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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발트 마티아스 웅거스(Oswald Mathias Ungers)는 근대 독일 건축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유명한 건축가다. 또 현재 활동하는 유명 독일 건축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건축 교수이기도 했다.

베를린의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인근의 뤼초우 광장(Lützowplatz)에는 웅거스가 설계한 한 사회주택이 있었다. '도시 안의 도시, 녹색의 섬들 베를린(Die Stadt in der Stadt, Berlin das Grune Stadtarchipel)'이라는 도시 규모 프로젝트의 일환이자 IBA(베를린 국제건축전시회)의 일부로 지어진 사회 주택이었다. 그 역사·문화적 의미가 남달랐다.

현재 그 주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회주택을 사들인 민간 부동산 기업이 주택 임대보다 호텔 및 상업 시설 신축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2013년 2월부터 현재까지 이곳은 공터로만 남아 있다.

한국 서촌의 '대오서점'이라는 곳이 유명해서 갔더니 커피 전문점으로 바뀌어 실망해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또 한 여행객은 인도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베를린에 살던 사람도 베를린이 달라졌다고 불평한다. 세월이 흐르면 예전의 모습이 변화되고 새롭게 바뀌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십 년, 수백 년 전 모습의 일부를 고스란히 간직해온 유럽의 도시에서도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관광업의 발달이 도시와 관광지를 변화 시키고 있다. 더 큰 수익을 내지 않는다면 역사도, 문화도, 유명한 건축가의 건축물도 쉽게 사라진다. 도시는 항상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집단으로서 살아왔다. 그들은 동네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분식집에서 군것질하고, 이성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하고, 실연도 하고, 아이를 키우고, 함께 늘어간다. 돈 혹은 주식이 될 수 없는 추억과 삶을 가지고 있다. 낭만과 추억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 것의 가치를 낮게 측정하는 사회가 세계 곳곳에 퍼지고 있다. 화폐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이유로, 수익을 낼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삶과 추억이 밀려난다. 자본의 논리가 당연해졌다.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주택 철거 이후 오랜 기간 동안 공터로만 남아있다.
▲ 뤼초우 광장의 호텔 건축 예정 지역 주택 철거 이후 오랜 기간 동안 공터로만 남아있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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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누구의 것인가?(Wem gehört die Stadt?)'라는 질문은 베를린과 독일 전역에 걸쳐 일어나는 수많은 도시 문제를 다룰 때 항상 나오는 질문이다. 사실 답은 간단하다. 국가가 국민의 것이듯, 당연히 도시는 시민의 것이다. 그 가운데서 관광객을 배려하고, 외국인을 배려해가며 함께 도시를 가꾸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이 각국 여러 도시에서는 잘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너무나 당연해졌다.

트위터에 해시태그 '#Akelius'를 검색하면 전 세계의 여러 사람들이 수많은 언어로 한 기업과 자신의 주택 문제에 대해 쓴 트윗이 가득 나온다. 바로 '아켈리우스(Akelius)'라는 국제 부동산 회사의 임대인들의 글이다. 그 중에서는 독일어로 된 트윗도 꽤 있다. 최근 베를린의 슈프레 강 앞에 있는 한 주택 문제로 인해 생성되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Airbnb) 때처럼 도시 문제는 단순히 한 국가, 한 지역사회의 문제를 넘어 초국적 기업과 해외 자본이 얽힌 복잡한 문제로 발전했다.

한자 우퍼(Hansa Ufer) 5번지에는 1975년에 지어진 한 사회주택이 있다. 특별히 이 사회주택은 노인들을 위해 지어져서 건물 내 요양 서비스, 긴급호출 시스템과 주택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까지 있었다. 저렴한 임대료와 더불어 비슷한 상황의 노인들끼리 오랜 세월 공동체를 만들어온 곳이었다. 베를린에 있던 226개의 노인 전용 사회 주택 중 많은 수는 1992년 민간 부동산 회사에 판매됐다. 다행히도 한자 우퍼 5번지는 민간 회사에 팔리지 않았고, 거주민들은 2007년까지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2007년 베를린 시는 한자 우퍼 5번지를 아켈리우스에 팔았다.

사진 우측의 독일 국기가 어렴풋이 보이는 주택이다. 사진 좌측에 흐르는 강은 베를린을 관통해 흐르는 슈프레 강이다.
▲ 한자 우퍼 5번지 주택 사진 우측의 독일 국기가 어렴풋이 보이는 주택이다. 사진 좌측에 흐르는 강은 베를린을 관통해 흐르는 슈프레 강이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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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우측 상단에 5번지 표시와 함께 아켈리우스 회사의 표시가 붙어있다. 좌측 원형 창문에는 주택 주민들의 호소문과 신문기사들을 붙여 주민들과 행인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 한자 우퍼 5번지의 공동 주택 입구 입구 우측 상단에 5번지 표시와 함께 아켈리우스 회사의 표시가 붙어있다. 좌측 원형 창문에는 주택 주민들의 호소문과 신문기사들을 붙여 주민들과 행인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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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주택에서 살던 노인들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노인들은 인생의 노년기를 마무리할 것이라 생각했던 주택에서 하나 둘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켈리우스의 소유가 된 후 임대료가 계속 상승했다. 연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판매된 주택은 더 이상 사회 주택도 노인 전용 주택도 아니었다. 그 자리는 대신 젊은 사람들이 채웠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집에는 75세부터 97세까지의 약 30여 명의 노인들이 살고 있다. 더 이상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할 수도 없고, 상승하는 베를린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도 없는 이들이었다. 여전히 부동산 회사는 임대료를 더 높이려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 주택으로 보수하겠다며, 더 비싼 고급 주택으로 탈바꿈하려 하고 있다. 기존 거주민의 사회적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독단적 결정에 대항해 노인들이 들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거주민들은 'Change.org'를 통해 온라인 호소문을 발표하고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적극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그들의 사정과 아켈리우스의 세입자 억압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노인들의 월세 상승 저지 운동이라는 흥미로운 주제 그리고 감성적 접근은 여러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7월 말에 마무리된 첫 서명에 무려 3만 5000명이 참여했고, 현재 새롭게 진행 중인 두 번째 서명에도 약 6만 3000명이 참여 중이다.

주거권 지키기 위해 거대 기업과 싸우는 베를린 노인들

올해 초 개봉한 독일 다큐멘터리 영화 <세입자들의 반란(Mietrebellen)>은 베를린의 월세 상승과 그로 인해 기존 주민들이 쫓겨나는 상황을 그린다. 영화는 그 억압을 이겨내기 위한 시민들의 시도들 보여준다. 영화 상영 후 토론회에서 마티어스 코어스(Matthias Coers) 감독은 독일이 다른 나라에 비해 세입자 보호가 강한 편이지만, 예상치도 못한 이유로 세입자의 동의 없이 월세가 상승한다고 지적했다.

한자 우퍼 5번지의 주민인 크리스타 카에스씨가 <세입자들의 반란> 영화 상영회에 초대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자 우퍼 5번지의 주민인 크리스타 카에스씨가 <세입자들의 반란> 영화 상영회에 초대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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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우퍼 5번지에 일어나고 있는 일도 그런 예시 중 하나다. 유럽연합의 이산화탄소 감축이라는 거대한 목표 하에 유럽연합의 도시 주택은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한 보수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공사비로 인한 월세 상승분이 줄어드는 난방비와 유사하기에, 세입자는 공사 후에도 비슷한 수준의 월세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1년에 40~60% 이상 월세가 상승한다.

베를린에서는 이처럼 친환경 보수공사를 이유로 손쉽게 월세를 높인다. 집주인이나 부동산 회사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 빈곤 계층이 많이 사는 도심에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이 유입되며 빈곤층을 몰아내는 인구 이동 현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존 세입자를 쫓아내고 싶지 않지만 이산화탄소 감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른 거주민들이 거대담론을 활용하며 전문적 상술로 무장한 부동산 기업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저항밖에 없다.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진실을 널리 알리고,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 국회의원과 시장 등 정치인에게 탄원서를 넣는 것뿐이다.

아켈리우스는 세계 여러 도시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기존의 세입자를 쫓아내며 월세를 올려왔다. 베를린의 노인들은 이 세계적인 부동산 회사를 향해 칼을 빼들었고, 지금까지 잘 싸워왔다. 회사는 더 이상 논란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노인들은 멈추지 않는다. 베를린 시정부와 정치권의 대안을 촉구하고 있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그들의 집과 남은 삶이 부동산 수익이라는 가치에 의해 빼앗기게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아 저항하는 세입자들이 그들의 집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아 저항하는 세입자들이 그들의 집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 Berliner Wo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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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켈리우스는 스웨덴·독일·영국·캐나다 등지에 약 3만 8000채의 주택을 소유한 대형 부동산 관리 회사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는 영어, 스웨덴어, 독일어 등의 언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홈페이지에는 흑백처리가 된 채 언어 서비스를 준비 중인 여러 나라의 국기가 걸려 있다. 회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국기의 색깔이 흑백에서 칼라로 바뀔 테다. 그리고 그 나라의 도시에서도 임대료 상승에 신음하며 삶의 터전을 잃는 수많은 희생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자본주의 시대에서 도시는 언제나 돈을 손에 쥔 이들의 것이었다. 베를린 노인들의 주거권 쟁취 싸움은 도시는 누구의 것인지를 판가름하기 위한 현재진행형 사건이다. 사진 속에 남은 이들이라도 좋은 결과를 얻어 그들이 살던 주택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그들의 도시를 쟁취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태그:#독일, #베를린, #세입자, #월세,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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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과 도시를 이야기합니다. 1. 유튜브: https://bit.ly/2Qbc3vT 2. 아카이빙 블로그: https://intro2berlin.tistory.com 3. 문의: intro2berli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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