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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베이션을 위해 비계와 공사 천막이 설치된 헬가 씨네 주택과 새로 지어진 주택 건물. 합벽 건축은 건물이 완전히 붙어있다.
 리노베이션을 위해 비계와 공사 천막이 설치된 헬가 씨네 주택과 새로 지어진 주택 건물. 합벽 건축은 건물이 완전히 붙어있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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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는 두 건물의 벽이 붙어 있는 합벽 형태 건물들이 많다. 유럽 대도시에서 있었던 여러 대형 화재들을 계기로 대부분 합벽은 방화벽(Brandwand)으로 맞붙어 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거의 모든 건물이 피해를 당한 독일 베를린에서는 합벽으로 붙어 있던 건물 중 일부만 복원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은 공터, 공원 등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건물 벽은 여전히 방화벽으로 고수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옆에 건물이 세워지지 않으면 합법적인 절차로 막혀 있던 벽을 뚫고 창문을 만들기도 했다.

신축 주택 계획에 헬가씨네 주택 창문이 있다는 사실 무시

작은 틈도 없이 서로 붙어 있는 두 집.
 작은 틈도 없이 서로 붙어 있는 두 집.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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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이었다. 칼빈거리 21번지 공동 주택의 2층 세입자 헬가 브란덴부르거(65)씨의 부엌과 욕실 창문이 외출을 다녀온 사이에 갑자기 벽으로 막혀 버렸다. 더 이상 창문을 열 수 없게 되고 당연히 햇볕도 들지 않게 됐다. 창문 밖 공터에서 시작된 신축 주택은 헬가씨네 주택 창문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공사를 한 것이다(참고로 독일에서 욕실에 해가 들어오고 창문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부동산 사이트에는 '욕실에 창문 있음' 그리고 '햇볕이 드는 욕실' 등을 강조해서 표기하기도 한다).

옆 공터에 새로 짓는 건물과 헬가씨가 살던 건물은 2008년 '테리알 도시개발 유한회사'라는 곳에 팔렸다. 그리고 그 회사는 헌 집을 리노베이션해 새집으로 단장하고, 바로 옆에 새집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당연히 공터에는 새 건물이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새 건물은 기존 건물의 창문을 고려해야 했다. 이 다툼은 소송까지 이어졌다. 세입자들은 당해 소송을 통해 공사를 중단하고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판결을 얻어냈다. 헬가씨의 변호사는 "드디어 세입자를 위한 올바른 판결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갑자기 창문이 막혀 버린 세입자들은 2010년의 판결 이후, 기존 월세의 20%를 덜 지불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사 중단과 벽 철거의 판결과 상관없이 신축 공사는 다시 진행되기 시작했다.

“임대인은 다시 벽을 허물어야한다.”는 제목의 기사, 하지면 실현되지 않았다. 아니, 실현 될 수 없었다. 이미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대인은 다시 벽을 허물어야한다.”는 제목의 기사, 하지면 실현되지 않았다. 아니, 실현 될 수 없었다. 이미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베를리너 차이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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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소음, 먼지, 진동 등으로 기존 세입자들은 생활에 큰 지장이 생겼다. 2010년 판결로 헬가씨네 주택 리노베이션은 중단됐지만,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설치돼 있던 엘리베이터는 철거되었고, 지하 창고는 세입자들의 동의 없이 갑작스럽게 정리됐다.

임대인들은 부인하지만, 기존 세입자를 쫓아내려고 일부러 더 큰 공사 소음을 유발하거나 공사 중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거나 비계와 공사 천막 등으로 해를 가리는 방법을 활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창문이 없어진 집안 환경과 끊임없는 소음으로 인해 기존 세입자들이 지겹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이사를 가게 하는 것이다.

월세, 집주인 결정으로 인한 리노베이션으로 2배 상승

2014년 11월의 모습. 지역 관청의 명령하에 비계와 공사 천막은 철거되었다.
 2014년 11월의 모습. 지역 관청의 명령하에 비계와 공사 천막은 철거되었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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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세입자들은 끊임없이 세입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매일 밤 모여 시위를 하고 대책을 세웠다. 멀쩡히 잘 살던 사람들은 리노베이션으로 인해 집을 떠나기도 했다.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 7명 만이 남았다. 마치, 지난 기사( 월세방에서도 쫓겨나는 노인들... 이래서야 되겠나)에서의 상황처럼 다른 선택지가 없는 사회적 약자만 남겨진 것이다.

남의 집 창문을 막은 채 세워진 평방 미터당 매매가 5000유로(약 680만 원)를 호가하는 신축 고급 주택에는 새로운 이웃이 입주했다. 방 혹은 집 크기에 따라 변동폭이 크지만, 2013년을 기준으로 베를린의 평균 주택 매매가는 평방 미터당 약 3100유로(약 420만 원)이다. 베를린이 소위 세입자의 도시로 불리는 것을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베를린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지는 일이다.

리노베이션이 이루어지면 2013년까지 월 390유로(약 52만 원)의 월세를 내고 있던 헬가씨는 약 710유로(약 96만 원, 세입자연합의 예상치)의 월세를 내야 된다. 하지만 그녀의 연금은 905유로(약 122만 원)에 불과하다. 월세가 오르면 고작 약 200유로(약 27만 원) 남짓 남게 되는 것이다. 즉, 지금의 생활 수준을 더 영위할 수 없다.

아무 문제 없이 멀쩡히 잘 살던 집의 월세가 집주인이 결정한 리노베이션으로 약 2배 가량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내부 공간에 문제가 있어서 보수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주변의 새 건물에 맞춰 외부를 단장하는 것에 불과했다.

리노베이션이 진행되면 평범한 연금 수령자는 이 집에서 계속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즉, 남아 있는 7명 중 상당수는 떠날 수밖에 없다. 최근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분 베를린에서 주택 리노베이션을 한다는 것은 헬가씨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돈을 더 지불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나가라는 뜻'인 경우가 많다.

2013년 법원은 임대인이 리노베이션을 통해 칼빈거리 21번지의 세입자들이 얻게 될 이익(난방비 절약 등)이 뭔지 분명하게 보여주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월세 상승과 리노베이션을 저지한 것이다. 하지만 리노베이션을 위해 설치한 공사 천막과 비계는 철거되지 않았다.

리노베이션을 예정되어있던 헬가씨네 주택은 지난 몇년간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채 오히려 훼손이 되기도 하였다.
 리노베이션을 예정되어있던 헬가씨네 주택은 지난 몇년간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채 오히려 훼손이 되기도 하였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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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곳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이들로만 만들어질 수 없고, 가난한 사람들로만 만들어질 수 없다. 그 어떤 도시에도 빈곤층은 존재하고, 그 어떤 도시에도 부유층은 존재한다. 하지만 탄압 받고 고통 받는 것도 사회적 약자이고, 포기하고 떠나야 하는 것도 사회적 약자다. 하지만 추억이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쉽게 정든 동네를 떠나기란 어렵다.

지난 수십 년간 독일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월세가 상승했음에도 베를린의 월세는 다른 유럽 주요 도시에 비해 여전히 저렴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 혹은 다른 도시 사람들이 보기에 베를린 사람들은 바라는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난 2014년 여름이 돼서야 해당 지역 관청은 비계와 공사 천막을 철거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리노베이션이 중단된 상태에서 임대인이 헬가씨가 사는 주택에 비계와 공사 천막을 계속 설치해 둘 합당한 이유를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결정이었지만, 1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 판결이 있기 전 오랫동안 공사 천막과 비계로 인해 햇볕이 가려진 채 살아야만 했다.

법정 공방 5년이 지나서야 이 집은 '젠트리피케이션(도시재활성화)을 이겨낸 기념비'가 될 수 있게 되었다. 힘겨운 싸움 끝에 작은 승리를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9명이 떠나고, 7명만이 남은 세입자의 지난 5년은 누가 보상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소위 젠트리피케이션과의 싸움이 더 이상 없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공사는 저지했으나 그 흔적과 세입자들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못한채 남겨져 있다.
 공사는 저지했으나 그 흔적과 세입자들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못한채 남겨져 있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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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건축가가 동일하게 설계한 두 집이 존재한다고 치자. 두 집의 가격은 어느 도시에 있는지, 어느 동네에 있는지 그리고 그 중에서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크게 변할 것이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했더라도 말이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라고 해도 동에 따라 그리고 층에 따라 가격은 달라진다. 하지만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이던, 외국인이던, 개를 끌고 온 사람이던 슈퍼마켓 혹은 백화점에서 해당 상품에 정해진 금액만 지불하면 필요한 것을 언제든 구매할 수 있다. 그 외에는 어떤 조건도 없다.

오랜 세월동안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누군가는 부동산으로 엄청난 이익을 보았고, 동시에 부동산으로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누군가는 정말 살기 위한 집을 찾았던 것이고, 또 누군가는 하나의 상품 혹은 하나의 투자 대상처럼 집을 거래했던 것이다.

2011년 타계한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도시 연구가였던 하트무트 호이저만은 집이 상품이 되어버린 현대 도시를 보며 이런 말을 했다.

"부유한 이들은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살고, 가난한 이들은 그들이 살아야만 하는 곳에서 살아야한다."

이 상황을 증명하는 독일 베르텔스만 재단의 연구결과도 있다. 독일 100개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된 이 연구에서는 한 가족이 살 만한 주택 중(최소 방 3개 이상, 75제곱미터 이상의 집) 27%만이 세후 가구평균소득의 30%로 월세를 감당할 수 있다고 분석되었다. 평균적으로 세후 소득의 18~24%를 주택 임대료에 지불한다는 독일부동산협회의 조사수치보다 더 높은 비율의 지출임에도 27%의 선택지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수준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감당할 만한 주택이 10% 미만인 도시도 다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가구평균소득의 60% 상황(100만 원이 평균이라면 60만 원의 소득이 있는 가구)이었다. 100개 도시의 주택 중 고작 12%만이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뮌헨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등의 월세가 높기로 유명한 대도시에서는 고작 1%만이 월세를 낼 수 있었다. 가난한 이들은 살아야만 하는 곳에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태그:#독일, #베를린, #주거, #권리, #젠트리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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