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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인 9%를 기록했다. 일자리의 질도 나빠져 단기 계약직으로 취직한 청년이 2008년 11.2%에서 단 6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심각한 한국의 현실에서 이같은 통계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원론적으로 보면 구인난이 발생할 경우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동해 임금과 처우가 나아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중소기업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고 대학교까지 마친 청년들은 눈을 아래로 돌리지 않는다. 구직자의 입장에선 당장 열악한 일자리를 얻는 것보다 조금 더 준비해서 더 나은 기회를 노리는 게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이는 경제학적으로 볼 때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 해당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가는데 구직자들은 좁은 문을 향해 몰려든다. 자연히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눈을 낮추자니 '삼포세대', 나아가 '삶포세대'가 남의 일이 아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수혜를 보는 업종도 생겨난다. 취업을 위한 사교육시장과 취업 관련 출판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맞이했다.

취업의 문턱이 높아지고 낙오자가 많아질수록 나만의 무기를 마련해 좁은 문을 통과하려는 욕구 역시 커지는 법이니 말이다. '3년 취준생이 쓴 3일 만의 합격 노하우'라는 자극적 부제를 달고 평단문화사에서 출판된 <취업 비밀 노트> 역시 이런 요구에 응답하는 책 가운데 하나다.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하면 정말 괜찮아질까?

책의 저자인 박인영씨는 중앙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우체국금융개발원에 근무하는 1년차 직장인이다. 저자는 대학 졸업 후 3년 동안 100여 개의 자기소개서를 쓰고도 수없이 탈락했던 자신의 경험을 녹여 이 책을 출판했다.

기획의도는 새로이 취업시장에 진입하는 취업준비생에게 노하우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책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침서인 것이다. 책에는 호감을 주는 증명사진을 찍는 법부터 기업의 정보를 모으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팁과 관련한 실용적인 지침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취업을 위한 여러 관문, 그러니까 자기소개서(아래 자소서), 인적성, 면접 등이 마치 입시와도 같이 거대한 장벽처럼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각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과 마음가짐 등을 알려주고 있는데 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입사시험을 잘 통과하기 위한 팁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취업을 위해 나를 효과적으로 알리고 포장해 취업 관문을 통과하는데 최적화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취업에 대비하는 시간이란 나를 잘 포장해서 입사시험을 통과하게 하기 위한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현실이다. 취업을 위한 경쟁은 필연적이고 구직자라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근거없는 자신감을 버리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우울감을 이겨내야 하며 취업에 관련한 정보를 선별해 모으고 높은 연봉만을 바라봐선 안 된다고.

동시에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획득해야 하며 생산적인 스터디를 해야 하고 자소서를 통해 어떻게 자신을 어필해야 하는지 연구해야 한다고. 뿐만 아니다. 인적성 시험의 준비를 철저히 해야하고 모의면접 연습을 통해 자신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임을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좋은 인상의 사진을 준비하고 시간을 쪼개 각종 공모전에 응모하며 기업에 대한 애정을 갖는 것은 덤이다. 맞다. 그렇게 해야만 취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편으론 다른 생각도 든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이며 우리가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일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제 몫을 하기 위해, 취업을 하고 일을 하기 위해, 사회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내야 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일일까?

저자가 그러했듯 십수만 원을 들여 논술 강의를 듣고 대학에선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토익과 각종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을 더욱 매력적으로 알릴 수 있는 자소서와 면접기술을 익히고... 그렇게 회사원이 되면 우리는 꿈을 이루는 것일까? 3년 취준생이던 저자는 취업에 성공한 뒤 '3일 만에 합격하는 노하우'라는 부제를 단 <취업 비밀 노트>를 출간했다. 그리고는 독자들에게 무너지지 않고 더욱 노력할 것을 권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째서 취업을 위해 이토록 힘들게 준비해야 하는 걸까? 어째서 회사에 입사하는 것 자체가 나의 열망이 되는 것인가?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취업을 위한 노하우집을 읽고 있다기 보다는 작금의 한국사회를 블랙코미디적으로 짚어낸 작품을 읽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좁은 문을 통과하면 옛 일은 잊기 쉽다

저자는 책 초반부에 한 보험회사에서 6개월간 근무했던 경험을 적고 있다. 처음 저자는 자신이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반적인 인턴이 아니라 보험설계사가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최근 몇몇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는 한국의 보험회사들이 인턴제도를 악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턴 형식으로 직원을 채용한 뒤 지인들에게 보험상품의 영업을 시키고 실적이 나쁘면 퇴사 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금융지식을 얻었으며 인턴경험으로 이후의 서류합격률이 올라갔으므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다시 인턴을 하겠다고 적고 있다. 물론 처음엔 보험설계사의 역할을 하는 인턴십이며 정직원 채용 기회도 막혀있다는 걸 몰랐지만 말이다. 더불어 자신의 다음 기수 가운데 한 명이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언급하며 자살의 이유가 영업압박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쉬운 점은 이뿐이 아니다. 저자는 진실함이 우러나는 자기소개서를 쓰라고 충고하지만 후반부 자신의 합격 자기소개서를 보면 이와 상충하는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운회사에 지원하며 경제를 전공했지만 금융보다는 홍보가 내가 가장 열의를 갖고 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다. 자기소개서가 자소설이라 불리고 사실을 적기보다 나를 적극적으로 포장하는 것이 이 시대 취업자로서의 기본이라고는 하지만 한 권의 책에서 모순되는 내용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도 컸다.

일해 본 적 없는 기업이지만 사랑하라

더불어 저자는 입사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 진심으로 회사를 원할 것을 권장한다. 그는 낮은 스펙에도 H타이어만을 바라보며 열성을 보이고 마침내 합격한 한 선배의 사례를 들며 구직자가 진심으로 회사를 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의문이 든다. 입사도 하기 전부터 진심으로 특정 회사를 원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저자만 하더라도 도대체 몇 개 분야 몇 개 기업을 사랑하고 입사 열망을 가졌던가 말이다.

사람 사이의 사랑과 애정도 일방적인 것이 아닐 것인데 하물며 기업은 어떻겠는가. 일에 대한 의욕을 보이는 것과 특정 기업에 애정을 갖는 것은 명백히 다른 문제인데 취업을 위해서는 쉽게 많은 회사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쯤되면 시대가 구직자들에게 인스턴트 애정을 강요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저자는 3년을 헤매다 준공기업에 입사한 나름의 성공기를 써내며 취업준비생으로 지낸 3년이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을 수 있었던 보석같은 인생경험이라 말한다. 하지만 과연 보장된 미래가 없는 다수의 청년실업자들에게 이 말이 얼마나 멀게 느껴질 것인가를 생각하면 씁쓸한 뒷맛을 감추기 어렵다.

저자의 표현대로 책이 적고 있는 과제들을 달콤함을 위해 쓴 맛을 먼저 보는 것 뿐이라 믿는 건 구직자들로 하여금 낙오되지 않고 견뎌내는데 정서적인 지지대가 되어줄 것이다. 더불어 수많은 취업지침서와 다른점이 없는 이 책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용할 것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저자의 조언 가운데서도 당장의 취업을 넘어 삶 전체를 보고 직업을 선택하라는 등 의미있는 내용이 있으므로 이 책 전체를 편협하고 기회주의적이며 반성찰적이라고 싸잡아 비하하는 건 옳지 못한 태도일 것이다.

나는 다만 이 책으로부터 너무도 안타까운 한국의 현실을 읽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취업 비밀 노트>(박인영 지음 / 평단문화사 펴냄 / 2014.12. / 1만 2000원)



취업 비밀 노트 - 3년 취준생이 쓴 3일 만의 합격 노하우

박인영 지음, 평단(평단문화사)(2014)


태그:#취업 비밀 노트, #평단문화사, #박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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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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