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단일 시즌 최다연승 기록(2008-2009시즌 19연승)을 보유한 신한은행이 우리은행의 연승 행진을 막아 세우면서 자존심을 지켰다.

정인교 감독이 이끄는 신한은행 에스버드는 지난 26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KB스타즈 2014-2015 여자프로농구 4라운드 경기에서 개막 후 16연승을 달리던 우리은행 한새를 61-55로 꺾었다.

이날 신한은행은 타이트한 압박수비를 통해 우리은행의 득점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신한은행의 승리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한 곽주영의 '허슬플레이'가 숨어 있었다.

여자농구 센터 계보 이을 유망주, 어정쩡한 선수로 전락

곽주영은 삼천포여고 시절 박찬숙-성정아-정은순으로 이어진 한국여자농구 센터계보를 이을 재목으로 꼽히던 '초특급 유망주'였다. 실제로 고교 마지막 해엔 전국대회 4관왕에 오르며 국내에서 맞수를 찾기 힘들었다.

곽주영은 200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당연히' 전체 1순위로 금호생명에 지명됐고 첫 시즌부터 평균 9.7점 3.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다. 곽주영은 스몰 포워드부터 센터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는 '신개념 빅맨'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프로에서의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03년 여름리그에서 곽주영은 17.6득점 6.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금호생명의 에이스로 떠올랐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너무 큰 부담을 떠안은 것이 문제였을까. 곽주영은 2004겨울리그에서 9.7득점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 해 겨울 국민은행(현 KB스타즈)로 트레이드됐다.

곽주영이 이적했을 당시 국민은행에는 정선민(하나외환 코치)과 신정자(KDB생명 위너스)라는 쟁쟁한 빅맨들이 있었다. 곽주영이 선배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포지션 변경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큰 체구가 장점이던 곽주영이 외곽으로 겉돌기 시작하면서 파워와 높이의 이점마저 잃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결국 여자농구 전체가 주목하던 초특급 유망주 곽주영은 슈터도 빅맨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아까운 세월만 날려 보냈다.

곽주영은 2011-2012 시즌을 앞두고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KDB생명으로 이적해 새출발을 다짐했지만 두 시즌 만에 신한은행으로 트레이드됐다. 하지만 신한은행 이적은 곽주영의 선수생활에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신한은행 이적 후 블루컬러워커 변신... 궂은 일 책임진다

사실 신한은행에 오기 전까지 곽주영이 여자프로농구에서 차지하던 위치는 '외곽슛이 떨어지는 슈터' 혹은 '골밑에서 경쟁력이 없는 빅맨'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오랜 슬럼프로 인해 바닥까지 떨어진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곽주영은 신한은행에서 또 한 번의 변화를 선택했다. 김단비와 하은주 그리고 외국인 선수까지 합류한다면 신한은행의 공격력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이다. 반면 골밑에서 궂은 일을 담당해줄 소위 '블루컬러워커' 타입의 선수가 부족했다.

곽주영은 호화군단 신한은행의 약점이던 '음지'를 담당했다. 득점보다는 리바운드,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하며 팀을 위해 코트에 몸을 날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곽주영은 신한은행 이적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13-2014 시즌 8.3득점 4.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신한은행의 골밑에서 소금 같은 활약을 펼쳤다. 곽주영은 이번 시즌에도 6.3 득점 5.2리바운드(14위) 0.6블록슛(8위)을 기록하고 있다.

노련미가 쌓인 곽주영은 이번 시즌 시야도 넓어졌다. 지난 시즌까지 프로 통산 평균 어시스트가 0.7개에 불과했던 곽주영은 이번 시즌 평균 2.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골밑에서 외곽의 비어 있는 동료들을 발견하는 시야를 갖추게 된 셈이다.

우리은행의 연승을 저지한 26일 경기에서도 곽주영은 8득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17득점 9리바운드의 카리마 크리스마스, 16득점 9리바운드의 김단비에 비하면 다소 초라한 기록이다. 하지만 곽주영은 31분 24초 동안 코트를 누비면서 양지희, 샤데 휴스턴 같은 우리은행의 빅맨들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32세가 되는 곽주영이 갑자기 전성기 시절로 돌아갈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팀을 위해 헌신하는 곽주영은 경기당 평균 15점 이상을 기록하던 20대 초반의 그녀보다 더욱 환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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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 에스버드 곽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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