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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가 무수히 많다.

여기서 접을 것인가, 딱 반보만 더 나갈 것인가, 그도 아니면 눈 질끈 감고 내지를 것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찰나의 굴욕만 견뎌낸다면, 피해와 후회 없이 행복으로 귀결될 일들이 무척이나 많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고개를 들어 자제력을 잃고,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녀석이 있으니, 그가 바로 '자존심'이다.

부정적 자존심, 끌어안고 살아온 40년

물론 자존심은 긍정에서 태어난 마음과 부정에서 형성된 마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 자부심, 자긍심 등의 용어와 혼용 및 혼동된다. 이는 자신을 마치 타인처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자신의 장단을 눈치껏 파악해 조절하며 드러낸다. 돌발 상황에서 자신의 위치를 직감적으로 판단함으로써, 겸손과 겸허에 가깝게 행동한다.

후자의 경우, 주로 자만심과 허세로 표현되는 감정이다. 특징적으로, 극단적인 주관성을 가지고 자신을 들여다본다. 또 자신의 단점을 망각한다. 한껏 부풀려진 장점에 의한 과대망상에 기대 허풍스럽게 행동한다. 이러한 정리는 사전이나 검색해서 나올 리 없다. 오로지, 자존심에 기대 40년 인생을 살아온 필자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이라 할 수 있겠다.

두 종류의 자존심 중에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대부분 후자, 즉 부정적 사고에 기초한 자존심이다. 직접적인 물질적 피해보다는 주변 사람의 정신적 피해를 유발해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게 만든다. 물론, 그러한 허세의 그늘 아래서 기생하는 무리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며, 오히려 그런 아첨들에 의해 부정적 자존심의 부피와 질량은 더욱 증가하기도 한다.

나 또한 반평생 동안 부정적 형태의 자존심을 자애로 착각하고, 끌어안고 살아왔다. 불혹이 되고서야 비로소 '똥'과 '된장'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번 기회를 통해, 지난날의 허세와 자만을 유형에 따라 분류하고, 파헤침으로써 속죄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독자 중 행여 무릎을 치며 격하게 공감하는 이가 있다면, 하루빨리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냉철히 파악해 필자처럼 살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다.

자존심을 '통찰'하다

필자도 1년에 몇번 먹을까 말까한 소고기를 무슨 허세로 후배들에게 내질렀을까?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무릎에 힘이 빠진다.
 필자도 1년에 몇번 먹을까 말까한 소고기를 무슨 허세로 후배들에게 내질렀을까?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무릎에 힘이 빠진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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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자존심, 즉 자만과 허세의 첫 번째 유형은 바로 '비교 우위형'이다. 고만고만한 인간 군상이 모여 있을 때, 서열상에서 본인의 입지를 좀 더 굳히기 위한 돌출적 행태이다. 예를 들자면, 동창회 등의 자리에서 술값을 굳이 자기가 내겠다고 우기는 그런 모습이다. 무리해서 긁은 카드값은 결국, 눈물의 고지서가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요즘은, 신발을 일부러 다른 방 쪽에 벗어두거나, 신발장 구석 후미진 곳에 둔다. 계산할 때가 되면 신발을 오래오래 찾는다. 신발 끈을 묶는 행위는 너무나 고전적이고, 공개된 방법이다.

두 번째 유형은 '품위 유지형'이다. 일명, '가오' 잡기. 이미 상하 관계가 오롯이 드러난 상태에서 행여 나의 부족한 밑천이 드러나 보일까 두려운 나머지 상식선 이상의 과대 친절을 베푸는 경우다. 예를 들자면, 오랜만에 찾아간 동아리 후배들에게 본인도 명절 때나 맛보는 소고기를 사주면서 부족하면 더 시키라고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다. 그럴 때 눈치 없이 4인분을 추가하던 후배 중 대부분은, 1년 안에 동아리를 떠나 가게 마련이다.

세 번째 유형은, '자기 노출형'이다. 작은 능력, 짧고도 조잡한 지식, 옅은 통찰력 등을 두루 가지고도 티 내지 못해 안달이 나는 경우로,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부족해 보이는 희생양을 만나면 놀라울 만큼 집중력이 상승한다. 예를 들자면, 잘 끼워주지 않는 직원들 간의 대화에 굳이 파고들어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것이다.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는 거야, 이건 너의 말이 앞뒤가 안 맞잖니" 존경의 눈빛은 차치하고, 자리를 뜰 때면 늘 뒤통수가 서늘하다.

원장의 원칙주의때문에 어쩔수 없이 2차,3차 끌려다니는 직원들의 영혼없는 포즈. 저들이 웃는 건 웃는 게 아니다.
▲ 영혼없는 회식 자리 원장의 원칙주의때문에 어쩔수 없이 2차,3차 끌려다니는 직원들의 영혼없는 포즈. 저들이 웃는 건 웃는 게 아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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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유형은, '완벽주의형'이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모든 걸 뒤엎는 성격. 자기 생각에는 결점이란 있을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각본대로 가야 한다. 예를 들자면, 술자리는 기본적으로 3차 정도는 가야한다. 몇 잔 홀짝거리다 끝날 거였으면, 시작을 말았어야 한다. 노래방까지 두루 거쳐 집에 기어 들어 가야만, 완벽한 술자리를 한 그런 느낌. 20년간의 완벽주의는 결국 비가 오면 위장이 쑤셔대는 지병을 남겨주었다.

다섯 번째 유형은, '가부장 고집형'이다. 이건 요즘도 잘 고쳐지지 않는 중대한 자존심이다. 아무리 동방예의지국에 살고 있다지만, 살다 보면 가족 사이에서도 지켜내야 하는 프라이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빨래는 하지만, 다림질은 하지 않겠다', '음식물 쓰레기는 버리지만, 개수구의 오물통은 비우지 않겠다', '진공청소기는 돌리지만, 무릎 꿇고 물걸레질은 절대 하지 않겠다' 뭐 이런 것들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가장의 자존심이다.

흔히들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한다고 생각한다. 빨래의 본질은 얼만큼 탈탈 털어서 가지런하게 너느냐에 있다. 그 방면에서 아내는 나의 기술을 따라올 수 없다. 물론, 절대 다림질은 하지 않는다.
▲ 빨래, 집안일의 백미 흔히들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한다고 생각한다. 빨래의 본질은 얼만큼 탈탈 털어서 가지런하게 너느냐에 있다. 그 방면에서 아내는 나의 기술을 따라올 수 없다. 물론, 절대 다림질은 하지 않는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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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는?

이상으로 내게 빈번히 나타났던 부정적 자존심의 다섯 가지 유형에 대해 분석해 보았다. 나는 내 스스로를 무던한 성격이라고 생각해왔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둥글둥글한 성격의 소유자. 하지만, 이번 분석을 계기로 다시 돌아본다. 어떤 면에서는 까칠하고,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소심한 성격에다, 쓸 데없는 고정관념을 사수하려는 고집불통의 모습까지, 이런 융합체가 바로 나란 존재였다.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는 타인의 시선 유무라고 한다. 남들은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없는데, 나를 뺀 모든 사람이 나만 바라보고 있을 거라는 거대한 착각, 여기서 어설픈 자존심이 잉태되는 것이다. 당신만 바쁜 줄 아는가? 다른 사람들도 바쁘다. 따라서 당신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남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자아 실현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책의 제목이 떠오른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절대 그럴 수 없다. 남을 의식해서 허세도 부리고 그러다 자존심도 상해보고, 그러면서 배우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불혹의 나이부터는 모든 부정적 자존심을 내려놓고 싶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마음처럼 되는가? 당장, 눈앞의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는 차마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단 말이다.


태그:#자존심, #허세와 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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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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