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같던 금메달 시상식 후 관계자들과 함께한 금메달리스트 신종훈

▲ 꿈만 같던 금메달 시상식 후 관계자들과 함께한 금메달리스트 신종훈 ⓒ 김지현


지난 10월 3일, 인천아시안게임 복싱 남자 라이트플라이급(49㎏) 결승전. 신종훈 선수는 운명처럼 다시 만난 상대 앞에 섰다. 4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신종훈에게 8강전 탈락의 아픔을 안겼던 비르잔 자키포프 선수였다.

결과는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이었다. 4년 만에 리턴매치에서 신종훈은 승자가 됐다. 그리고12년 만에 한국 복싱 아시안게임 금메달 명맥을 이었다.

2년 전의 인연... 약속을 지킨 그

신종훈은 '진정한 청춘복서' 국가대표 복싱선수 신종훈

▲ 신종훈은 '진정한 청춘복서' 국가대표 복싱선수 신종훈 ⓒ 김지현

"2년 뒤 아시안 게임이 인천에서 열려요. 그 때는 꼭 금메달리스트가 되어 인터뷰 해 드릴게요."

신종훈 선수는 2년 전 약속을 지켰다. 지난 17일 전화를 통해 신종훈 선수와 인터뷰를 할 수가 있었다.

신종훈(26, 인천시청)과 나의 인연은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4학년, 학생기자일 때였다. '취재보도'라는 실습수업 당시, 학생 각자가 취재 아이템을 선정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마침 런던올림픽이 막을 내린 직후였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양학선·기보배 등 금메달리스트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정했던 아이템이 '런던올림픽 노메달 리스트'였다.

하지만 취재는 쉽지 않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재원을 찾았지만 일개 대학생이 국가대표 선수들과 접촉하기란 어려웠다. "아이템을 바꿔야 하나..."하던 찰나에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신종훈 선수에게 취재에 응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고작 23살 학생기자에게 왔던 그 행복했던 순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난 2012 런던올림픽, 신종훈은 세계랭킹 1위의 기대주였다. 하지만 16강에서 충격적으로 탈락했다. 하필 그는 금의환향한 펜싱팀과 함께 귀국했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 둘러싸인 그는 "저 펜싱선수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겨우 공항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취재하던 다큐멘터리 감독을 마주하고 펑펑 울고 만다.

그는 학생기자에 불과했던 나에게 담백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복서다운 패기로 말했다. 2년 후,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말이다.

그에게서 지난 2년동안 겪은 일에 대해 물었다. 런던올림픽 전까지, 신종훈 선수는 오직 올림픽만을 향해 달려온 시간들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손에 받아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펜싱선수 남현희와 함께  아시안게임 후 열린 청와대 만찬을 마친 직 후 남현희 선수와 다정하게 포즈를 잡았다

▲ 펜싱선수 남현희와 함께 아시안게임 후 열린 청와대 만찬을 마친 직 후 남현희 선수와 다정하게 포즈를 잡았다 ⓒ 김지현


그 때 그의 나이 겨우 스물셋, 그후 그의 방황이 시작됐다. 매일 술을 마셨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저 놀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고, 심지어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몇 개월을 방황했다. 하지만 아직 챔피언 복서를 놓지 못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항상 그를 응원하는 팬들과 가족이었다. 그는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복싱을 시작할 때 그 첫 마음처럼 말이다.

그는 늘 가난했다. 형편이 좋지 않아 아파트에 사는 것이 꿈이었고 내 방 하나 가지는 것이 목표였다. 시작은 그랬다. 집안 형편에 보탬이 되고자 조금씩 복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중학교 때 복싱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는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그토록 꿈꾸던 아파트로 이사를 갈 수 있게 됐다. 수 만 번의 스파링과 주먹으로 몸과 얼굴은 망가졌지만 늘 행복했다. 오히려 피멍과 상처는 그에게 '훈장'과도 같다.

갑작스러운 징계... 우리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얼굴이 망가져도 그저 웃지요 인천아시안게임 예선경기 직후 얼굴이 많이 상했지만 그저 웃을 뿐이다.

▲ 얼굴이 망가져도 그저 웃지요 인천아시안게임 예선경기 직후 얼굴이 많이 상했지만 그저 웃을 뿐이다. ⓒ 김지현


그러다 아시안 게임이 폐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국제복싱연맹(AIBA) 산하 APB(AIBA 프로 복싱)와 정식계약한 신종훈은, 지난 11월 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APB 대회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았다. 중국대회에 출전하지 않은 것은 계약 위반이라는 것이다.

신종훈 선수는 이때 전국체전에 나섰다. AIBA는 지난 5월, 신종훈이 APB 계약서에 출전을 약속하는 사인을 했다고 주장한다. 계약서에 따르면 APB 경기와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 아시안게임을 제외한 대회에는 출전할 수 없다.

하지만 신종훈 선수는 "당시 계약서 내용도 몰랐으며 철회가능한 임시계약서로 인지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렇게 아무도 책임지지 못한 채 벌써 선수자격정지 징계가 내려진지 1개월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1인 시위를 하다 몸져 누웠다. 그는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송년회 행사로 열린 '복싱인의 밤'에 초대받지 못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체육계의 문제들이 오직 운동만을 보고 달려온 선수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있다. 노메달리스트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된 지 이제 겨우 3개월이다. 이제 신종훈의 글러브는 모든 이가 힘을 합쳐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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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훈 아시안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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