 화려한 지도자 생활을 통해 풀었다. 모교인 연세대에서 4년 동안 코치로 활약하던 유재학 감독은 1998-1999 시즌 34세의 젊은 나이에 대우증권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프로 무대에 진출했다. 이후 인천 신세기, 전자랜드로 팀명이 바뀐 7년 동안 인천의 프로 농구팀을 이끈 유재학 감독은 7년 중 5번이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초창기의 '유재학호'는 한계도 분명했다. 4강에 오른 시즌은 단 한 번(2003-2004 시즌)뿐이었고 1999-2000시즌에는 리그 최하위에 머물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비스가 유재학 감독에게 손을 내민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젊은 나이부터 모교와 프로팀에서 다양하게 지도자 생활을 거친 유재학 감독은 모비스에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며 5번의 챔프전 우승과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많은 훈련량으로 선수들을 조율하고 상대와 경기흐름에 따른 다양한 전략은 유재학 감독의 전매특허. '만수(萬手)'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유재학 감독은 작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을 금메달로 이끌며 자신의 지도력이 국제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모비스는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기도 전에 유재학 감독과 5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성역 없는 인재 등용으로 올해만 2명의 프로 감독 배출

유재학 감독이 프로농구가 낳은 최고의 명장임에는 분명하지만 모비스가 오로지 유재학 감독 혼자의 힘으로 지금의 왕조를 건설한 것은 아니다. 모비스에는 유재학 감독과 함께 선수들을 이끌고 전술을 연구한 훌륭한 코치들이 있다.

그리고 유재학 감독과 함께 모비스를 이끌던 '참모'들은 올해 연이어 프로구단의 사령탑으로 스카우트되고 있다. 시작은 조동현 코치였다. 쌍둥이 형인 조상현과 함께 '연세대 아이돌 시대'의 마지막을 이끌었던 조동현 코치는 프로에서는 그리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내진 못했다.

하지만 2013년 현역 은퇴 후 곧바로 모비스의 코치로 부임하면서 지난 두 시즌 동안 유재학 감독을 보좌해 모비스의 리그 3연패를 이끌었다. 그리고 지난 7일 친정팀인 부신 KT 소닉붐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농구의 비주류였던 경희대 출신의 가드 임근배 코치는 1998년 현역 은퇴 후 전자랜드 시절부터 유재학 감독을 보좌했다. 무려 15년 동안 감독과 코치로 인연을 이어온 유재학 감독과 임근배 코치는 모비스에서 3번의 우승을 합작했다.

임근배 코치는 지난 16일 계약이 만료된 이호근 감독의 후임으로 여자프로농구(WKBL) 삼성 블루밍스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15년의 코치 생활 동안 여자팀 지도를 해본 적은 없지만 삼성은 임근배 감독의 우승 노하우에 높은 점수를 줬다.

유재학 감독은 현역 시절부터 학연이나 라인에 얽매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용산중 출신이면서도 용산고, 경복고 출신이면서도 고려대 진학을 거부했고 프로 감독 부임 후에도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명대, 목포대, 조선대 등 비주류 대학 선수들을 과감히 지명했다. 이런 유재학 감독의 '성역 없는 인재등용'은 프로농구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만약 다음 시즌 조동현 감독의 부산 KT나 임근배 감독의 삼성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유재학 사단'에 대한 구단들의 관심은 더욱 커질 것이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양궁이나 쇼트트랙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해외에서 국내 지도자를 영입하던 현상이 2015년 프로농구에서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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