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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급제를 꿈꾸며 영남의 선비들은 문경새재 과거길을 걸어서 한양으로 갔다.
 장원급제를 꿈꾸며 영남의 선비들은 문경새재 과거길을 걸어서 한양으로 갔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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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날씨가 따뜻하다가 하필이면 길 떠나는 날 기온이 뚝 떨어졌다. 입춘이 지나면서 여느 해보다 봄이 빨리 오는가 싶었는데, 겨울은 떠나지 않은 채 길 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짐을 꾸리면서 두꺼운 점퍼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너무 두꺼운 옷을 가지고 가면 짐이 될 테고, 너무 얇은 옷은 내내 추위에 떨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꺼운 옷보다는 얇은 옷 여러 개가 낫다. 걷다 보면 땀이 저절로 솟아날 테고 하나씩 벗을 수 있다.

문경새재 옛길과 군산 구불길을 2박3일 동안 걸었다. 이번 도보여행은 고양시 녹지과 직원들과 함께 떠났다. <고양힐링누리길>을 만들고 가꾸는 일을 하는 김운용 과장, 안보선 팀장, 정창식·최한범 주무관이다. 이들에게 <고양힐링누리길>은 전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이다. 하긴 그런 자부심 없이 어찌 길을 만들고 가꾸고 살피겠나.

그렇더라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다른 길은 어떤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 어떤 단점이 있는지 둘러보는 것도 필요하렷다. 그래서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길을 떠난 것이다.

 문경새재 과거길은 넓어서 편하게 걷기 좋다.
 문경새재 과거길은 넓어서 편하게 걷기 좋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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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군포를 출발해 문경새재 옛길에 도착한 것은 10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문경은 경북이지만 생각보다 가깝다. 문경새재 옛길,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기억을 더듬으니 2008년 11월, 단풍이 흐드러진 길을 걸었더랬다. 붉은 단풍이 마음에 도장을 찍은 것처럼 새겨져 있다. 그 때는 문경버스터미널부터 걷기 시작해 제3관문을 거쳐 수안보까지 22km남짓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경새재 과거길 입구부터 조령산 휴양림 주차장까지 9km 남짓 걸었다. '과거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에 영남의 선비들은 한양까지 이 길을 걸어갔다고 한다. 이제는 입신양명의 꿈을 안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나는 선비들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으나 여전히 이 길을 걸으러 오는 이들은 많다.

영남대로 일부 구간이었던 문경새재 옛길은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한 길로 새도 날아서 넘기 어려워 새재라 불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이름에 얽힌 이야기는 그것만이 아니다. 지릅재와 이우리재 사이에 있는 재 즉 고개라 해서 새재라 불렸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억새가 우거진 고개라 해서 새재로 불렸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져 온다나.

 문경새재 과거길
 문경새재 과거길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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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야 험하디 험한 고개였을지 모르나 지금의 문경새재 과거길은 산책 나온 듯이 가볍게 걷기 좋은 길이다. 넓고 평평한 길이 제1관문인 주흘관부터 제3관문인 조령관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길옆으로 옛날에 선비들이 걸었다는 '옛길'이 샛길이 되어 이어지는데, 이 길 또한 걷기 수월하다.

문경새재 과거길에는 3개의 관문이 차례로 이어진다. 제1관문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 이 관문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설치되었다.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왔지만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지대인데다가 갑작스레 닥친 동장군의 위세 탓에 엄청나게 추웠다. 칼바람마저 불어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그대로 굳어버릴 것 같았다. 귀마개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썼다.

 문경새재 과거길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문경새재 과거길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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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옆으로 이어지는 계곡 물은 얼어붙었고,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을 자랑했던 나무들은 헐벗은 채로 앙상한 가지만을 드러낸 채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겨울이라는 실감이 제대로 느껴지는 날이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온통 짙은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그래서 더 추운 것 같았다.

그렇다하더라도 걷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멀리 보이는 주흘산은 눈으로 덮였고, 군데군데 잔설이 덮인 구간이 있었지만 걷는 길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태조 왕건과 정도전 등의 사극을 촬영했다는 드라마 세트장이 있지만 우리는 그냥 지나쳤다. 예전에 두어 번 들러본 적이 있었다. 드라마에서 볼 때는 제대로 된 집이었고, 마을이었지만 실제로 보면 진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다시 들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출장을 가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조령원터에 잠시 들렀다. 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은 곳에 허름한 옛 건물이 복원돼 있다.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 인수인계를 하던 교귀정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 인수인계를 하던 교귀정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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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는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 인수인계를 하던 교귀정도 있다. 1470년에 건립되었다가 1896년, 소실된 것을 100여 년이 지난 1999년에 복원했다. 이처럼 문경새재 과거길은 조선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길을 넘나들었던 이들이 남긴 시들도 남아 있다. 시비를 보고 있노라면 새재를 넘었던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들은 죄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이 길에는 조선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산불됴심' 한글비석이 있다. 국내에 딱 하나 있는 한글비석이라고 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비석을 보았다. 조선 후기에도 산불이 많이 나서 경각심을 일깨우려고 비석을 세웠구나, 생각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산불조심
 옛날이나 지금이나 산불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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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곡관을 지나니 언제 내린 눈인지 모르겠으나 눈이 쌓여 있었다. 더 높이 올라온 것이 분명했다. 기온이 뚝 떨어져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을 보니. 한동안 잦아들었던 바람이 조금씩 다시 불기 시작한다. 겨울은 매서운 바람에서 그 위세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임진왜란의 상흔이 깃든 이진터를 지났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1만8500명의 왜군을 이끌고 문경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신립 장군은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왜군을 속이려 했으나, 허수아비 위에 까마귀가 앉은 것을 보고 속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사람이었으면 까마귀가 감히 앉으려 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새들이 허수아비를 아주 우습게 아는 건 마찬가지였나 보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은 소나무에도 새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은 소나무에도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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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다시 일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수탈당한 소나무 송진의 흔적 말이다. 해방이 되고 60여 년이 흘렀건만 소나무는 깊은 상흔을 남긴 채 걷는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깊은 상처는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하다. 2000년 가을에 느꼈던 씁쓸함이 다시금 가슴을 친다.

조령관을 지나면서 먼발치에서 조령 비석을 보았다. 경상북도에서 충청북도로 넘어왔다. 이곳은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이곳에서 조령산 자연휴양림이 시작된다.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2km 남짓한 길은 얼어붙은 눈으로 덮였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수안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꿩요리.
 수안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꿩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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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이곳에서 수안보까지 내처 걸었지만 오늘은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수안보로 이동했다. 문경새재 과거길을 사람들은 가장 걷기 좋은 길로 손꼽는다지만 나는 너무 밋밋해서 걷는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더라도 한 번도 이 길을 걷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단풍이 길을 흠뻑 물들이는 가을에는 꼭 한 번 걸으라고 권하고 싶다.

문경새재 과거길을 걸을 때만 해도 짱짱한 푸른빛이었던 하늘이 어느새 잿빛으로 변했다. 깜빡 차안에서 졸다가 깼을 때, 창밖을 보니 드문드문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우리는 수안보에서 하룻밤 묵은 뒤 군산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수안보의 명물이라는 꿩요리로 늦은 점심을 먹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질 때 노곤해진 몸을 노천온천에 담갔더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힐링누리길을 만든 이들과 함께 문경새재 과거길을 걸었다.
 고양힐링누리길을 만든 이들과 함께 문경새재 과거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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