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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네요, 또 갔어. 아주 조용히 갔습니다."

월요일 출근길 그녀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관리 사무소 직원들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그런 나를 향해 소장이 출입문을 닫으며 말했다.

"지난 금요일에도 보았는데요?"
"어제 갔답니다. 관리비가 밀리기 시작하면 얼마 못 버티는 것 같습니다."

평소 안면이 있던 관리소장은 닫힌 출입문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녀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난 그녀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이들 중 유독 눈에 띄었던 사람

구로디지털 산업 단지 내 수많은 지식센터 건물들... 예전에는 아파트형 공장이라 불린 건물들 중 하나가 나의 일터다. 작년 봄, 오랫동안 비어있던 같은 층 사무실 한 곳이 실내 공사를 시작했다. 최소한의 공사만 하는 것으로 보아 자본이 넉넉하지 않은 회사일 거라 짐작했고 어떤 사람들이 들어오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딸애가 아빠 찾지 않아요?"
"처음엔... 지금은 괜찮아."

점심시간 승강기 앞에서 대여섯 명의 남자들과 함께 나오는 그녀를 처음 보게 되었다. 짧은 커트머리, 뿔테 안경, 화장기 없는 얼굴, 회색 작업 잠바, 마르고 작은 몸, 흘러가듯 들려오던 그녀의 머뭇거리던 목소리에서 여자여서 아는 아픔이랄까... 가슴이 짠해졌다.

'혼자서 딸을 키우고 있구나.'

그렇게 짐작했다. 그 뒤로 책상에 별도의 칸막이를 하지 않은, 출입문 쪽에 있는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오며 가며 유심히 보게 되었다.

점심시간은 의도하지 않아도 많은 정보를 알게 된다. 층층마다 사람들을 태우느라 더디게 내려오는 승강기를 기다리며 그들은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 속에서, 그녀가 후배들과 쇼핑몰 동업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장면보다는 볶음밥을 좋아하며 아침에 커피를 꼭 마셔야 정신이 들고, 사업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는 것 등을 알게 됐다.

그녀에 대한 정보가 늘어날수록 난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남자들 사이에서 여자 혼자 일을 하는 고충을 나 또한 경험하고 있었고, 다른 사무실의 젊은 아가씨들보다는 세대 차이도 덜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와의 관계는 나의 바람과는 반대로 진척이 없었다. 통로나 화장실에서 만날 때마다 인사를 먼저하고 말을 건네 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반응이 없었다.

수시로 바뀌는 사람들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는 이곳 사람들의 특징인가 싶었다. 바짝 긴장한 듯이 거리를 두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다닥 가버리곤 하는 그녀에게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몇 달을 같은 층에서 스치다 보면 낯을 심하게 가리는 사람이라도 내가 그녀에 대한 정보를 알아가듯 나에 대한 정보를 그녀 또한 알아 갈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무심함인지 사람에 대한 상처가 많아서인지 그녀는 내게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가을이 되면서 그녀의 사무실에 사람이 줄고 있는 것이 보였다. 늘 함께 승강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제각기 따로따로 움직였고 여섯 명에서 다섯, 셋... 최근엔 그녀만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의 짦은 만남 그리고 마지막

"엄마, 내가 누를게."

한 달 전 일요일 작업할 일이 있어 출근하는데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 뒤를 따라 승강기에 올라타며 소리쳤다. 잠시 후 두 손에 커피와 빵을 든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승강기 버튼을 누르고 서서 그녀가 얼른 타기를 기다리는 환하게 미소 띤 여자아이와 그녀 사이에 오가는 눈빛이 부드러워 보였다. 그녀에 대한 정보 속에 있던 딸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다시 한 번 말을 걸어볼 용기도 났다.

"따님인가 봐요?"
"아~ 네."

그녀의 짧은 대답과 출입문 쪽에 한걸음 더 바짝 다가서는 행동. 방금 전까지 모녀 사이에 흐르던 부드러움은 차갑게 경직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 회사 구경왔나보다. 아줌마도 같은 층에 회사가 있어."

나도 불편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여자아이는 아예 대답조차 하지 않고 엄마 옆에 바짝 붙어서 다 열리지도 않은 출입문을 엄마와 함께 빠르게 빠져나갔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보통의 사람들은 이렇게 여러 번 얼굴 보고 서로 말을 걸면 초반의 어색함이 차츰 줄어들었다. 가까워지면 좋지만 꼭 그렇진 않아도 오며 가며 나누는 잠깐의 이야기 속에서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는 짬은 하루를 견디는 비타민과도 같다 여겼다. 그러나 그날까지 경계의 태도를 풀지 않는 그녀를 보며 나도 더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나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람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수없이 많은 작은 회사들이 모여 있는 이곳. 저마다의 큰 꿈과 포부를 갖고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된다. 화기애애하던 초반의 분위기가 계속되는 회사 사람들을 보면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 나 또한 흐뭇하다.

그러나 그 분위기가 얼마 못가 각자 편의점으로, 구내식당으로 또는 옥상으로 따로따로 시간을 보내는 회사 사람들을 본다. 얼마 남지 않았음에 안타깝다.

지난 금요일 택배를 보내려 1층 편의점에 갔을 때 호빵과 두유 하나를 점심으로 사가지고 가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다. 내심 잘 되기를, 이겨내길 바랐다. 조용히 회사 문을 닫고 떠나버린 그녀의 다음 정착지가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어서 엄마를 해맑게 바라보던 그 여자아이의 웃음이 지켜지기를, 그녀 또한 경계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친구도 많이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태그:#구로 디지털 산업단지, #지식 산업센터,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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