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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북해도에서 잡은 청어를 런던까지 산 채로 옮기기 위해서, 어부는 청어 수조에 메기를 한 마리 넣는다. 청어는 메기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열심히 헤엄친 덕분에, 런던에 도착한 뒤에도 신선함을 잃지 않는다. 긴장감이 생활의 활력을 준다는 교훈으로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는 지극히 인간의 관점이다. 좁은 수조에서 천적인 메기에게 쫓기는 청어의 입장에서 본다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복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주장은 북해도 청어 잡이와 비슷하다. 메기를 풀어 청어의 상품성을 극대화하려는 어부와 국민이 나태해질까봐 복지의 과잉을 경계해야 된다는 여당 대표. 그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살아서 얼마의 값어치를 할 수 있느냐'인 것 같다.

이미 잘 알려졌다시피,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은 OECD 회원국 중 최고다. 노동이란 짐을 어깨에 얹고 하루하루 힘겨운 발걸음을 떼는 사람들. 김무성 대표에게 국민들이란 메기에게 쫓기는 청어처럼 밤낮없이 일해야 하는 존재들이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잔인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증세 논의 볼모로 잡힌 복지공약, 성장론에 눌린 경제민주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 생각에 잠긴 김무성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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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없는 복지'. 애초 새누리당이 먼저 꺼내 든 카드였다. 2011년 8월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시장직을 걸었던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결국 무상급식을 향한 민심을 받아들여 사퇴했다. 이후 10·26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체제로 재편한 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당명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경제 민주화와 증세 없는 복지 공약으로 이명박 정권과 차별성을 내보인 것도 새누리당이었다. 그 후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되었고, 새누리당 김무성 선대위원장은 당대표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이 부르짖었던 경제민주화는 경제성장론에 눌렸고, 복지 공약도 증세 논의의 볼모로 잡힌 꼴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고, 여당 대표를 위시한 지도부는 과잉 복지론을 꺼내들었다. 모양새가 증세냐 복지 축소냐 선택하라는 것 같다.

증세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국민들은 증세는 절대 안 된다고 고집한 적이 없었다. 아니,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의 의견은 아랑곳 없이 담뱃세 등 간접세는 무서운 추세로 인상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불었던 연말정산 논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법인세 감면액은 오히려 이명박 정권 때보다 늘어났다. 여당은 부자감세라는 이유로 국회에서 부결된 상속 증여세법 개정도 은근슬쩍 추진하려 하고 있다. 서민증세 부자감세 라는 엄연한 현실을 두고 '증세는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는 대통령과 여당의 모습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삼성 등 기업 세금은 3천억이나 깎아주면서...

복지를 볼모로 증세를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증세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조세의 형평성이다.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세수를 채우려는 꼼수가 거의 매일 발표되는 현실에서 복지를 위해선 어느 정도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김무성 대표는 이건희 손자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게 과잉 복지라고 말하기 전에, 법인세와 상속세만이라도 조세 형평에 맞게 징수되도록 해야 한다.

2013년 삼성을 위시한 10대 기업 법인세 감면액이 기업당 3191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3천억 원이 넘는 세금을 깎아 주면서 이건희 손자에게 주어지는 복지가 과잉이라니... 앞뒤가 맞는 말인지 스스로 되짚어 볼 일이다.

'증세 없이 선택적 복지' 주장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복지의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복지의 새판을 다시 짜야 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물론 허술하게 새고 있는 복지 예산이 있다면 새롭게 조정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증세에 찬성하지 않으니 복지를 축소하거나 선별 복지를 수용하라는 논리다.

김무성 대표는 과잉복지의 예로 그리스를 들었다. 국민들이 나태해지고 재정적자에 허덕이다보면 유로존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그리스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다. 그러나 그리스의 몰락은 복지의 과잉 탓이 아니다. 오히려 기득권 세력의 탈세와 양극화가 주요 원인이다. 수 천 억 원을 탕진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인들과 기업의 천문학적 규모의 탈세가 그리스 몰락을 불러왔다.

복지는 증세를 위한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선거가 있는 해에 정부가 제일 먼저 챙기는 일은 세금 징수원들을 거리에서 철수시키는 겁니다."
"정직하게 계산하면 법인세가 1500만 유로에 달했지만 그 회사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단 한 푼도 말이다."

미국의 경제 독설가 마이클 루이스가 그리스의 몰락을 진단한 저서 <부메랑>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리스 세무공무원과 대담 형식으로 서술된 글에서 복지의 과잉 탓이라는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득권들은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가 자산을 개인 재산처럼 탕진했다. 법인세 누락을 적발한 공무원을 오히려 징계를 받았다. 이는 수 천 억 손실을 입힌 자원외교에 눈감고 법인세 감면에 팔을 걷어붙인 박근혜 정부, 그리고 새누리당과 놀랄 정도로 닮았다.

장애를 가진 할어버지 무릅에 박스를 얻고 집으로 향하는 노부부, 삶이 고된해 보인다.
▲ 폐지 모으는 노인들(2014년 10월 촬영) 장애를 가진 할어버지 무릅에 박스를 얻고 집으로 향하는 노부부, 삶이 고된해 보인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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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 하면 복지 논쟁을 벌이는 정치권. 그러나 바람직한 논의는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여전히 증세 없는 복지를 강조하는 대통령, 소부담 소복지에서 중부담 중복지로 가야한다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복지의 과잉은 국민의 나태를 부른다는 새누리당 대표까지... 주장은 제각각이지만 국민들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증세 없는 복지가 아니라, 복지 없는 증세라는 볼멘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엄동설한에 폐지를 줍기 위해 유모차를 끄는 노인들, 살기 위해 밤낮없이 수조를 돌아야 하는 청어의 삶과 같다. 아침 뉴스 첫머리를 장식하는 서글픈 죽음의 행렬들은 지쳐서 힘을 잃고 메기의 먹잇감이 되는 또 다른 청어의 죽음과 닮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반값 등록금은 '가짜' 반값 등록금으로 변질되어 대학생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있다.

복지는 증세를 위한 흥정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국민들이 나태해질까봐 복지 과잉은 안 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복지 국가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 소득 2만 8000달러를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걸맞게 복지 정책도 바꿔야 한다. 그것이 진정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다. 


태그:#김무성,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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