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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최근 개봉해 상영 중인 유하 감독의 '폭력 3부작' <강남 1970>. 1970년대 강남 개발 열풍이 군부의 정보부에서 시작됐고, 그러한 역사가 결국 정권과 국회의원과 같은 권력자들이 깡패들이나 부동산 업자들과 결탁해 만들어 낸 더러운 개발임을 낱낱이 폭로하는 작품이다.

거기엔 한 공무원이 등장한다. 국회의원의 명을 받아 강남 개발 계획을 기획하는 그 공무원은 전형적인 권력의 시녀이자 '개(라고 영화는 그린)'다. 정보력을 이용해 정권에 빌붙는 것은 물론이요, 그 정보로 자기 배를 불린다. 강남의 반포도 그 주요한 공간 중 하나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양파와도 같은 과거 행적을 보며, 이 <강남 1970>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YTN의 한 프로그램도 이 후보자 관련 방송을 하면서 이 영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완구 후보자를 볼 때마다 영화 속 그 공무원이 떠오르는 건 나뿐일까.

10일 오전 열린 이완구 총리 후보자 청문회는 <강남 1970>이 후일담으로 그릴 만한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1970년대의 한 청년 공무원이 60대에 여당 원내대표가 된 것도 모자라 총리 자리를 넘보고 있는,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나지 않는다"와 "부덕의 소치"와 "죄송하다"로 일관하는 참으로 뻔뻔한 청문회 장면 말이다.

'자판기' 이완구, '고장 난 자판기'라 불릴 만하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언론 외압' 등 그간 제기됐던 의혹들에 대해 사과했다. 이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다.
▲ 후끈 달아오른 이완구 청문회장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언론 외압' 등 그간 제기됐던 의혹들에 대해 사과했다. 이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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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이던 1974년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공무원이 된 이 후보자는 1977년 반포에 입성해 10여 년 동안 32평에서 46까지 아파트 평수를 늘려갔다고 한다. 그 기간은 1977년부터 1988년까지 10여 년. 이후 1990년대엔 강남의 상징이라 불렸던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입성했다. 그리고는 도곡동 타워팰리스 48평형으로 옮겨가기까지 했다.

권력과 그로부터 나오는 정보를 이용해 차곡차곡 아파트 평수를 불려가고 시세차익을 얻으며 되팔았던 공무원. 아버지가 사준 작은 아파트를 넓은 평수로 불리는 것이 서민의 낙이 아닌가라는 반문은, 또 공무원이 타워팰리스에 살면 안 되느냐는 물음은, 역으로 "나도 타워팰리스에 살고 싶다"는 역설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이 천민자본주의에서, 특히나 집을 중시하고 강남땅에 대한 투자와 집착이 높은 강남땅에 그리도 밝았던 이완구 후보자.

그의 투기 의혹은 '과거의 합법'이라며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출발부터 그릇된 가치관과 철학으로 점철돼 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 '욕망 덩어리' 국회의원 출신의 전 충남도지사를 정국의 복판에 서민복지와 증세와 감세가 자리 잡은 이 마당에 꼭 총리로 뽑아야 마땅한가.

"이번에 총리 후보자로 지명을 받고 청문회에 서기까지 부모, 형제, 자식, 처가, 사돈 등 수많은 지인들에게 본의 아니게 걱정을 끼쳐 괴로웠다."

지명 초기 즉각적인 자료 제출로 '자판기 후보자'로 불리다 최근 야당 의원들의 자료 제출 요구에는 '고장난 자판기'가 된 이완구 총리 후보자는 끝끝내 투기 의혹에 대해 '합법이라 괜찮다'고 발뺌할 셈인가.

이완구 언론관, 사과했다고 바뀔 것 같지 않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언론 외압' 등 그간 제기됐던 의혹들에 대해 사과했다. 이 후보자가 병역기피 의혹, 부동산투기 의혹 등에 관해 쏟아지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언론외압, 병역기피, 부동산투기...쏟아지는 의혹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언론 외압' 등 그간 제기됐던 의혹들에 대해 사과했다. 이 후보자가 병역기피 의혹, 부동산투기 의혹 등에 관해 쏟아지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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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들하고 다, 내가 말은 안 꺼내지만 다 관계가 있어요. 어이 이 국장, 걔 안 돼. 해 안 해? 야, 김 부장 걔 안 돼. 지가 죽는 것도 몰라요. 어떻게 죽는지도 몰라."

불과 며칠 전, 김치찌개를 앞에 두고 주요 언론사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던 그가 180도 달라졌다.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언론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서도 깊이 사죄 말씀 드린다"라고도 했다. 정말, '죄송'만 연발했다. 진위나 과거 대언론 압박에 대한 질문에도 거듭 '사과'만 했다.

청문회는 무턱대고 사과하는 자리가 아니다. 의혹에 대해 답을 하는 자리다. 일선 기자들 앞에서 데스크를 죽이네 살리네 했던 여당 원내대표 출신 총리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고개를 숙였다. 전 국민이 보는 지상파 방송 중계 앞에서만 머리를 조아리는 이 후보자의 모습, 가식 그 자체로 보일 수밖에 없다. 언론에 보도된, 녹취록 속의 당당하고 권력에 취한 목소리와 비교하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만약 이완구 후보자가 야당 소속이었다면 어땠을까. 새누리당이 극구 거부해 무산된 녹취록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국민들 개개인이 이완구 후보자의 그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었다면, 총리 낙마는 기정사실화된 것 아니었을까.

자신의 한 마디로 TV토론의 패널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은 언론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개인의 그릇된 신념과 오판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철학을 가진 이가 총리가 됐을 때, 더 큰 권력에 다가갔을 때, 우리가 세월호 참사 때 KBS가 보여줬던 실질적인 보도통제를 다시 겪어야 한다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이번 녹취록 사건으로 반성했다(고 치)고 해서, 60대 권력자의 철학이 쉬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 '어떻게 죽는지도 몰라'라는 말로 일선 기자들을 우습게 알았던 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안 그래도 이 나라는 '기레기'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이완구 청문회의 관전 포인트 세 가지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언론 외압' 등 그간 제기됐던 의혹들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본의아니게 언론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서도 깊이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며 "저의 부족한 점에 통렬히 반성한다"고 말했다.
▲ "부족함에 통렬히 반성"...고개숙인 이완구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언론 외압' 등 그간 제기됐던 의혹들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본의아니게 언론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서도 깊이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며 "저의 부족한 점에 통렬히 반성한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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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의혹도 그렇다. 이날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제기한 사실을 보면 더욱 자명하다. 풀어보면 이렇다. 병역기록표 상에서 이완구 후보자는 1971년 서울 수도육군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으며 정상적으로 받은 검사 결과에서 1급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공무원이 된 후 자기 근무 지역인 충남 홍성의 홍주국민학교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완구 후보자는 이에 대해 "부주상골로 초등학교 때 찍은 엑스레이가 있다"며 "지금도 그 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도 했다. 자, 우리가 청문회에서 들어왔던 단골 메뉴인 "기억이 나지 않는다"도 모자라 "어릴 때 병으로 지금도 아프다"는 말까지 들어야 하다니. 아니, 우리가 왜 '부주상골'이 무슨 병인지 조사를 하고 이를 헤아려야 하나.

그런 이완구 후보자는 끊임없이 '부주상골'의 아픔을 호소했다. 일부 발목뼈가 붙지 않아 다른 뼈가 하나 더 생길 수 있고, 그로 인해 평발 변형을 불러 오기도 하는 이 질병을 앓고 있다는 이 후보자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찰공무원'의 엄격한 신체검사는 거친 바 있다.

이날 오전 청문회는 이렇게 이 후보자의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과 구렁이 담 넘어 가는 듯한 변명, 그리고 새누리당 의원들의 제 편들기가 만들어낸 한 편의 코미디영화와도 같았다. 그의 정점은 물론 이완구 후보자가 찍었다.

"저와 저희 가족은 한 달에 110만 원, 연간 1200만 원 정도 사회복지재단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저의 자식에 대한 교육이고, 저 자신도 공직자였기 때문에…."

사실 이 답보다 질문이 걸작이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유니세프 5만 원" 등 이완구 후보자와 그의 아내, 장남, 차남의 기부 내역을 몇 만원 단위로 소상히 밝히며 "공직자로서의 자세"를 거론했다. 시민단체와 국제기구에 적지 않은 돈을 기부한다고 '청렴의 아이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 단체에 어제도 오늘도 자발적으로 기부하고 있는 세상의 '개미' 후원자들이 허탈해 하지 않겠는가.

이날 청문회의 관전 포인트 세 가지 중 두 개는 충족됐다. '이완구의 거짓말 쇼'와 '새누리당의 이완구 일병 구하기' 말이다. 야당이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과거 후보자들과 비교해 낙마 사유가 차고도 넘치는 이완구 후보자가 그대로 인준을 받는다면, 문재인 당대표 체제를 출범시킨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큰 타격을 입을 것 같다. 그러나 지켜보도록 하자. 청문회는 11일까지 계속되니까. 


태그:#이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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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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