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환, 허정무, 본프레레, 베어백, 조광래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거나 축구협회에서 공들여 영입한 외국인 감독들마저 풀어내지 못한 숙제를 슈틸리케 감독은 불과 부임 4개월 만에 풀어냈다. 1988년 이후 무려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에 진출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슈틸리케 감독, 이제 55년의 한이 맺힌 아시안컵 우승의 기회를 얻어냈다.

아시안컵은 대한민국 축구에게 애증이 서려 있는 무대이다. 한편으론 대한축구협회가 이런 애증의 관계를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1988년 아시안컵 이전까지 대한민국은 1956년, 1960년 대회 연속 우승을 포함, 1972년, 1980년, 1988년 대회에 결승에 진출하는 등 역대 최다 결승진출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만큼 아시안컵은 1980년대 대한민국 축구에게 '만만'한 무대였다.

하지만 너무 얕본 탓일까. 1990년대 들어 처음 개최된 1992년 일본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은 실업 선발팀을 내밀었다가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망신을 당한다. 공교롭게도 1992년 아시안컵에서 늘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일본이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컵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1992년 아시안컵 이후 일본 축구는 무섭게 성장했고, 1993년 출범된 J리그의 폭발적인 인기는 단숨에 대한민국의 K리그를 압도하는 수준에 다다르게 된다. 1992년 이후 일본 축구는 대한민국 축구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었다. 일본과의 팽팽한 라이벌 관계가 1992년 아시안컵을 기점으로 형성된 것이다.

4년 뒤 대한민국은 당시 K리그에서 최강팀 일화를 이끌던 박종환 감독을 내세워 명예회복을 벼른다. 그러나 주축 선수들의 태업설이 불거지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대한민국은 8강에서 이란에게 지금도 회자되는 2-6의 치욕적인 완패를 당한다. 2000년 대회에서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은 대회 내내 경기력 논란에 시달리면서 꾸역꾸역 4강까지 올랐지만 사우디 아라비아에 시종일관 밀리다가 1-2로 패하면서 대회를 마감한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통해 의기양양해진 대한민국 대표팀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나이지리아 대표팀의 깜짝 우승을 일궈낸 조 본프레레 감독을 앞세워 2004년 아시안컵 우승을 노렸다. 그러나 8강에서 또다시 이란에게 무려 4골이나 내주면서 3-4로 패하는 예상치도 못한 조기 탈락의 결과를 받아들게 된다.

2007년 동남아시아 4개국에서 펼쳐진 아시안컵에서 2002년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던 핌 베어백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팀은 8강에서 숙적 이란을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고, 결승 진출의 희망을 안게 된다. 그러나 4강에서 다소 가볍게 여겼던 이라크에 시종일관 고전하다 승부차기에서 3-4로 패하고 또다시 4강에 머무른다.

비록 대회를 3위로 마감했지만 당시 대표팀은 8강부터 3,4위전까지 단 한 골도 넣지 못하는 유례없는 빈공에 시달린다. 그리고 대회가 끝난 직후 이동국, 이운재, 김상식 등 주축 고참 선수들의 무단 외출 및 음주 파문이 알려지면서 대표팀의 아시안컵에 임하는 자세가 얼마나 안일했는지 만천하에 드러낸다.

2011년 재야의 명장으로 꼽히던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대한민국은 2000년대 출전 역사상 가장 최상의 전력으로 대회를 맞이한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대표팀을 지키던 두 기둥 박지성과 이영표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으로 출전한 대회라 그 어느 때보다 우승에 대한 의욕이 넘쳐났고 대표팀은 그 의지에 걸맞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8강에서 이란, 4강에서 일본을 만나는 힘겨운 대진이 발목을 잡았다. 자케로니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몰라보게 탄탄해진 일본과 맞붙어 연장접전을 치른 끝에 아쉽게 승부차기에서 물러나면서 대한민국의 아시안컵 정복의 꿈은 또다시 멈추게 된다.

2011년 아시안컵 준결승 이후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국판 티키타카를 꿈꾸던 조광래 감독의 야심은 박지성, 이영표의 공백에 따른 일시적 부침현상과 협회와의 갈등 앞에 좌초하게 되고, 이후 대한민국은 브라질 월드컵 예선을 극도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치르고 경기력이 점점 퇴보하는 암흑기를 겪는다. 반면 일본은 자케로니 감독의 지휘 하에 몰라보게 경기력이 향상되며 일명 '스시타카'로 불리우는 정교한 축구의 폼을 다져나간다.

2015 아시안컵을 앞두고 대한민국 대표팀을 향한 시선은 기대보다는 마음을 비우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브라질 월드컵의 참담한 좌절 이후 망가질대로 망가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은 지 불과 4개월 밖에 되지 않은 슈틸리케 감독에게 아시안컵 성적에 대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월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4개월의 시간 동안 그 누구보다 의욕적이고 실리 넘치는 행보를 보였다. 해외파 선수들 뿐만 아니라 국내의 K리그부터 대학리그까지 모든 경기장을 돌며 숨겨진 원석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원석 찾기에 나선 슈틸리케 감독의 깜짝 카드는 다름 아닌 상주 상무의 스트라이커 이정협이었다. 이정협의 발탁 당시 모두가 놀랬고, 소속팀에서도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이정협에 대해 과연 제대로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뒤따랐다. 그러나 대회 결승을 앞둔 지금 이정협 카드는 슈틸리케 감독의 '신의 한 수'로 입증되었다. 이동국, 김신욱 대표 스트라이커들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브라질 월드컵 때부터 기량이 퇴보되는 모습만 보이는 박주영이 없는 스트라이커 자리의 고민을 이정협은 불과 1개월 사이에 결정적인 순간 영양가 만점의 골로서 말끔히 해결해주었다.

아직 현역 군인인 이정협을 두고 '군데렐라', '한국의 게르트 뮬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고 있다. 이정협의 발굴은 이번 아시안컵 최고의 수확이라 할 수 있다. 브라질 월드컵 당시 박주영의 개인치료를 위해 국가대표팀 훈련장을 사실상 전면 임대해주는 사상 유례가 없는 특혜를 제공한 홍명보 감독의 행보와는 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슈틸리케 감독도 박주영을 테스트하였다. 대신 모든 선수와 똑같은 조건 하에서 박주영의 기량을 점검했다. 그리고 현재 기량으로는 대표팀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냉철하게 그를 전력에서 배제하였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당시 박주영에 대한 특혜 및 대표팀 선발은 팬들이 홍명보 감독에게서 결정적으로 신뢰를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그 어느 월드컵 때보다 출정을 앞둔 대표팀에게 기대보다는 조롱과 비난이 끊이지 않았던 대회는 아마도 브라질 대회가 처음일 것이다. 결국 민심이 상당 부분 떠난 상황에서 월드컵을 맞이한 대표팀은 역대 월드컵 사상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대회를 마감하였다.

그러나 이번 아시안컵을 앞두고서 슈틸리케 감독이 보여준 냉철하고 명분있는 행보에 팬들은 모처럼 접하는 리더십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쿠웨이트 전은 오히려 대표팀을 심기일전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여론의 비난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계획대로 대표팀을 꾸려갔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개최국 호주와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이정협의 깜짝 골로 승리를 거두는 성과를 얻는다. 단순한 승리를 넘어 이번 아시안컵의 개최국에 대한 대진일정 프리미엄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일석이조의 성과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기성용, 박주호, 김진수 등을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 매 경기 선발 라인업을 다르게 가져가면서 대회를 치를수록 선수층을 두텁게 다지는 효과를 거두었다. 예선 내내 거의 변함없는 라인업으로 일관하다가 UAE와의 8강전에서 주전들의 급격한 체력저하를 겪으면서 결국 충격의 패배를 맛본 일본과는 대조되는 행보였다.

이청용, 구자철 등 공격의 핵심전력이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끈끈한 수비 조직력에 기반을 둔 슈틸리케형 늪축구는 시간을 거듭할수록 상대방을 점점 더 깊은 늪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이번 대회의 성과의 이면에는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비로소 제 기능을 다한 기술위원회에도 큰 공이 있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의 4강 신화를 함께 일구어낸 이용수 기술위원장 시대 이후 대한민국 축구의 기술위원회는 이영무, 김진국, 이회택, 황보관 등 소위 축구계의 오랜 고참 아니면 그 오랜 고참과 인맥이 닿은 인사들이 맡아왔다. 그러나 기술위원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했고 전력 분석은 커녕 오히려 감독들의 운영에 간섭하는 계륵같은 존재가 되거나 아예 아무런 기능도 못하는 뇌사상태에 직면해 있었다.

결국 대한축구협회는 2002년 월드컵의 성과를 일군 이용수 당시 KBS 해설위원을 12년 만에 기술위원장으로 복귀시켰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명확한 감독선발 가이드라인으로 묵묵히 후임감독 물색에 나섰다. 예상보다 감독 후보군이 좁아짐을 인식한 기술위원회는 좀 더 조건을 완화한 끝에 독일 출신의 슈틸리케 감독을 영입하였다. 비록 A매치 성과는 부족했지만 독일에서 유소년부터 성인대표팀까지 두루 거친 풍부한 경험과 무엇보다도 한국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슈틸리케를 영입한 주요 포인트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감독에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원석찾아 삼만리 행보에 나섰고, 치밀한 선수파악 작업 끝에 이번 대회에서 이정협을 비롯 김진현, 차두리, 김진수, 박주호 등 지난 월드컵에서 주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선수들이 팀 전력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임시 감독으로 평가전을 치르면서 단기간에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대한민국 축구의 잠재력을 일깨워준 신태용 수석코치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처럼 슈틸리케 감독 밑에서 탄탄하게 지도자 수업을 쌓는다면 국내 지도자 중에서 단연 유력한 대표팀 감독 후보가 될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차두리, 곽태휘 등 노장 선수들은 대회 내내 침체에 빠질 수도 있을 뻔한 팀 분위기를 바로 잡아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국내감독이었다면 대표팀 주장은 구자철이나 이청용 등 주로 주장역할을 해왔던 선수들이나 차두리나 곽태휘 같은 노장 선수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기성용에게 주장완장을 채우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고, 주장완장을 찬 기성용은 몰라보게 성숙해진 리더십을 발휘하며 대표팀의 핵심으로 거듭났다. 또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절묘한 킬패스는 이제 그만의 전매특허가 되었다. 박지성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은 기성용이라는 새로운 리더를 발견하게 되었다.

브라질 월드컵 당시 가장 취약 포지션이었던 골키퍼에 대한 근심은 이번 대회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오히려 신들린 선방에 감탄사만 연발하게 된다. 김진현은 이번 대회를 통해 대표팀의 확실한 주전 골키퍼로 자리하였다. 무릎연골이 없는 신체적인 결함을 극복하고 김진현은 놀라운 감각으로 숱한 위기를 극복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무실점 행진에 일등공신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환골탈태한 기술위원회의 지원, 그리고 제대로 된 지도자의 선발과 리더십을 통해 대한민국 축구는 브라질 월드컵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아직 결승이 남았지만 지금까지 이번 대회에서 이룬 성과만으로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안주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마지막 결승무대는 부담을 터고 홀가분하게 그동안 해왔던 플레이를 마음껏 선수들이 펼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즐기는 자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 결승전 무대를 즐긴다면 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은 결코 머나먼 꿈이 아닐 것이다.

영화 <명량>에서 기적같은 승리를 일궈낸 이순신 장군이 그의 아들에게 승리의 결정적인 비결로 작용한 조류의 흐름을 어떻게 예측했냐는 질문에 '천행이니라'고 답을 건네는 장면이 있다. 난파 직전의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은 지 4개월 만에 소신있는 행보와 뚜렷한 철학으로 팬들의 '천행'을 등에 업은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은 앞으로도 계속 현재 진행형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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