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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구불길
 군산구불길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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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이 길은 기억에 없는데,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철새는 언제쯤 볼 수 있는 거지? 이 길은 아무리 걸어도 강이 나올 것 같지 않아.

군산구불길 1코스 비단강길은 작년에 6·4 지방선거가 끝난 뒤 2박3일 일정으로 군산에 왔을 때 걸었다. 금강을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은 겨울에 걸어야 제맛이라고 길 위에서 만난 이가 알려주었다. 겨울이면 금강으로 철새가 무리지어 날아들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탐조를 할 수 있는 조류관찰소와 탐조회랑이 이 길에 있다.

그때 겨울에 다시 와서 이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창식씨가 비단강길을 거꾸로 걷는다고 했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하지만 나는 이 길을 다시 걷지 못했다. 우리 일행은 비단강길을 걷는다고 해놓고 다른 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길을 잘못 든 것을 안 것은 걸은 지 한 시간여가 지난 뒤였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2코스인 햇빛길이었던 것이다. 우째 이런 일이?

그건 출발지를 나포삼거리로 잡았기 때문이다. 금강을 따라 걸어야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보이는 구불길 리본을 따라 방향을 잡았더니 2코스를 걷고 있었던 것이다.

 군산구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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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구불길 1코스는 공주산에서 끝나고, 2코스 출발지 역시 공주산이다. 나포삼거리에서 공주산까지 1코스와 2코스가 겹쳐진다. 1코스와 2코스가 갈리는 나포삼거리에는 구불길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지만 2개의 코스가 갈린다는 안내판은 없었다. 이 길을 처음 찾는 이라면 헷갈리고도 남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온 나도 헷갈렸는데 오죽하랴.

하지만 1코스를 거꾸로 걷든 2코스를 걷든 문제는 없었다. 우리는 구불길을 걸으러 온 것이고, 지금 구불길을 걷고 있으니까. 그러면 된 거지. 그렇더라도 아쉬움은 남는다. 표지판이 있었다면 2코스를 걸으면서 1코스라는 착각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9일, 우리는 수안보에서 하룻밤을 묵고 느지막이 군산으로 출발했다. 수안보에는 전날 내린 눈이 제법 쌓였지만 북쪽으로 올라올수록 눈은 점점 사라졌다. 군산으로 오니 눈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따뜻한(?) 북쪽이라고 해야 맞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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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에서 우어회 정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아직 우어회 철은 아니라지만, 맛은 있었다.
 군산에서 우어회 정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아직 우어회 철은 아니라지만, 맛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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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어회
 우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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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가 조금 넘어 나포삼거리에 도착했고, 아예 점심을 먹고 걷기로 했다. 점심은 우어회 정식이었다. 우어는 웅어라고 불리는 생선으로 4월~5월이 제철이란다. 충청도에서 '우어'라고 부른단다.

식당 쥔장과 쥔아주머니가 이르지만 우어철이 시작됐다고 우겨서 그냥 먹어보기로 했다. 우어는 성질이 급해서 그물에 잡히면 금방 죽어버린단다. 그래서 머리와 내장을 빼내고는 얼음에 쟁여두어야 한다나. 냉동을 한다는 얘기가 되겠지.

우어는 두 번째로 먹는다. 작년에 군산구불길을 걸으러 왔을 때 횟집에서 먹었더랬다. 그 때 식당 아주머니가 "전어가 상놈이면 웅어는 양반이여"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만큼 맛이 좋은 생선이라는 얘기였다. 하긴 옛날에 임금님이 먹던 귀한 생선이었다고 하니, 그 말이 헛말은 아니리라.

갓 지은 돌솥밥이 곁들여져 나오는 우어회 정식은 맛있었다. 입맛을 잃었다면 입맛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감칠 맛이 났다. 나포삼거리에 맛있게 하는 식당이 있으니 한번쯤 들러 입맛을 다셔도 좋으리.

 군산 나포삼거리에서 길을 건너니 너른 평야가 펼쳐진다.
 군산 나포삼거리에서 길을 건너니 너른 평야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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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점심을 먹느라 오후 2시가 훌쩍 넘어 걷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전까지 걸으면 되리라, 이런 생각을 했다. 나포삼거리에서 출발했다. 이날도 고양힐링누리길을 담당하는 김운용 고양시 녹지과장, 안보선 팀장, 정창식, 최한범 주무관과 함께 걸었다.

군산구불길 2코스 햇빛길은 총 길이가 15.6km이며, 소요 예상시간은 295분. 5시간 정도 걸린다는 건데, 예상시간일 뿐이다. 걷는 사람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줄어들 수도 있고, 늘어날 수도 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길은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야 좋은 길로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러니 이런저런 생각하지 말고 그냥 걷자.

도라지가 유명하다는 군둔마을까지 가는 길, 옆은 너른 평야가 이어지고 있었다. 추수는 작년 가을에 일찌감치 끝났을 터이고, 지금은 텅 비었다.

군산, 하면 일제강점기에 군산항을 통해서 엄청나게 많은 쌀이 일본으로 실려 나간 수탈의 현장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는 소설이 채만식의 <탁류>가 아닌가. 그래서 군산에는 채만식문학관이 있고, 채만식 생가터가 남아 있다.

 군산구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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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군산의 인구는 6천여 명이었는데, 3천여 명이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지금도 군산에는 당시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들이 제법 많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절 동국사 역시 군산에 있다.

일제강점기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군산은 그 때문에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시내 곳곳에 일본식 건물이 새로 지어지고, 식당이며 카페가 들어서고 있다. 대부분 군산을 찾는 여행객의 수요에 맞춘 것일 게다. 군산을 돌아다니면 여행 비수기인 겨울인데도 관광객들이 제법 많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길은 마을을 벗어나 산으로 이어진다. 마을길이나 산길에는 겨울의 황량함이 깊게 배어 있었다. 소나무가 은은하게 푸른빛을 자랑하고, 대나무가 빛나는 절개를 뽐내며 길을 장식해도 겨울의 황량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로지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거친 쓸쓸함은 가끔씩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게 한다. 겨울에 길을 나서면서 가슴이 설레는 것은 황량함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불주사로 올라가는 계단은 가팔랐다.
 불주사로 올라가는 계단은 가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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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걷기 좋았다. 하긴 걷기 좋은 길을 이어서 '햇빛길'을 만들었을 테니 당연하겠지. 불주사로 들어가는 돌계단은 가팔랐다. 불주사는 백제 의자왕 때 창건된 절로 전에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로 불지사(佛智寺)라고 했지만 지금은 부처님이 계신다는 의미인 불주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계단 끝에 다다라 오른쪽을 보니, 나이가 지긋한 스님 한 분이 툇마루에 나와 서 계셨다. 장갑을 벗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합장을 하고 스님께  인사를 했다. 스님은 어디로 가느냐고 선문답처럼 물었다.

"구불길을 걸으러 왔습니다."

스님은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셨다. 스님과 헤어지기 전에 다시 합장을 하고 인사를 했다. 스님 역시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하신다. 조심해서 잘 가라는 말씀도 덧붙이신다.

불주사를 벗어난 곳부터 산길이 이어졌다. 망해산을 지나 축성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산길은 늘 그렇듯이 오르막길이 이어지면 한동안 내리막길이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이 길에는 봄이 이미 온 듯 길이 폭신하다. 겨울 산길은 꽁꽁 얼어있기 일쑤인데 말이다.

 군산구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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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재게 놀렸더니 이마에 땀이 송송 솟아난다. 등줄기에도 땀이 흐른다. 전날 군포를 출발할 때만 해도 기온이 뚝 떨어져 매서운 한기 때문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는데, 날씨는 단 하루 만에 확 풀렸다. 아니, 유난히 군산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구불거리면서 산길은 이어졌다. 망해산은 이름대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툭 트인 전망은 눈만 즐겁게 하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확 풀어지게 만든다. 너른 들녘은 봄이 오면 푸른빛이 되살아나고, 여름이면 곡식이 잔뜩 들어차 익어가겠지. 생명은 그렇게 살아 움직이면서 세상을 빛나게 할 것이다.

우리가 노성당에 도착한 것은 5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예전에는 고을 수령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노성당이 지금은 경로당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어르신 한 분이 툇마루로 나와 뒷짐을 지고 건물을 살피는 우리를 지켜보셨다.

 노성당
 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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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km 남짓 되는 거리를 3시간이 채 못 되게 걸었다. 코스를 처음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걸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나, 이제는 걸을 때 그런 것에 굳이 얽매이지 않는다. 걷고 싶은 길을 걷고 싶은 만큼 걷는 것이 더 좋다.

이 날 밤, 우리는 고우당에서 잤다. 고우당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을 숙박시설로 개조한 것이다. 우리는 '겨울(冬)'에서 묵었다. 다다미방 2개와 거실이 있는 숙소였다. 숙소 이름은 겨울이었으나, 춥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늑하지도 않았다. 고우당에는 식당과 카페가 있고 정원이 있어 이곳에 숙박하지 않는 이들도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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