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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새해 첫 달이 거의 다 지났습니다. 12월 말부터 시작된 아이들의 방학으로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훌쩍 지나갔는 지도 몰랐습니다. 최근에는 코앞으로 다가온 개학에 놀라며, 시험 전날 벼락치기 공부하듯 아이의 숙제를 챙기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숙제 중 빠질 수 없는 '우리 가족 여행 신문' 또는 'OO이가 방학에 한 일' 등의 숙제를 하기 위해 사진을 보다가 아이가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다녀온 물놀이 사진 중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엄마, 할머니 언제 여기 해적 아저씨 무릎에도 올라가셨어요?"
"응? 어디 어디... 오오..."

수줍게 앉으셨습니다
▲ 수영복입은 해적 무릎위에 사뿐히 수줍게 앉으셨습니다
ⓒ dong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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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아이와 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서로 마주보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빵 터져 웃었습니다. 아니, 이 할머니가 글쎄 할아버지를 옆에 두고 외간남자 무르팍 위에 사뿐히 올라 앉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수줍게, 하지만 기분 좋게 미소 짓고 계셨습니다.

그날 이 물놀이장의 대표 포토존인 해적 아저씨 벤치를 지나다 두 분이 한 번 찍으시라고 했더니 빼지 않고 기다리는 줄에 서셨습니다. 앞서 사진을 찍은 몇 그룹의 아이들이 해적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찍고 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시던 우리 엄마, 이렇게 살포시 낯선 남자의 무릎에 앉으실줄이야... 사진 찍으려다 놀라 당황한 자식들이 옆 자리를 가리키자 웃으며 내려오셔서 옆에 계신 아버지께 예쁘게 '브이'하라며 코치하십니다.

사진을 찍는 사소한 것에서 웃음을 만들어내신 올해 칠순을 맞이하는 우리 엄마, 포토존에서 내려오셔서는 "아니, 원래 그 위에 앉는 거 아냐? 허벅지가 두툼하니 난 거기 앉으라는줄 알았지" 하시며 또 한 번 크게 웃으셨습니다. 왠지 뭔가를 해내신 것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말입니다. 사실 물놀이는 곧 개학을 맞이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준비된 것입니다.

어른들은 그저 일일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참석했습니다. 아이들도 가고, 겨울에는 물도 따뜻하다는 얘기에 할아버지, 할머니도 흔쾌히 동참하신 가족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우연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조금 커서였는지, 아이 아빠가 아이들을 맡고, 딸 셋이 고스란히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 붙어 하루종일 물놀이를 했습니다.

시골에서 사시면서 수영장에는 근처도 못 가보신지라 튜브를 가지고도 물을 무서워하시던 우리 엄마는 처음에는 튜브에 의지해 어기적 어기적 걸으셨습니다. 그러나 딸 셋이 나이가 지긋하신 엄마를 양 옆 그리고 뒤에서 보조하며 장난삼아 "마마님 나가신다~!"라고 외치고 웃으며 서너바퀴 돌자, 비로소 안심하며 두 다리를 쭉 뻗고 물에 몸을 맡기셨죠. 정말 신나 하시는 엄마를 보며 저희도 모처럼 아이들보다 더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고 돌아왔습니다. 

2015년, 우리 엄마가 드디어 칠순이 되셨습니다

예쁘게 브이~
▲ 당황하지 않고 예쁘게 브이~
ⓒ 김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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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엉뚱 발랄한 재치와 귀여움을 쏟아내고 계시는 우리 엄마는 자식들을 키우면서는 정신없이 바쁘고 그 삶이 고되서인지 살갑지 않으셨습니다. 언젠가 엄마 팔을 베고 누으려고 팔을 끌어잡아 당겼을 때 종일 일하고 저린 팔이 아파 그러셨는지 "난 살 닿는게 별로 싫어서... 팔아프다"라며 슬쩍 빼신 이후로는 내 엄마의 팔을 베고 누워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저희들은 아버지의 팔이며 다리에 하나씩 매달려 잠들고 장난치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차가움의 대명사인 엄마가 변하셨습니다. 아마 손주가 태어나고 그 녀석들이 서너 살쯤 되고부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평생 자식들 두 볼에 뽀뽀해 주지 못한 입술은 손자들의 두 볼을 찾아 뽀뽀를 날리셨고, 또 놀자고 보채는 손녀딸과 '알까기'를 하며 티격태격하시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한결 같이 유머러스한 할아버지의 넘치는 애정 표현을 따라하시기도 합니다. 손녀딸의 생일날, 아침 일찍 전화하신 후 "여보세요"란 인사말도 없이 할아버지가 먼저 "해피 버스 데이 뚜우~ 유!" 외치시며 노래를 들려주시는데, 할머니는 안 하시냐는 주문에 "그럼 난 한국말로?"하시며 생일 축하 노래를 끝까지 불러 주시기도 했습니다.

생일날 축하 노래를 할아버지의 영어 버전과 할머니 한글 버전으로 모두 들은 아이의 입은 귀에 걸렸습니다. 그 아이를 보며 '네 엄만 한 번도 못들어봤는데 넌 정말 좋겠다'라고 살짝 부러워도 해보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따뜻해지는 우리 엄마, 역시 통화 마무리는 이렇게 정리하셨습니다.

"야, 들었지? 칠순 잔치는 무슨 잔치야, 잔치대신 우리 가족 여행가는 거다. 지난번 물놀이 정말 재밌더라고. 그렇게 가자!  끊는다."

2015년, 70이란 나이에 울 엄마는 인생이 아름답다는것을 그렇게 느끼고 계십니다. 매일 신나고 좋은 일만 있는것은 아니지만, 젊은 날 지치도록 힘들었던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편안해졌고, 그래서 주변을 둘러 보고 예쁜 것, 재밌는것을 보면서 웃으실 여유가 생기신 것 같습니다.

칠순여행, 삐까뻔쩍하지 않더라도 가족들이 모여 와글와글 떠들며 신나하실테지만 적잖이 부담이 갑니다(관련기사: "나 내년에 칠순 잔치 대신 여행 갈 거다!"). 하지만, 저도 많이 기대됩니다. 과연 우리 엄마 칠순 기념 여행은 어떤 여행이 될지 말입니다.


태그:#칠순, #물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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