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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항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2층 버스
 평택항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2층 버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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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부터 경기도에서 시범운행해왔던 알렉산더 데니스(ADL)사의 2층 버스가 지난 19일 선적됐다. 정확히 100일간 대한민국을 여행했던 2층 버스의 여정이 끝났다.

지난 9월부터 입석금지 대책의 일환으로 제안된 2층 버스는, 지난해 12월 경기도와 청라국제도시 시운전, 지난 2월의 안산 시운전을 거쳐 3월에는 세종시까지 돌았다. 이번 2층 버스 시운전은 한국에서 2층 버스를 운행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제고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ADL사의 2층 버스 시운전도 법의 빗장을 완전히 풀지는 못했다. 이번 2층 버스 시운전은 대용량 교통수단 도입의 장벽으로 지적됐던 도로교통법 완화를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소기의 성과는 내지 못한 채 끝을 맺었다. 현행법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도입하는 식으로 정리되어, 2층 버스 도입을 추진했던 일각에서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마지막 행선지는 세종시... 법 개정을 목표로 했던 방문

2층 버스의 마지막 행선지는 바로 세종시였다.
▲ 세종시에 정차한 2층 버스 2층 버스의 마지막 행선지는 바로 세종시였다.
ⓒ 이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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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대전광역시를 한 바퀴 순회하는 운행은 본래 2월 중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지난 17일로 일정이 변경됐다. 여러 달 동안 쉬지 않고 운행한 탓에 엔진 결함이 생긴 탓이었다.

세종특별자치시와 대전광역시에서의 운행은, ADL사의 2층 버스 수입사인 아반트 코리아 이중철 대표의 선택이었다. 법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 아닌 시위였다.

이중철 대표는 지난 17일,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부분의 도로에 시설물이 높이 4.5m 이상으로 설치됐다, 특히 노선버스가 다니는 구간에는 시설물이 2층 버스 높이 이상에 설치되어 있다"며 "그런데도 현재의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2층 버스를 상시교통수단으로 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높이 4m, 길이 16.7m가 넘는 도로교통수단의 경우 별도의 허가를 받아 운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유럽산 버스가 대한민국에 들어오려면 간단한 운행 허가절차 대신, 복잡한 허가절차를 거쳐야만 운행이 승인된다. 심지어 이는 차량, 노선마다 각각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문제는 도로가 대형화·고속화되면서 시설물이 4.0m 이상의 높이로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데 있다. 특히 국도 이상의 도로는 모든 표지판과 입체교차로의 높이가 4.5m 이상의 높이로 건설되고 있다. 2층 버스는 보통 높이 4.5m 이상으로 건설되는 주요 간선도로에서 운행된다. 현행 4m 규제가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세종시의 국토교통부 앞에 도착한 2층 버스는, 세종시 시민들의 눈길이 끈 것 이상의 일을 해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단 한 번의 실측조사나 시운전 없이, 2층 버스는 별다른 장애를 받지 않고 수도권에서 세종시 그리고 다시 수도권까지 정상적으로 운행했다.

일부 교통 연구자들은 이번 운행을 계기로, 2층 버스에 대한 기대를 표하고 있다. 단거리·장거리를 막론하고, 시민들에게 더욱 안정적이고 혼잡도가 낮은 교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였다. 하지만 동시에, 현행 도로교통법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종시의 경우 간선급행버스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 2층 버스나 굴절버스 등 새로운 도로교통수단이 버스 체계 안에 편입된다면, 더욱 편리하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2층 버스 승객은 단거리의 경우 1층, 장거리는 2층으로 자연스럽게 나뉘게 된다. 승객들의 버스 내 동선 분리는 물론, 지역주민에게 "지옥버스"라 불리는 혼잡도 완화될 수 있는 정책이다.

2층 버스는 떠났지만... 여러 가능성 제기하다

3달 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닌 탓에 많은 먼지와 얼룩이 쌓여 있었다.
▲ 2층 버스의 창문에 가득히 묻은 먼지 3달 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닌 탓에 많은 먼지와 얼룩이 쌓여 있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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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2층 버스가 평택항에 입고됐다. 대한민국 운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평택항 자동차 부두에 일렬로 세워진 자동차 사이로, 건설기계들이 반입되고 반출되는 곳이 있다. 그 곳 사이를 비집고 2층 버스가 들어왔다. 평택국제자동차부두의 한 직원은 "버스가 들어올 때는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나갈 때는 그리 큰 관심을 못 받고 나가게 되었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지난 18일, 김포와 남양주에 다른 모델의 2층 버스가 운행될 계획과 예산안이 발표되면서 관심이 그쪽으로 쏠렸기 때문이었다.

지난 1996년, 과천과 서울을 잇는 버스 노선에 2층 버스를 시범 운행한 바 있었다. 당시는 2층 버스의 전고(높이)가 매우 높아 버스가 육교에 걸려 운행을 중단하는 사태도 있었고, 서울대공원에서는 킹콩버스라는 이름의 놀이기구로 이용된 적도 있다.

이번 2층 버스는 달랐다. 2층 버스 시운행 기간 동안, 시내일반버스부터 광역급행버스까지 모두 정상적으로 운행됐다. 운행의 지장이 예상되는 구간은 운행을 하지 않았고, 실제로 약 100여 일을 운행하는 동안 시민들의 평가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다만, 2층 버스의 수입은 확정됐지만 이번 시범 운행에 나섰던 모델은 제외됐다. 국내법에 맞춘 스페인 운비사의 어비스 2.55D 모델을 수입하게 됐다. 이중철 대표는 이번 국토교통부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중철 대표는 지난 17일, "국내법에 맞게 설계된 2층 버스는, 수송량 증대라는 당초 목적과는 맞지 않게 2개의 계단과 4m 이하의 높이를 요구하고 있다"라며, "높이가 낮아 답답하다는 이용자 의견도 나오고 있고, 시민들의 체구도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래 전 정해진 법에 맞추라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지적했다.

2층 버스에 2개의 계단을 설치하는 것은 승·하차 시간의 소폭 축소를 가져오지만, 좌석이 줄어들게 된다. 2개의 계단을 설치한 2층 버스는, 일반적인 1층 버스와 좌석 개수 차이가 크지 않아 교통체증 완화에 도움이 크게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입석에 특화된 '루트 마스터' 모델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계단을 한 세트만 설치하고 있다.

교통평론가 한우진씨는 자신의 블로그 기고를 통해 "규제가 시대변화를 못 따라가는 대표적 사례가 2층 버스가 아닌가 싶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씨는 "버스의 규격에 맞춰 신체를 맞추라는 의미인데, 이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케 한다"라며, "2층 버스의 규제가 손톱 아래 가시가 되어 통근자의 불편을 키우지 않도록, 정부가 서비스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런 비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했다. 지난 1월 6일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배석주 국토교통부 대중교통과장은 "규칙 개정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7일, 국토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계단이 두 개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에 대해서 아직 2층 버스에 대해 마련된 규정은 없으며, 이는 권고사항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층 버스는, 적어도 한국에서 '버스=1층'이라는 개념을 재논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던져주었다. 2층 버스가 한국을 떠날 때, 기자에게 이를 알려달라고 평택항에 부탁했다. 입고일 며칠 후, 기자의 핸드폰에 "화물이 선적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또 그 며칠이 지나서, "화물이 출항했습니다"라는 간단한 메시지도 전송됐다. 한국 사회에 여러 시사점을 던져 줬던 버스 한 대는 그렇게 떠났다.


태그:#2층 버스, #평택항,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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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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