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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IS(이슬람국가)에 납치된 두 명의 일본인 인질이 지난 2월 1일 참수된 것이다. IS는 악몽이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IS 통치 지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은 40명이 넘는다. 2003년 이라크에서 일본 외교관 두 명이 테러를 당해 피살되고, 2013년 알제리 천연가스 시설에서 일하던 일본인 기술자 10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홋카이도대 대학생이 IS에 잠입하려다 발각됐다. 일본 정부와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참수 사태 후에도 취재차 시리아에 들어가려는 프리랜서 기자의 여권을 일본 정부가 강제로 압수했을 정도다. 전례 없는 일이다. 일본도 더이상 안전 지대가 아니다. 도쿄의 서점에는 IS와 중동 분쟁을 다룬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본, 더이상 안전 지대 아니다

지난해 6월 IS는 이라크 북부 제2의 도시 모슬을 점령하고 국가 창설을 선포했다.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에 걸친 영국 크기 만한 영토다. 통치 지역 내 거주 인구도 무려 8백만 명에 달한다. 기존 국경은 어차피 서구 제국주의가 일방적으로 그은 것이니 상관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1100만이 넘는 난민 발생, 이라크 말리키 정권의 시아파 우대 정책과 종교 갈등, 시리아와 이라크 등지에서 국가 기능 파탄과 힘의 공백이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고 있다.

중동 지역의 청년층 증가 및 실업난과 더불어 유럽 내 차별과 빈곤으로 희망 없는 아랍계 젊은이들을 IS가 끌어들이고 있다. 석유 밀매와 납치극, 세금 징수로 하루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도로와 하수도를 정비하면서 주민들의 지지도도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격차 사회와 중동의 혼란이 IS의 극악 무도한 납치 살해와 충격적인 동영상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이는 미국 중동 정책의 실패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IS의 충격이 심각한 위협으로 장기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8월 사설 무기 업체를 운영하던 유카와 하루나가 사업차 시리아를 방문한 뒤 IS에 납치되었다. 현지에서 활동 중인 고토 켄지가 유카와 하루나를 만나고자 시리아에 들어갔다. 그는 지난해 10월 25일 시리아인 가이드에게 비디오 메시지를 남기고 행방불명 된 채 사라졌다. 급기야 12월에는 고토 켄지 부인에게 2억 달러를 요구하는 이메일이 날아 들었다. 일본 외무성은 총비상이 걸렸다.

이슬람국가(IS)가 공개한 일본인 인질과 요르단 공군 조종사 살해 협박 영상 메시지 갈무리.
 이슬람국가(IS)가 공개한 일본인 인질과 요르단 공군 조종사 살해 협박 영상 메시지 갈무리.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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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암만의 일본대사관에 설치된 현지 대책 본부를 중심으로 교섭을 시도했다. IS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집트, 터키 등의 현지 부족장, 종교 단체 대표들에게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직접적인 접촉은 불가능했고, 이메일로만 연락할 수 있었다. 전문가 부족으로 현지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지 못했다. 시리아에 있는 인질을 구출하는 데 요르단에 대책 본부를 설치한 것도 의문이 제기됐다.

올해 1월 7일 프랑스에서 연속 총격 테러 사건이 일어났고, IS는 서방 국가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1월 20일 IS는 고토 켄지와 유카와 하루나 2명을 살해하겠다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그러나 아베 수상은 국회 답변에서 IS 테러 집단과의 협상은 없다고 선언했다. IS는 2억 달러 대신 요르단에 수감된 여성 테러리스트 사지다 알 리샤위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베 수상은 미국과 요르단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인질범 석방 교섭에 소극적이었다. 급기야 지난 2월 1일 IS는 고토 켄지가 참수된 동영상을 공개했다.

아베의 중동 방문, 일본인 인질 참수로 이어져

과연 일본 정부의 대응은 적절했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왜 아베 수상은 하필이면 민감한 시기에 중동을 방문했을까. 일본 외무성은 아베의 중동 방문을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아베 수상은 지난 1월 16일부터 20일까지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했다. 단지 인질범 석방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분쟁 지역을 방문해 일본의 국제 공헌을 강조한 것이었다.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던 아베 수상이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기도 하였다. 요컨대 글로벌 외교와 적극적 평화주의를 합친 아베류 외교 전략의 일환이었다.

지난 1월 17일 아베 수상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일본과 중동 관계를 중시하면서 인도적 지원과 인프라 정비 등에 25억 달러를 지원할 의향을 표명했다. 중동 지역 안정화를 위해 일본이 글로벌 파트너로서 공헌하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국제 협력에 기초한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를 토대로 경험, 지혜, 능력을 살려 세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각오를 호소했다.

문제는 일본인 인질 두 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태에서 중동 지역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기자 회견 내용도 IS를 자칫 자극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는 "IS와 싸우는" 주변국에 대해 비군사 분야에서 2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비군사 지원은 난민을 위한 식량과 의료 지원 등이다. 테러와의 전쟁, 인도적 지원은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이며, 별로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두 명의 인질이 사로잡힌 상태였다. 이스라엘 국기 앞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하겠다고 언급한 것도 적절하지 못했다. 아베 수상은 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미국 공화당 맥케인 상원 의원을 포함한 7명의 미국 의원과 만났다.

비군사 분야 인도적 지원도 IS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난민 지원은 시리아나 이라크 모국으로 난민들의 귀국을 지원한다. 새로 국경을 확대하고 지배 지역 주민 숫자를 늘리려는 IS에게 위협으로 인식된다. 아베 수상의 중동 방문이 끝나자마자, 인질범을 살해하겠다는 동영상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결국 두 명의 일본인 인질이 참수되는 비극으로 끝났다.

야당으로부터 무분별한 행동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예민한 시기에 중동 지역을 방문해 불필요하게 IS의 반발을 샀다는 것이다. 프랑스나 스페인에서는 석방금을 지불하고 인질이 풀려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미일동맹과 테러와의 전쟁에 집착하는 일본은 타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고토 켄지 피살 후 아베 수상은 "잔악무도한 테러리스트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국제사회와 연계하면서 대응하겠다, 일본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집단적 자위권 강화에 나선 아베 정권

이슬람국가(IS)가 24시간 내 인질 맞교환을 요구하는 영상 메시지를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이슬람국가(IS)가 24시간 내 인질 맞교환을 요구하는 영상 메시지를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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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수상은 지난 2일 참의원 예산 위원회에서 인도적 지원을 통해 테러리즘에 맞서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NGO는 분쟁 지역과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만큼 테러와 납치 위협에 노출돼 있다. 아베 수상은 자위대가 납치된 자국민 구출에 무기를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발언했다. 인질 납치 사태를 배경으로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을 강화하고, 본격적으로 자위대 군사 활동을 확대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유엔 안보리 결의가 없어도 전투 중인 타국 군대를 자위대가 후방 지원할 수 있도록 법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유엔 결의에 따라 활동하는 다국적군뿐 아니라, 유엔 결의 없이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미군의 단독 군사 행동까지 자위대가 후방 지원할 수 있다. 유사시 미군 후방 지원을 규정한 주변 사태법도 바뀔 수 있다. 주변 개념을 확대해 사실상 지리적 제약을 없애기로 했다. 세계 어디서나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 요건을 구성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자위대가 분쟁 지역 미군 지원은 물론 준 동맹국에 해당하는 호주 군대도 지원할 수 있다.

더불어 항구법까지 검토하고 있다. 항구법이 제정되면 자위대 파견 여부를 국회에서 그때 그때 논의할 필요 없이 일본 정부 판단으로 자위대를 해외에 보낼 수 있게 된다. 따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거나, 자위대 파견기간을 제한할 필요도 없다. 아베의 생각은 미일동맹을 보다 확실한 글로벌 군사 동맹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공명당은 아직 신중한 입장이지만, 정치역학상 결국 자민당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

불과 1년 전 국가안전보장회의, 일본판 NSC를 만들었던 아베 정권이다. 이번 사태 이후, 일본 정부는 미국의 CIA, 한국의 국가정보원, 영국 MI6을 모델로 새로 정보 기관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전후 외무성 출신이었던 요시다 수상은 모든 해외 정보를 외무성 채널로 단일화했다. 예컨대, 해외 대사관에 파견된 일본 경찰도 수집된 정보를 반드시 외무성에 보고해야 한다. 외무성은 정보만 다루는 전문 기관이 아니다. 인질 참수사태에서 일본의 정보 능력 상 한계도 드러났다. 대테러 사태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려면 지금 내각조사실 수준으로 부족하며, 국가정보국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테러 리스크 커지는 일본

일본인 인질 참수 사태 이후 아베 정권의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자위대의 해외 활동과 군사 개입 확대 노선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적극적 평화주의는 미일동맹의 글로벌화를 뜻한다. 일본 자위대가 해외 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많은 일본인들이 분쟁 지역에서 NGO단체 대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일본인 해외 여행객 숫자는 매년 1700만 명에 이를 정도이다. 분쟁 지역 취재에 몸을 사리지 않는 프리랜서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국제 테러와 납치 피해에 노출될 우려가 상존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자위대가 해외에서 무기를 사용해 일본인 구출 임무를 다하겠다고 하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엄청난 군사, 정보 대국인 미국조차 시리아 인질 구출 작전에서 실패한 것을 봐도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일본 야당은 아베 정권이 인질 참수 사태를 계기로 국민 불안감을 조장해 자위대의 해외 활동을 단숨에 확대하는 법제 변경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적극적 평화주의 아래서 미일동맹의 글로벌화, 자위대 해외활동이 늘면 늘수록 일본인들의 인질 사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역 분쟁 틈바구니에서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은 더욱 위험에 노출된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거꾸로 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미일 방위 협력 지침 가이드라인이 개정될 예정이다. 개정안은 글로벌 미일 안보 협력이 주된 내용이다. 정부 개발 원조인 ODA 기본 방침을 바꿔 간접적인 군사 지원도 가능하게끔 검토하고 있다.

IS 인질 사태 이후 아베 정권은 보통 국가 노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헌법 개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자주 드러내고 있다. IS 일본인 인질 사태가 동북아 국제 정세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양기호님은 성공회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태그:#이슬람국가, #일본인 인질, #적극적 평화주의, #집단 자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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