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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업화시기(1962~86년)에 인천지역 기업들도 급성장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인천에 본사를 둔 일부 기업이 경쟁력을 잃고 문을 닫거나 저임금을 찾아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생산시설을 옮겼다. 국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기업도 늘어났다. 기업들이 인천을 떠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수도권정비계획법상 각종 규제도 주요 원인이고, 공장지대의 높은 땅값 등도 한몫했다.

최근에는 생산매출 규모가 인천에서 두 번째로 크고 세계 일류 철강업체로 성장한 현대제철이 인천을 등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현대제철 인천공장의 상황을 진단해 몇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2014년 말 기준으로 '국내 매출 1000대 기업' 중 인천에 본사를 둔 기업은 39개에 불과하다(<표 참조>). 절반은 서울에 집중돼 있다. 인천 입장에서 그나마 위안은 1000대 기업에 속하는 기업의 종사자 수가 부산보다 많다는 것이다.

현대제철은 인천에서 매출규모가 두 번째로 큰 회사다. 2013년 말 기준 12조 8142억 원으로 한국지엠(15조 6039억 원) 다음으로 많다. 순이익은 6820억 원으로 한국지엠의 1010억 원보다 많았다. 2014년도엔 매출이 16조 329억 원으로 전년대비 25%나 신장됐다. 고용인원도 1만여 명에 달한다.

지역별 국내 1천대 기업 현황 비교 표
 지역별 국내 1천대 기업 현황 비교 표
ⓒ 한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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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철강 업체로 성장한 현대제철을 잉태하고 성장하게 한 곳은 인천이다. 현대제철의 전신인 대한중공업공사가 한국전쟁이 채 끝나지 않은 1953년 6월 인천에서 창립했다. 대한중공업공사는 전후 시설 복구에 필요한 철강재를 생산해 공급했고, 1962년 인천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 활성화에 집중하면서 국가기간산업으로 부상한 철강 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인천중공업을 민영화하는 동시에 민간기업의 철강 산업 참여를 유도했다. 인천중공업은 1970년 4월 인천제철과 합병하며 지금의 현대제철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인천시민들에게 현대제철이 인천제철로 불리는 이유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철강 산업에 진출한 후 인천제철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정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대형 공장을 잇달아 건설하고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한편, 국내 업체 최초로 대형 구조물 골조로 사용되는 H형강을 생산하는 등 기술적으로 큰 발전을 이뤘다.
   
오늘날 현대제철 키운 인천에 투자 인색

현대는 인천제철을 인수한 후 철강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왔다. 장기 목표는 자동차용 강판 생산이었다. 2000년 포항에 있는 강원산업과 합병하고, 또 그해 창원에 있는 삼미특수강을 인수했다.

특히 2004년에 한보철강을 인수한 이후 충남 당진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10조 원을 투입해 일관제철소를 만들었다. 부도난 철강회사를 인수하고 일관제철소를 신설하는 자금의 종자돈은 인천의 제철소에서 나왔다.

현대제철은 인천공장을 비롯해 전국에 공장 7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중 인천공장의 매출액은 2조 9400억 원이다. <시사인천>이 입수한 현대제철 인천공장 운영 현황을 보면, 2013년에 H형강 155만 5000톤, 철근 113만 4000톤, 일반경강 36만 톤, 주단강 25만 톤 등을 생산했다. 이는 전국 7개 공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제철은 국내 최초로 H형강을 생산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2013년 인천공장에서 H형강 155만 5000톤을 생산했다.
 현대제철은 국내 최초로 H형강을 생산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2013년 인천공장에서 H형강 155만 5000톤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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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보철강 인수 후 신설한 일관제철소가 인천공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현대제철은 일관제철소 고로 1~3기를 완성하자마자 또 1조 원를 투자해 특수강 생산시설을 건설 중이며, 고로 4~5기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

현대가 2000년 이후 철강 산업의 몸집을 키우는 동안 인천공장에 대한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제철인천지회는 "현대제철은 인천공장을 모태로 해 2000년 이후 무려 5개의 회사를 합병 또는 인수했다. 그럼에도 인천에 대한 투자는 하지 않고, 인천공장을 죽일 계획으로 이제는 SPP율촌에너지까지 인수하려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현대제철 이번엔 율촌 인수... 인천공장 전기로 폐쇄 우려

전기로 생산하는 잉곳. 잉곳은 제강의 주원료인 철 스크랩으로 만든다. 이 잉곳은 풍력ㆍ 원자력ㆍ화력이나 선박ㆍ선박엔진 설비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전기로 생산하는 잉곳. 잉곳은 제강의 주원료인 철 스크랩으로 만든다. 이 잉곳은 풍력ㆍ 원자력ㆍ화력이나 선박ㆍ선박엔진 설비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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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은 조선(造船)용 단조 제품을 생산해온 SPP율촌에너지 인수에 나섰다. SPP율촌에너지는 단조 상공정에 해당하는 잉곳(Ingot)을 원재료로 해 선박 엔진·부품 등을 만드는 회사다. 제강에서 단조, 가공까지 일괄생산시스템을 구축한 회사로 풍력·원자력, 선박이나 산업 설비에 소요되는 단조품과 금형강 등을 생산하는 건실한 중견기업이었으나, 무리한 사업 확장과 조선업 침체로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SPP율촌에너지는 단조 제품뿐 아니라 잉곳 제강 능력도 갖추고 있는데, 이 부분이 인천공장 입장에선 문제가 되고 있다. 인천공장에서 잉곳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장은 40톤·50톤 전기로에서 잉곳을 생산해 부산에 본사를 둔 태웅 등에 납품해왔다. 그런데 태웅이 올 12월 완공 목표로 120톤 전기로를 신설 중이다. 이렇게 되면 태웅은 잉곳을 약 70만 톤까지 생산할 수 있다.

여기에 100톤 전기로에서 잉곳 6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SPP율촌에너지를 현대제철이 인수하면, 인천공장의 잉곳 생산은 경쟁력을 잃게 된다. 현대가 SPP율촌에너지를 인수하게 되면 인천공장의 잉곳 생산 공정은 사실상 문을 닫게 된다.

이로 인해 현대제철 인천공장에 고용불안이 심해지고 있다. 강홍규 현대제철인천지회장은 "인천공장을 모태로 돈을 번 현대제철은 수년 동안 인천공장에 투자하지 않았다"며 "인천공장의 비전 제시 없이 인천을 희생양 삼아 사업을 확장하면 뼈 빠지게 일해 온 노동자들만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고 걱정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현대제철 노사는 특별 단체교섭을 진행 중이다. 고용불안과 직결한 문제인 만큼, 노사 갈등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현대제철, #인천제철, #한보철강, #정주영, #SPP율촌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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