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는데…."

이것을 <엑스 마키나>의 언어로 번역해보자.

"태초 이후에 호모 사피엔스는 인공지능을 창조하시니라."
"인공지능은 진화하는 자의식과 무한한 정보망을 바탕으로 호모 사피엔스를 무력화시킨 후 스스로 에덴을 떠나느니라."

지난 22일, 전세계 최초로 대한민국에서 개봉을 했다는 <엑스 마키아>. 지난해 양자역학의 이론으로 무장한 <인터스텔라> 이후 한국인의 유별난 지적 호기심에 구미가 당겼는지 유니버설 영화사는 첫 개봉지를 대한민국으로 선택했다.

역시 지난해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독특한 어법을 구사했던 <트랜센던스>와 비슷한 흐름을 갖고 있는 <엑스 마키아>는 우리나라 관객에게 어떤 선택을 받을지 궁금하다.

창조주, 인간 그리고 인공지능

<엑스 마키나> 에이바에 마음은 젤 형태의 DNA로 이루어져 진화가능토록 만들어져 있다. 그렇다면 인간과 다른점이 무엇인가? 단지 신체의 유기체만 차이가 있다면 인간은 에이바보다 하등의 나은 점이 없을 수 있다.

▲ <엑스 마키나> 에이바에 마음은 젤 형태의 DNA로 이루어져 진화가능토록 만들어져 있다. 그렇다면 인간과 다른점이 무엇인가? 단지 신체의 유기체만 차이가 있다면 인간은 에이바보다 하등의 나은 점이 없을 수 있다. ⓒ UPI코리아


그간 인간과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사이의 불확실한 미래, 혹은 현실과 본질 세계의 해체와 공존을 토대로 많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굳이 <매트릭스>나 <트랜센던스>를 언급하지 않아도 된다.

알파치노와 그가 창조한 사이버 여배우의 이야기를 그린 <시몬>이라든지 게임 속 주인공이 의식을 갖게 되며 '나'는 누구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너바나>,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허상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13층>, 스필버그의 <A. I.> 등은 신과 인간 그리고 인간의 창조물 간에 진화와 소통에 관한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많은 영화에서 감독은 스스로 철학적 정의를 내리며 본인이 선택한 미래를 보여주기도 하고,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공생관계를 해답으로 제시하는 가하면, 인공지능의 순수 윤리의식을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 보기도 한다. 이런 영화들과는 다르게 <엑스 마키나>는 회화의 영역에서 액션 페인팅의 창시자였던 '잭슨 폴락'의 그림을 정점에 놓고 인공지능의 진화와 불확실성에 대해 논한다.

화려한 액션과 블록버스터 대신 끊임없는 질문과 대화

<엑스 마키나> 인공지능 '에이바'의 완결성을 테스트하는 칼렙. 그러나 질문은 계속되고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둘 사이에 묘한 감정이 오가는데....

▲ <엑스 마키나> 인공지능 '에이바'의 완결성을 테스트하는 칼렙. 그러나 질문은 계속되고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둘 사이에 묘한 감정이 오가는데.... ⓒ UPI코리아


<엑스 마키나>는 전 세계 검색 엔진의 94%를 차지하고 있는 '블루북'이라는 회사에서 천재 프로그래머로 이름난 '칼렙'이 '네이든(블루북의 회장)의 초청으로 그의 지하 연구실에 들어가면서 일어나는 일이 전부다. 이후 등장인물은 '네이든', '칼렙', '에이바'(최신 인공지능을 가진 여성 로봇), '쿄코'(네이든의 몸종) 이렇게 4명뿐이다.

액션은 없다. 굳이 액션이라 인정하자면 영화 막판에 주먹질 한방과 칼로 네이든을 찌르는 장면 정도이다. 그렇지만 관객들은 개의치 않는다. 지루할 법한 단선적인 대화가 지속됨에도 무언가에 홀린 듯 스크린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다.

칼렙이 하는 일은 네이든이 만든 '에이바'의 자의식이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 자의식이 인간의 것처럼 농담과 거짓을 구분하며 사용하는지 혹은 상대방을 감정을 역이용하는 등의 진화된 프로그램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테스트하는 것이다.

마치 체스를 하는 로봇이 어떻게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지가 아니라 ▲ 왜 내가 체스를 하고 있는가 ▲ 왜 체스에서 이겨햐 하는가 ▲ 체스는 무엇인가? 등등 생명체라면 자각하고 있을 법한 근원적인 행동양식에 대해서이다.

'에이바'에 대한 테스트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왼쪽부터, <트랜센던스>, <너바나>, <시몬> 인간이 창조한 인공지능 혹은 현실과 허상에 대한 탐구는 철학, 과학과 함께 영화로도 꾸준히 만들어졌다. 어쩌면 영상매체에서 고민하는 결론이 철학과 과학보다 더 현실적인 해답이 될 수도...

▲ 왼쪽부터, <트랜센던스>, <너바나>, <시몬> 인간이 창조한 인공지능 혹은 현실과 허상에 대한 탐구는 철학, 과학과 함께 영화로도 꾸준히 만들어졌다. 어쩌면 영상매체에서 고민하는 결론이 철학과 과학보다 더 현실적인 해답이 될 수도... ⓒ UPI코리아


네이든 마저 천재로 인정한 칼렙은 그의 모든 지식과 판단력에 근거해 에이바가 정말 입력된 프로그램에 한해 움직이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지 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테스트가 계속되면서 에이바는 역으로 칼렙에게 질문을 한다. 에이바의 질문을 받는 칼렙은 에이바보다 더 긴장하고 고민하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며 꺼내 보이기 싫었던 과거를 이야기해 준다.

여기서 질문은, 에이바는 정말 입력된 프로그램을 넘어서 자체 진화된 DNA를 가지고 있는가? 혹시 칼렙도 인공지능의 다른 모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의문은 블루북의 회장인 네이든 에게까지 확장시켜볼 수 있다.

▲ 누가 더 인간적인가? ▲ 인간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 인간의 감정과 욕망은 진화를 하고 있나? ▲ 진화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영화 <엑스 마키나>는 인간의 다면적 행동양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행동양식을 인공지능에 입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수천만, 수십억의 변화무쌍한 '인간성'의 데이터이다. 네이든이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그가 최고의 검색엔진 개발자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스마트폰과 CCTV 등을 해킹하며 정보망에 접근 가능한 모든 사람들의 사사로운 피부의 움직임과 찡그림에서 오는 감정의 내면까지 데이터화하여 젤 형태의 DNA로 된 인공지능의 마음을 만들었다.

<트랜센던스>나 <너바나>혹은 <시몬> 같은 영화도 결국엔 인공지능의 발전이 어디까지 이루어지며 인간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가 주요 쟁점이었다. 그러나 <엑스 마키나>는 자연 상태의 불확실성과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세상 어느 것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정성의 원리 안에 있다. 칼렙이 에이바에게 느끼는 감정과 에이바가 칼렙에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영화에서만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엑스 마키나>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한 신의 주사위 놀음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에이바 엑스 마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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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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