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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 시의 분류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송경동 시인의 모습
▲ 송경동 시인 시의 분류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송경동 시인의 모습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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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죄송합니다"

돌아서는 시인의 뒷모습에 나는 더 미안했다. 이리 될 줄 몰랐다. 처음 시 강좌반을 개설할 때만 해도 세상은 이렇지 않았다. 지난 10월 13일 부터 11월 17일 까지 6주간 구로 근로자 복지센터에  '내 인생을 시로 노래하기' 강사분으로 송경동 시인이 초빙되었다. 시 강좌 개설을 희망했던 나는 먼저 시인의 시들을 읽어보았다. 구로동의 변해가는 현장들,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 부조리한 사회 현장을 함께 하며 그 체험이 시가 된 시인이었다. 지금도  문화예술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다.

'강좌가 힘들면 어쩌지?'

학창시절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좋아했다. 그 영향 때문인지 꽃 속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막연히 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써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어떤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시인의 시를 읽으며 편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다행이었다. 첫 시간에 시인은 지각을 했다. 살아오면서 갖게 되는 선입견은 진실하고는 거리가 있을 때가 많다.  날카로운 눈과 혀로 나의 얕은 지성을 알아보고 주눅 들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청춘에도 살아내기에 바빴다. 지금도 살아가기에 바쁘다. 핑계거리를 혼자 되뇌이고 있었다. 누가 뭐라하지도 않는데 도둑이 제발절인 꼴로 속끓이고 있다가 지각한 시인을 보자 마음이 풀어졌다. 첫 강의부터 늦어 당황하는 시인이라면  아무리 날카롭더라도 행동하지 않음에 덜 미안할것 같았다.

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시인은 지각을 했다. 탓할 수 없었다. 오히려 미안하고 더 작아졌다.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사건이 나면서 시인은  문화예술인들과 연계하여 광화문에서 노숙 투쟁 중이다. 사회 변화의 최전선에서 사는 삶은 일반적인  잣대로 바라볼 수 없다. 

"보름 만에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왔습니다"

더 더 미안했다. 가족도 보름 만에 얼굴을 보는데 우리는 일주일마다 두 시간씩 오롯이 시인을 차지했다. 광화문에선 사회의 방향을 바로잡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했고 그곳엔 시인이 필요했다.

비 내린 날이 지나면 감기에 걸려왔다. 비닐도 치지 못한 1인 텐트에서 밤을 새운 까닭이다. 20만, 100만 촛불집회가 있은 후엔 그 현장이 어떠했는지 행동하지 않은 나를 더 작아지게 했다. 시인을 찾는 전화는 계속 왔고 시인은 죄송해했다. 이런 강좌 후에 자연스럽게 갖는 뒤풀이는 다음주로 넘어갔다. 어설프게 쓴 우리의 시를 하나하나 나누다 보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술 한 잔 나누는 뒤풀이는 분위기를 살리는데 좋다.

하지만 광화문을 어찌 술잔에 비할까. 술 마실 핑계조차 미안했다.  그런 마음들이 통했는지 우린 시를 열심히 썼다. 평소 시를 즐겨 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 같은 초보자도 있었지만 시를 대하는 태도는 진지했다. 마지막 날엔 가르침을 토대로 써낸 다섯 편씩의 시를 엮어 제본도 했다. 그 기쁨을 연장할 뒤풀이는 여전히 다음을 기약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죄송한 시인은 갔다. 광화문의 바람은 더 거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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