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첫 방영한 tvN <삼시세끼-어촌편>에 출연한 유해진과 차승원

지난 23일 첫 방영한 tvN <삼시세끼-어촌편>에 출연한 유해진과 차승원 ⓒ CJ E&M


지난 16일 방송될 예정이었던 tvN <삼시세끼-어촌 편>은 장근석 소속사의 탈세와 관련된 구설수로 한 주 미뤄졌다. 과연 애초에 홍보를 해왔듯이 차승원과 유해진, 장근석의 어촌 편이 단 한 주만에 물의를 일으켜 스스로 물러난 장근석을 드러내고 얼마나 완결성 있는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에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1박2일>에서부터 tvN으로 이적한 후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삼시세끼>까지 트렌드를 만들어가며 승승장구하던 나영석 PD의 위기가 지레 점쳐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23일 첫 방송 된 <삼시세끼-어촌 편>은 과연 이 프로그램에 장근석이 합류했었는가를 기억하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심지어 앞서 방영되었던 이서진, 옥택연의 <삼시세끼-정선 편>과는 또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삼시세끼>를 빚어냄으로써 나영석의 위기가 아니라 능력자 나영석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시간이 되었다.

<1박2일>이 융성하자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이 연예인들을 산과 들로 데리고 다니며 미션을 주는 프로그램을 시도했으나 <1박2일> 외에 그 어떤 프로그램도 생존하지 못했다. <꽃보다> 시리즈가 트렌드가 되자 이번에는 연예인들을 데리고 전 세계로 떠나는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역시나 그 중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 <삼시세끼>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생활을 예능화하자 또 여기저기서 배우 출신의 연예인을 시골 마을로 끌어들이지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후속 주자의 불운을 탓하기에 앞서 다른 프로그램과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지난 23일 첫 방영한 tvN <삼시세끼-어촌편>에 출연한 유해진

지난 23일 첫 방영한 tvN <삼시세끼-어촌편>에 출연한 유해진 ⓒ CJ E&M


나영석 PD가 만든, 아니 정확하게는 나영석 PD 사단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나영석 PD, 이우정 작가, 그리고 <꽃보다 청춘>에 이어 <삼시세끼-어촌 편>을 함께 하는 신효정 PD 등 나영석 PD와 함께 하는 일군의 무리를 나영석 사단이라 지칭한다면, 이들의 특징은 패러다임을 새롭게 창출해 낸다는 데 있다.

<1박2일>을 통해 야생 버라이어티의 새 장을 열었다면, 예능 프로그램에 할배와 누나, 그리고 중년들을 초빙함으로써 전 세대가 공유하는 예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꽃보다> 시리즈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서진을 활용해 <꽃보다 할배> 시리즈의 스핀 오프처럼 시작된 <삼시세끼>로 슬로우 라이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능의 트렌드로 만들어 냈다.

하지만 나영석 PD의 예능이 늘상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전작들이 다음 작품에서 버전 업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1박2일>은 야생의 조건에서 강고한 미션을 주어, 리얼리티의 극한을 밀어붙였다. 까나리 액젓까지 시음하는 열악한 조건에서 멤버 각자의 성격에 따라 캐릭터가 부여되었고, 그 캐릭터들의 이합집산이 <1박2일>을 전국민적 예능으로 끌어올린 강력한 견인차가 되었다.

이렇게 야생이라는 조건과 거기에 주어지는 미션이라는 성격은 <삼시세끼>까지 이어지지만, 그 강도와 조건은 달라졌다. 극한의 조건, 강력한 미션이라는 상황은 둔화되고, 오히려 그 속에서 이서진, 옥택연이라는 인물의 정서와 캐릭터가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1박2일> 때도 그저 다섯 사내가 잠자리와 먹거리에 목숨을 걸듯이 게임하는 그 과정을 보기 위해 매주 채널을 고정했다면, 그것이 <삼시세끼>에 와서는 오히려 이서진이라는 인물의 매력에 좀 더 방점을 찍는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정선 시골 마을이라는 조건도, 텃밭에서 나는 먹거리와 정선에서 장을 봐온 것들만으로 세 끼를 해먹는다는 미션들이 온전히 "그딴 걸 왜 해?"하면서 도시의 삶을 칭송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기왕에 하는 거 꼼꼼하게 해내고야 마는 이서진이라는 인물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되었다.

슬로우 라이프는 이미 나영석 PD가 KBS를 나오기 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도한 <인간의 조건>에서 선을 보인 것들이다. 나영석 PD가 사라진 <인간의 조건>이 인간적 삶을 위한 다양한 미션들로 진화한 반면, tvN으로 온 나영석 PD는 정해진 공간과 미션에서 인물이 살아 숨 쉬는 느긋한 삶의 조건을 프로그램으로 재연해 냈다. '미션'이라는 이름의 흉내가 아니라 안착한 공간에서 자연에 스며들어 가는 도시인의 모습에서, 삭막한 도시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그저 그들이 밥해 먹는 것만 봐도 마음이 편해지는 묘한 경지를 맛보게 한 것이다. 또한 이미 그 단초는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바쁜 삶을 평생 이어오던 할배들의 노년의 선물과도 같던 여행, 누나들의 휴식과도 같은 여행, 그리고 1990년대의 전성기를 보냈던 뮤지션들의 변함없는 열정을 확인했던 여행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삼시세끼-어촌 편>은 어떻게 버전 업이 되었을까? <삼시세끼-어촌 편>은 차승원, 유해진, 장근석의 만재도 생활을 다룬 것이었다. 나영석 PD가 이들 세 사람과 함께 만들고자 했던 <삼시세끼-어촌 편>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지만 차승원, 유해진의 <삼시세끼-어촌 편>을 보면 도무지 세 사람의 그림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차승원, 유해진의 호흡이 너무도 완벽하게 <삼시세끼-어촌 편>의 그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첫 방영한 tvN <삼시세끼-어촌편>에 출연한 차승원

지난 23일 첫 방영한 tvN <삼시세끼-어촌편>에 출연한 차승원 ⓒ CJ E&M


8년 전, 영화 <이장과 군수>에서 시골 마을 두 친구의 걸쭉한 삶을 재연했던 두 사람은 손발이 척척 맞는 호흡을 선보인다. 종종 장근석의 뒤통수와 다리 한 짝이 등장해도 시청자들은 그런 모습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 때론 차승원이 아내가 되고, 유해진이 남편이 되고, 또 때론 그 반대가 되기도 하며, 그저 오래된 중년의 두 친구의 그림 속에 또 다른 사람의 여지가 쉽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저 정선의 시골 마을에서 만재도라는 어촌으로 옮긴 상황만 변화된 것이 아니다. 차승원과 유해진이라는 인물이 빚어내는 상황이 단적으로 <삼시세끼>를 <삼시두끼>로 변화시키듯, <삼시 세끼>와는 전혀 다른 맛의 프로그램을 창출해낸다. 정선에서 매사에 툴툴거리면서도 곧이곧대로 제작진이 시키는 삼시 세끼를 만들어냈던 이서진, 옥택연과 달리 온전히 풍광 좋은 만재도에 와서 하루 종일 통발을 살피고, 땔감으로 불을 피우고,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단조로운(?) 삶에 반기를 들고, 차승원과 유해진은 삼시 두 끼만 먹을 것을 결정한다. 예전 <1박2일> 같았으면 어림없을 결정이 <삼시세끼>에선 가능해 진 것이다. 마치 일정을 마친 최지우가 이순재 일행과 하루를 더 보내게 되듯이 말이다. 사람 사는 생활에서 가능한 일탈과 해프닝이 자연스레 프로그램의 일부로 승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해진은 아침 일찍 일어나 땔감을 쪼개 불을 피우는 대신 귤로 아침을 때우고, 만재도 산의 바람을 맞고, 차승원은 늦잠을 즐긴다.

시청률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귀여운 강아지의 지분은 여전하지만, 세프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기에 조미료를 피할 수 없다는 차승원식의 요리가 스리슬쩍 눈 깜짝할 사이에 등장하고,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 집착하지만 차승원의 급한 성격에는 꼬리를 내려주는 유해진의 넉넉함이 그저 어촌이라는 환경의 차이를 넘어 새로운 버전의 <삼시세끼>를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위기를 그저 솎아내기가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라볼 줄 아는 나영석 사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이렇게 끊임없이 버전 업되는 나영석 PD의 예능. 그럼에도 그의 프로그램에 일관된 맛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 사는 맛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든 저렇든 나영석 PD 사단이 만든 프로그램을 보면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 풍긴다. 그래서 야생 버라이어티가 되었든, 할배들의 여행이 되었든 시골 마을의 슬로우 라이프가 되었든 인지상정으로 자꾸 마음이 끌리게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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