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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에게는 온 집안이 신세계다.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듯 넓은 장소보다 좁고 구석진 곳을 찾아 열심히 기어 간다.
▲ 거울 사이를 통과하는 딸 이서 이서에게는 온 집안이 신세계다.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듯 넓은 장소보다 좁고 구석진 곳을 찾아 열심히 기어 간다.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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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뒤집기를 할 때만 해도 엄청나게 자랐다고 놀라워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6개월부터 배밀이를 하더니 8개월을 앞두고 있는 요즘은 범버침대를 기어 넘어가고 있다. 어제는 기다가 스윽 아무렇지 않게 혼자 앉아 어안이 벙벙한 우리를 의연히 바라보았다.

긴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도 잠시 부지런히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이서 덕에 우리 부부는 이전보다 더 바빠진 육아를 경험하고 있다. 하루는 이서 손에 손톱깎이가 있어 경악하여 집안 구석구석 바닥청소를 했다. 또, 1mm라도 날카로운 물건이 있다면 모두 책상 위로 옮겨 놨다.

하지만 이서는 늘 우리 생각의 범위를 넘는다. 헤어드라이기 전기코드 빨기, 아내의 머리카락이 엉켜있는 빗먹기, 심지어 내가 바닥에 누워 자는 틈에 안경을 벗겨 빨아 먹기도 한다. 이런 이서를 보호하기 위해 이서가 활동할 때에는 늘 예의주시하며 붙어 다녀야 한다. 그래도 이서 덕에 게으른 우리 부부가 청소라도 열심히 하게 되니 감사하다면 감사할 일이다.

눈으로만 구겨했던 화려한 색의 책들을 이제 직접 만지니 얼마나 좋을까?
▲ 아빠 저 책 고르러 왔어요~ 눈으로만 구겨했던 화려한 색의 책들을 이제 직접 만지니 얼마나 좋을까?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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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득,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기준으로 보는 이서가 아닌 정작 이서 본인의 마음은 어떨까?' 이서의 눈높이에서 생각했을 때, 이서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은 어떤 것일까? 8개월 아이도 나름의 고민과 생각이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이서는 갓난아기 때부터 호기심이 참 많았다. 엄마가 주는 맘마보다 주변 소리나 사물을 관찰하기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평균 월령 때 아이들보다 몸무게가 조금씩 적게 나갔고, 아내는 늘 그 부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은 욕구가 많은데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니 안겨서 주변 보는 것을 즐기고는 했다. 그런 이서가 이제는 스스로의 몸을 가누고 의지대로 움직인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 세상을 마음껏 탐험할 수 있는 것이다. 엄청 행복하고 즐겁지 않을까?

지금 이서는 성취감으로 가득 차 있을 게 분명하다. 통제하지 못했던 세상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어른인 내 입장에서 이서를 보면 '아 이제 기는구나, 조금 있으면 걷겠구나'와 같이 부모로서의 기쁜 마음 정도가 전부이다. 하지만 이서는 훨씬 더 즐거운 나날일 것이다.

이서의 지금 마음은 어른 입장에서 보면 어떤 기분일까? 나로 치면 말단 사원에서 사장이 되어 회사를 쥐락펴락 하는 느낌과 조금 비슷할까? 힘없는 위치에서 회사나 사회를 통제하는 힘을 갖게 되는 상태라면 지금 이서의 마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른인 나도 무언가에 대한 성취욕과 탐구욕을 채워주는 일이 생기면 무척 흥분한다. 우리 이서의 마음도 이런 마음일지 모른다.

이서에게는 모든 것이 장난감이다. 심지어 아빠의 안경도
▲ 자는 틈에 아빠 안경을 빼서 음미하는 이서님 이서에게는 모든 것이 장난감이다. 심지어 아빠의 안경도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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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는 구경하는 게 신 나서 식탁 밑도 기어 다니고 범버침대를 나오다 구르기도 하는데 아빠인 나는 마냥 귀찮게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무심코 부모인 내 입장에서만 아이를 대하고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사실 좀 겁이 날 때가 있다. 내가 마냥 아이를 좋아해만 해줘서 나중에 버릇없어지는 것은 아닐지, 아빠를 만만히 대하게 되는 건 아닐지, 혹은 아이를 내 관점으로 훈육하고 가르치기만 해서 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아빠가 되지는 않을지.

운전하며 속도계를 확인하고 좌우를 살피면 사고가 나지 않지만, 무심코 아무 생각없이 운전하면 사고가 나는 것처럼 지금 내 아이의 마음과 생각에 무심한 아빠가 되면 아이의 마음을 잃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8개월 될 아이를 두고 별의별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지만, 그만큼 난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좋은 부녀관계를 통해 아이가 건강한 인성을 갖고 세상에서 밝게 살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있다. 이서가 엄마 소리를 따라 부엌으로, 화장실로 쫄쫄 기어올 때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내 딸이라는 점이다.

조만간 머리를 '쿵'하고 찧어 울테지만 오늘도 이서는 식탁 밑 세상을 탐험한다.
▲ 식탁 밑을 탐험하는 이서 조만간 머리를 '쿵'하고 찧어 울테지만 오늘도 이서는 식탁 밑 세상을 탐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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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딸바보, #육아, #슈퍼맨, #아빠,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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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사회에 평범한 신입아빠, 직장인인 연응찬이라고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바라보는 사회가 정말로 대한민국 국민이 느끼고 공감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평범한 눈과 자세로 세상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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