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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장군 34선 책 표지
ⓒ 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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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장군 34선>은 일본 삼국지학회 사무국장으로 활약하며 중국 사학을 연구해온 와타나베 요시히로 와세다 대학 교수의 저작이다. 후한의 멸망부터 위촉오로 천하가 삼분되고 서진에 의해 통일되기까지를 서른 네 명 명사의 삶을 통해 돌아본 <삼국지 군사 34선>과 짝으로 저술되었다.

저자는 중국 삼국시대가 명사라고 불린 지식인 계층이 주인공인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천하의 장비가 명사 유파와 어울리기 위해 살랑거렸고 관우가 경쟁의식에 불타 춘추좌씨전을 탐독했으며 장합과 능통 등이 전장의 막사에서도 명사들을 초빙해 강의를 듣는 척 했을 만큼 명사와 무장의 계층적 차이가 분명했다고 말한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시대의 주역은 명사계층이었으며 무인들은 철저히 조역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장비가 유파 집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유파는 장비와 말도 하지 않았다. 유파의 이런 태도에 장비는 버럭 화를 냈다. 그래서 제갈량은 유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비는 무인이지만, 당신을 경애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높은 뜻을 지니고 계신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아랫사람에게 조금 상냥하게 대해 주십시오." 그러자 유파는 이렇게 대답했다. "뛰어난 인물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천하의 영웅(여기서는 무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명성이 높은 명사라는 의미)과 교류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찌하여 병졸 나부랭이(원문은 '병자兵子') 따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140-141p)

<삼국지연의> 속 무인들의 활약, 진실은 어디까지일까?

하지만 후세 사람들이 삼국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와 상당히 다르다. <수호전>의 흑선풍 이규나 <서유기>의 손오공이 좌충우돌하며 때로는 과도하리만큼 무참하게 적을 쳐부수는 것처럼 <삼국지연의>에서도 이름난 무인들이 일당백의 기세를 뽐내며 전장을 질주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관우의 오관육참장과 천리주단기부터 시작해 장판파에서 백만 대군을 뚫고 아두를 구해오는 조운의 무용, 장판교를 홀로 가로막고는 단 한 번의 기합으로 적장을 꼬꾸라뜨린 장비 등의 활약은 가히 전설적이라 할 만하다. 이규와 손오공이 송강과 삼장법사보다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은 것처럼 <삼국지연의>의 독자들은 시대의 주역이었던 명사보다 무인들에게 더욱 애정을 느끼는 것만 같다.

와타나베 요시히로는 <삼국지 장군 34선>을 통해 이 시대에 활약했던 무인들의 실상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삼국지연의>는 물론 <정사>와 개별 인물의 별전 등을 규합해 객관적인 견지에서 무장들의 삶과 역할이 어떠했는지를 구성하고 있고 그들의 전략과 전술, 활약 등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고 있다.

책은 조조, 동탁, 여포, 손견, 관우, 장비 등 <삼국지연의>의 주역들은 물론 교현, 황보숭, 위관, 가충, 손호, 사마염 등 소설에서는 다소 소외된 인물들도 담아 시대를 보다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

책이 담고 있는 장군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라 할 수 있다. 하나는 세력의 우두머리인 군주이며 다른 하나는 명사인 동시에 일군을 이끄는 유장(儒將)이고 마지막으로는 군의 지휘에 특화된 순수 무장이다. 조조와 동탁, 손견, 유비, 유언 등이 첫 번째 그룹에 속한다면 교현, 황보숭, 위관, 가충은 두 번째이고 관우, 장비, 조운, 마초, 위연, 전위, 허저, 황개 등은 마지막에 속한다고 하겠다. 책은 이들이 각기 어떤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어떻게 싸웠는지를 총제적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독자로 하여금 시대의 진면목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에 따르면 손무가 남긴 병법서 <손자>에 기초해 약간의 응용을 더한 것이 이 시대 군대 운용방식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고 한다. 특히 지금까지도 <손자>의 가장 권위있는 주석의 저자로 남아있는 조조의 병법과 <제갈량집>에 기록된 제갈량의 병법 사이에서 유사점과 차이점을 짚어낸 부분은 단편적이긴 하지만 다른 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흥미로운 대목이라 하겠다. 책은 이처럼 당대 무장의 조건을 간략하게 규정지은 후에 시대의 중심에서 활약한 34명의 장군을 추려 그 각각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여러 사료를 통해 체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삼국지연의>의 애독자라면 34명의 인물들을 열전 형식으로 접할 수 있다는 점 만으로도 상당한 흥미가 동할 것이다. 더불어 명사를 중심으로 바라본 저자의 시각을 통해 당대의 시대를 바라보면 소설적 상상력에 기초해 구성되었던 기존의 삼국지 세계가 재편되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삼국지 장군 34선>을 읽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덧붙이는 글 | <삼국지 장군 34선>(와타나베 요시히로 지음 / 조영렬 옮김 / 서책 펴냄 / 2014.11. / 1만 2000원)



삼국지 장군 34선 - 조조, 동탁, 여포, 손견, 관우, 장비, 천하무적의 명장들

와타나베 요시히로 지음, 조영렬 옮김, 서책(2014)


태그:#삼국지 장군 34선, #와타나베 요시히로, #조영렬, #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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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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