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펀치>의 이태준(조재현 분) 검찰총장.

SBS <펀치>의 이태준(조재현 분) 검찰총장. ⓒ SBS


공교롭게도, 2015년 새해 벽두부터 공중파 3사의 월화드라마 SBS <펀치>, MBC <오만과 편견>, KBS 2TV <힐러>는 비리와 권력으로 더렵혀진 세상을 향해 전쟁 중이다. 물론 3사 드라마 각자가 싸우는 대상도,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꿋꿋하게 밀고 나가고자 하는 것만은 같다. 포기하지 말고 싸우자!

<펀치>의 등장인물들은 피터지게 싸우는 중이다. 각자가 자신의 숨길 수 없는 욕망으로 인해 법으로 굴러가야 할 사법 체계를 일그러뜨리고 있다. 그동안 여주인공인 신하경(김아중 분) 검사만이 줄곧 우직하게 법을 위해 자신을 던진다.

신하경은 이태준(조재현 분) 검찰총장의 형 이태섭(이기영 분)과 그 위에 오션캐피탈 실소유주 김상민(정동환 분) 회장을 잡으려다가 검사로서 직을 던지고 스스로 청문회장에 서기도 하고, 결국 감옥까지 가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전 남편 박정환(김래원 분) 검사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김상민 회장의 진술서를 폐기하는 조건으로 타협한 걸 알게 된 신하경은 애초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아가, 더 큰 그림인 오션캐피탈 김 회장과 이태준 총장의 밀착 관계를 밝히기 위해 뛰어든다. 심지어 그토록 믿고 따르던 윤지숙(최명길 분) 법무부 장관이 이태준 총장과 손을 잡으며 수사를 종료하라고 지시했음에도 따르지 않는다.

제대로 일하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

 27일 첫 방송을 시작한 MBC 새 월화드라마 <오만과 편견> 포스터.

MBC <오만과 편견> 포스터. ⓒ MBC


우직한 검사들은 또 있다. <오만과 편견>에서 어린 시절 자신이 놓친 유괴범 때문에 검사가 된 구동치(최진혁 분)와 그 유괴로 죽은 동생 때문에 검사가 된 한열무(백진희 분)다. 두 사람은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못해 용의자까지 되고 마는 민생 안정팀 문희만 부장검사의 회유와, 드러내놓고 위협을 마다하지 않는 실체, 그리고 그 하수인인 검찰국장 이종곤(노주현 분) 등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15년 전 사건의 실체를 밝힌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속해있는 민생 안정팀이 해체되는 위기에 빠져도, 신체적 위해 등의 위협을 당해도, 그리고 검사로서의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일관되게 우직하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법을 향해 정의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구동치는 15년 전 그날 자신이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혐의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그때의 사건 현장으로 다시 한 번 뛰어든다.

이렇게 <펀치>의 신하경, <오만과 편견>의 구동치와 한열무가 우직하게 정의를 향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 그 법적인 정의를 실천할 도구를 가진 검사들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검사들이 그저 자신들의 일을 제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법적인 정의가 바로 세워질 수 있음을 밝힌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갖은 협박과 위협과 회유가 반복되지만, 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의 정의는 달라질 수 있음을 어렵게 밝혀가는 중이다.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 늘 만만한 건 아니다. <힐러>의 김문호(유지태 분) 기자는 방송국의 만류에도 진행하던 뉴스에서 돌직구를 던지고, 결국 데스크를 박차고 나오기에 이른다. 상위 1%의 기자이지만, 이제 그가 세상을 향해 소리치던 '마이크'를 잃었다. 하지만 김문호는 포기하지 않는다. 늘 언론의 정의를 실현하려던 자신을 회유하고 방해하던 거대 언론 대신, 비록 '찌라시'의 수준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올곧이 전할 수 있는 언론사를 꾸려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허락된 기자들만 출입이 허용되는 서울시장 후보자 언론 인터뷰 현장에서 김문호 기자가 몸담고 있는 '썸데이 뉴스'는 입장조차 할 수 없다. 김문호는 포기하지 않는다. '정공법'이 안 된다면, '게릴라'식으로 허를 찌르는 방식을 택한다.

바로 옆 약혼식장의 측근으로 위장한 서정후(지창욱 분)-채영신(박민영 분) 기자가 화려한 복장으로 봉쇄 라인을 뚫고 들어가고, 채영신이 도발적 의상으로 인터뷰장 한 가운데로 뛰어나가 서울시장 후보자에게 그와 관련된 섹스 스캔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어, 썸데이 뉴스 김문호 앵커의 그와 관련된 멘트가 이어진다. 세상에서 주어진 방식이 진실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캐가겠다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정의로운 캐릭터, 울림은 깊다

 8일 첫 방영된 KBS 2TV <힐러> 속 김문호(유지태 분) 기자.

KBS 2TV <힐러> 속 김문호(유지태 분) 기자. ⓒ KBS


이들이 비리를 밝히고자 하며 싸우고 부딪치는 대상들과 이들은 사실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정의에서 멀어진 건 어쩌면 '한 발자국', 바로 거기에서 지금의 현격한 차이가 만들어 진다.

김문호의 형이자, 메이저 언론사 사주이며, 권력의 '개'로 살아왔던 김문식(박상원 분)은 자신의 그 첫 '한 발자국'을 회상한다. 1980년대 자유 언론의 수호자로 개조된 트럭을 몰고, 서울 하늘 곳곳에 진실을 알리기에 용기를 냈었던 김문식은 그 자신과 사랑하는 여인의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정의를 외면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오만과 편견>에서 끊임없이 정의와 타협의 길을 오고가는 문희만 부장검사 역시 수사를 하던 과정에 저지른 뺑소니 사고를 덮기 위한 한 걸음이 그를 그룹 화영의 개로 만들었다. 또, <펀치>에서 우직하게 정의의 편에 섰던 윤지숙 장관이 한 걸음을 내딛게 만든 것은 바로 아들의 병역 비리였다.

기성세대가 일신상의 이유로 세상과 타협하는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그들이 추구했던 정의가 무너져 내렸던 것을 알기에, 아니 그 실체를 모르더라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에, 젊은 그들은 우직하게 자신들의 정의를 고수하고자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럴수록 그들의 정의가 위태위태하고 때론 안타깝게도 느껴지는 것이다. <펀치>에서 유일하게 강직한 인물은 여주인공 신하경이지만, 보는 시청자는 그런 그녀에게 감정이 이입되기 보다는, 때론 그 고지식한 정의가 안타까울 정도로 '융통성 없어 보일'뿐이다. 그런 그녀보다는 때론 아내를 구해내기 위해, 때론 입신양명을 위해, 때론 모시는 분을 위해 타협도 마다하지 않는 박정환에게서 인간적 향기를 맡는다.

<오만과 편견>도 마찬가지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우직한 구동치와 원론적 질문을 던지는 한열무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가를 저울질하면서 그래도 차악을 선택하려 애쓰는 문희만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잡기 위해 그녀의 아이를 외면하고 평생 그것을 덮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힐러> 김문식의 사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젊은 그들의 정의는 어쩐지 불안하고 어설픈데, 노회해서 타협이 익숙한 저들의 편의는 익숙한 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화법이 거기에 가깝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것들은 세 드라마에서 밝혀지는 권력의 온갖 협잡과 비리들이 결국 누군가의 개인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들이다. 인간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한 발자국'이 결국 이렇게 흐트러지고 썩은 내 나는 권력형 비리와 스캔들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드라마는 각종 사건을 통해 상징적으로 설명해 낸다.

그래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정의가 주는 울림은 강하고 깊다. 어렵게 다시 마련된 앵커의 자리, 좁은 스튜디오, 단 한 대의 카메라, 그것을 앞에 두고 김문호는 말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마련한 썸데이 뉴스가 계속될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말을 맺는다. 그저 한 마디 말에 불과한데 여운이 오래 간다.

이 희박하고도 어려운 진실을 말하기 위해 <힐러> <펀치> <오만과 편견>은 고군분투 중이다. '희망'으로 시작되는 한 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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