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일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4 출정식의 김봉길 감독

2014년 3월 2일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4 출정식의 김봉길 감독 ⓒ 심재철


안녕하세요. 김봉길 감독님.

아니, 안녕하시지 못하시겠군요. 7년 간 온 열정을 바친 팀으로부터 버림받은 감독님께 안녕하신가 하는 인사말은 적절하지 않겠네요. 오래된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2003년 인천 유나이티드 FC 창단 때부터 지지해 온 입장에서 그 자리를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2008년 처음 인천에 오셔서 코치직을 수행할 때는 몰랐는데 김봉길 감독님과 제가 동갑이더군요. 그래서 두 차례나 그 어려운 감독대행을 맡으셨을 때부터 남다르게 느껴졌나 봅니다.

그동안 수많았던 고비를 넘고 인천 유나이티드를 박진감 넘치는 팀으로 만들어놓은 감독님을 달랑 전화로 해고시켰다니 유정복(인천시장) 구단주를 비롯하여 김광석 인천 유나이티드 대표이사 등 구단 수뇌부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김광석 대표이사는 이번 시즌을 시작하는 인사말을 통해 '항상 시민과 함께하는 구단, 인천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구단, 시민 통합을 이루는 구단'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아울러 유정복 인천시장(구단주)도 인천 유나이티드를 '시민의 자랑이 되는 팀'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저들은 겉으로 내뱉는 말과 실제 행동, 더 나아가 시민구단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 의식조차 다르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입니다. 두 차례나 감독대행을 맡아서 바늘방석에 오른 감독님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만신창이가 되어 가던 팀의 경기력을 이만큼 끌어올려 놓은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르나 봅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저 높은 곳에 앉아서 개념 없이 해대는 '갑질'이면 자신들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인 줄 믿나 봅니다. 저는 그래서 2015년 시즌 홈 개막전에 구단주와 대표이사가 숭의 아레나에 나타나면 땅콩을 봉지째 집어던질 생각입니다.

2012년, '봉길매직'의 감동이 아직도 밀려옵니다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은 2012년 봉길매직을 잊지 못합니다.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해 질 정도로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전임 허정무 감독이 2012년 4월 11일 광주 FC와의 홈 경기마저 1-1로 허무하게 끝내버리고 홀연히 떠난 뒤 김봉길 감독님은 두 번째 '대행' 꼬리표를 기꺼이 받아들었습니다. 펄펄 끓는 냄비를 맨손으로 받아든 것이나 다름없는 형국이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바로 나흘 뒤에 상주 상무와의 원정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으니 얼마나 피가 마르셨을지 상상조차 못하겠습니다.

김봉길 감독(대행)님은 이렇게 쓰러져가는 팀을 조금씩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해 5월 28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의 원정 경기 1-3 패배 말고는 감독대행으로서 팀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2점차 이상의 완패 경기가 없었다는 점으로도 고무적인 기록들입니다.

그러더니 6월 23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상주 상무와의 홈 경기 1-0승리부터 본격적으로 봉길매직을 보여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석 달도 안 되어 팀의 체질을 싹 바꿔놓은 감독님은 이름에 붙은 '매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도록 그 해 8월을 가장 뜨겁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5연승(8득점 1실점) 그리고 1무승부라는 놀라운 기록이었습니다. 8월 23일 전주성에서 열린 강팀 전북 현대와의 원정 경기를 2-1로 이겨버렸으니 우리 인천 팬들은 날아갈듯 기뻤고 김봉길 감독님이 고마웠습니다.

역시 축구는 감독의 역량에 따라 팀 역사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감독님 덕분에 우리 인천 팬들은 그해 11월 28일 상주 상무와의 홈 경기 2-0 승리까지 무려 19경기 연속 무패(12승 7무)라는 경이로운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원정 경기를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K리그 클래식 각 구단의 서포터즈가 자신의 팀 감독 이름을 그렇게 크게, 자주 외치는 경우는 처음 경험했습니다. 지난해 당당히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여 7위로 시즌을 마감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리고 올해 이상할 정도로 시즌 초반에 경기가 안 풀린 위기를 넘어 상위 스플릿 문턱에까지 다다르게 하신 것도 잊을 수 없습니다.

올 시즌 강등 위기에서도 거뜬히 일어나도록 팀을 이끌어주신 김봉길 감독님의 노고와 지도력을 현 구단 수뇌부들은 전혀 모르나 봅니다. 경기장이나 연습장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선수 및 코칭 스태프와 호흡을 함께하지는 못할망정 단지 시즌 종료 후 최종 순위표(10위)만으로 팀 경기력과 감독의 역량을 평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하위 스플릿이 결정된 이후에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다고 이유들을 말하는데 구단에서 어떻게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를 대우했는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예고된 실패작이라 불렸던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때문에 9월 한달 간 무려 6차례나 원정 경기를 다니면서도 1승 3무 2패라는 결코 나쁘지 않은 결과를 냈다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울산과 수원이라는 전통 명가와의 원정 경기 1-1 무승부 결과나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 2-0 승리 기록은 안중에도 없던 것입니다. 이들이 모두 상위 스플릿에 당당히 올라간 강팀들이라는 것조차도 구단 수뇌부들은 모르나 봅니다. '성적 부진'을 해고 이유로 제시한다면 리그 시스템의 특성을 고려하여 최종 순위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감독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도 일정 기간에 어떤 면을 보여주었는가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일개 팬으로서 답답하고 속상해서 이미 해고 통보를 받으신 감독님에게 쓸모없는 넋두리만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죄송하고 또 미안합니다. 언제라도 인연이 닿으면 저녁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사시는 곳도 저와 그리 멀지 않은 인천 계양구 계산동인 것으로 들었습니다.

모쪼록 새해부터라도 인천 유나이티드보다 훨씬 인간적인 팀을 맡으셔서 계속 감독직을 수행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헛된 바람이겠지만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된 팀을 맡아서 수 년 사이에 그 팀을 K리그 클래식으로 끌어올리신 다음,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당당히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감독석에 앉지 마시고 원정 팀 서포터즈 관중석에 앉아서 유유히 전화로 작전 지시를 내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인천 유나이티드를 혼내준다면 지금 인천의 수뇌부가 저지른 만행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그들은 깨달을 것입니다. 물론 저 혼자만의 씁쓸한 상상이지만 그렇게 조금 늦더라도 가르쳐줘야 할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울 겨울이겠지만 모쪼록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동갑내기 감독님에게 부족한 글로라도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었습니다. 당신 덕분에 느낀 숭의 아레나에서의 박진감 넘치는 축구와 감동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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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김봉길 감독님
축구 김봉길 인천 유나이티드 FC 해고 K리그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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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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