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아웃이 없는 시합. 그래서 야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다. 타임아웃이 없다 보니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야구이다. 그래서 야구가 인생을 닮았다고들 하는지 모른다.

한때 야구를 포기했거나,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라는 명목으로 밀려났던 선수들이 있다. 혹은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던 사람도 있다. 이들이 모여 다시 야구에 대한 꿈을 꾸던 팀이 있었다. '열정에게 기회를'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퓨처스리그 번외경기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고양 원더스. 그러나 지난 2014년 해체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1989년생인 윤병호 선수는 고양 원더스의 원년 멤버였다. 2011년에 입단하여 좋은 활약을 펼치다가, 지난 2013년 5월 NC 다이노스에 입단했다. 그는 세광고 졸업 이후에 단 한 팀으로부터도 지명을 받지 못했다. 말 그대로 실업자 신세였다. 이러한 아픔을 겪고 방황을 하다 원더스에 입단했다.

원더스를 거쳐 다이노스에 입단한 윤병호 선수. 마침내 꿈을 향해 한 발짝 전진한 그를 지난 12일 오후, 고양 국가대표야구훈련장에서 만났다. 고양 야구장은 한때 고양 원더스의 홈구장이었으며 지금은 고양 다이노스(NC 다이노스 2군)의 홈구장이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고양으로 돌아온 윤병호의 마음가짐도 남달라 보였다.

원더스에서 다이노스로... 고양에 돌아온 윤병호

윤병호 선수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가 한 번쯤은 찾아온다고….

▲ 윤병호 선수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가 한 번쯤은 찾아온다고…. ⓒ 강윤기


- 세광고 이후로 지명을 못 받았다. 뭘 하고 지내다가 원더스에 들어갔나?
"대학을 정말 가기 싫었다. 갈 수 있는 학교도 별로 없었고... 대불대학교를 가서 야구를 계속했다. 하필 그때 사춘기가 찾아 왔다. 야구도 하기 싫었다. 처음으로 부모님께 반항도 하고, 방황도 했다. 6개월 정도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도 해보며 놀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군대나 가라고 해서 입대를 했다. 그런데 일병 때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기자도 군대 다녀왔나?"

- (웃음) 예비군 6년 차다. 군대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내가 뭘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아, 야구를 다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군대에 있을 때 기초 체력 위주로 자체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 이후에 다시 세광고로 가서 야구를 해보겠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다. 그런데 야구를 하지 말라더라. 다시 시작하면 정말 어렵다고, 직설적으로 조언해주셨다. 좋은 직장 다니는 게 더 나은 삶이라고….

잠깐 고민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마침 고양 원더스에서 선수를 선발했다. 그래서 원더스에 입단하게 됐다. 아마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으면, 원더스에서 못 버텼을 것이다."

- 군대를 어디로 다녀왔는지?
"경기도 이천에 있는 헌병 특수대를 다녀왔다. 거기서 생활하면서 인내심이 많이 늘었다."

- 원더스에서 다시 운동하기 전, 먹고 살기 힘들진 않았나?
"헬스클럽에서 주부 타임에 스피닝(스핀 바이크를 이용한 유산소 운동) 아르바이트를 했다.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처음에는 정말 무시 많이 당했다. 영화 <파울볼>을 보면 김광수 코치님이 '막말로 트레이너 하던 놈이 오지 않나?'라는 말을 하는데 그게 나였다. 하다 보니 좀 적응은 되더라."

- 약간 식상한 질문인데, 고양 원더스와 NC 다이노스에서의 훈련은 어떠한 차이점이 있나?
"정말 애매한 질문인데... 나중에 내가 정말 훌륭한 선수가 되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다. 원더스에서는 기초적인 훈련을 반복적으로 많이 했다. NC에서는 고급스러운 야구를 많이 하고, 새로운 것도 많이 배웠다."

- 원더스에서 NC로 가기 전에 별말은 없었는지?
"감독실로 가서 바로 들었다. 한 6명이 불려가서 너는 NC, 너는 어디 이런 식으로 바로 전해 들었다. 많이 고민했지만, 기분 좋게 입단했다."

- 진해 공설 운동장에 처음 갔을 때는 어땠는가?
"처음에 NC에서 연락을 받아서 갔는데, 처음에는 정말 놀랐다. '이건 뭐지?'라는 말이 나오더라. 펜스도 시멘트도 정말 열악했다.

유니폼은 육성 선수용 유니폼이었다. '와, 프로 온 게 전부가 아니다, 이제 시작이구나!'하고 절로 긴장이 되더라. 바짝 정신 차려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처음이다'라는 마음가짐이었다. 고양에 다시 오니 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1군 첫 경험, 마음은 벌써 2루에 가 있었다

'너무 늦었어'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시범경기 NC와 두산의 경기 6회초 1사때 1루주자 NC 윤병호가 도루에 실패하고 있다.

▲ '너무 늦었어'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시범경기 NC와 두산의 경기 6회초 1사때 1루주자 NC 윤병호가 도루에 실패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끝이 없는 것 같다. 1군으로 다시 가면 또 다를 것 같다.
"처음에 1군 무대에 딱 가니, 관중들 소리는 막 들리고 앰프는 쿵쾅쿵쾅 울리고…. 코치에게서 뛰지 말라고 사인이 나왔다. 관중들은 '윤병호 뛰어라'고 하는데 마음은 벌써 2루에 가 있었다.(웃음)

혼자 흥분했던 기억도 난다. 고양에 이렇게 관중들이 많이 오시는 부분은 정말 좋은 경험이다. 치어리더들이 뛰고, 응원가가 나오고, 이런 점을 미리 경험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 많이 와주셔서 정말 고맙다."

- 원더스 때도 지원은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엄청나게 좋았다. 학생 야구만 하다가 독립구단을 처음 경험해봤는데, 라커룸도 생기고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 김광수 코치와 재미난 일화는 없는가?
"(무릎을 치며) 아, 기억났다. 내가 야구선수로서 처음으로 팬이 생긴 일화이다. 내가 처음에는 내야수를 했었다. 펑고(수비훈련을 위한 연습용 타구)를 받고 있었는데, 김광수 코치님이 '야, 임마!' 하면서 '네가 하도 놓치니깐 나도 치기가 싫다'고 하시더라. 근데 나도 스타일이 소리 지르면서 악으로 연습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나도 '코치님! 저도 잘 받고 싶습니다'고 외쳤더니 막 관중석 위에서 웃으시더라. 그 이후로 내 팬이 생겼다. 참 신기하다.(웃음)"

- 선배들이나 후배들을 보면 어떤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야구를 했는데... '왜 나는 그 나이 때 이렇게까지 야구를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와, 이 친구들은 정말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어린 친구들이지만, 저와 같은 무대에 있어서 많은 점을 배우고 있다. 시범경기까지 1군 무대를 경험했는데, 선배들의 많은 조언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 야구의 롤 모델은 누구인가?
"이종욱 선배이다. 수비하는 모습도 그렇고, 주루도 타격도 정말 멋있다. 같은 배팅 조여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송구 부분을 많이 배웠다."

- 윤병호 선수가 생각하는 인생이란? 야구란?
"포기를 하지 않으면 항상 기회는 오는 것 같다. 항상 초심을 갖고 절실함을 가져야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것 같다."

- 2015시즌 목표는 무엇인가?
"캠프 때 전준호 코치께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외야 수비와 주루 플레이 등 여러 기술을 배우다 보니, 이제는 이걸 써먹고 싶다. 내가 캠프 때 잘했으면 1군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올해는 배운 기술들을 2군 무대에서 활용하려 한다."

- 2군에서 배운 것을 완벽하게 가다듬겠다는 말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당장 이번 시즌에 1군으로 올라가는 것보다는, 2군에서 시합을 많이 뛰고 싶다. 컨디션도 썩 좋은 편은 아닌데, 좀 참고 하려 한다. 훈련이라는 것도 흐름이 있다. 계속 실패도 해보고, (몸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1군에 올라가는 게 목표이다. 시합하는 것 자체가 재밌다."

- 여담인데, 영화 <파울볼>에 별로 나오지를 않는다.
"나도 좀 섭섭했다. (웃음) 고양 오기 직전에 시사회에 들러서 영화를 봤는데 많이 안 나오더라. 카메라는 나를 많이 비췄었는데 아쉽다. 재훈이 형(설재훈 선수)의 팬이 많이 생긴 것 같다. 아, 그리고 원더스 선수끼리 돈을 모으고 있다. 자기가 낼 수 있는 만큼만."

- 취지는 뭔가?
"같이 모여서 밥을 먹든가…. 아직 확실하게 정하지는 않았다. 자기가 낼 수 있는 만큼만 내면서 모으고 있다. kt 위즈에 있는 종민이 형(김종민 선수)을 주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열정에게 기회를."

한 번 낙오하면 끝인 세상이 아니라, 다시 손잡아 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고양 원더스는 해체됐지만, 오늘도 각자의 야구 인생이 있기에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선수들이 있다. 윤병호 선수의 앞날에 행운을 빈다. 윤병호 선수의 꿈도 이루어지기를, 그의 열정에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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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강윤기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강윤기의 야구터치>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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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U, 스포츠 야구 전문기자 , 강윤기의 야구 터치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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