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장 콕토의 한 문장인 '세상이 혼란스러운 건 당신의 시선이 혼란스럽기 때문'으로 시작하는 영화 <갈증>은 편의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아키카주(야쿠쇼 코지 분)라는 중년 남성의 분노한 모습,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일본 사람들의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 문제없는 듯한 세상 속에 곪을 대로 곪아버린 상처와도 같은 비극들이 숨겨져 있다는 걸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경찰이었던 아키카주는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뒤, 아내의 자동차를 자신의 자동차로 들이받고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남성을 폭행해 경찰직에서 물러난 상태다. 폐인처럼 분노에 가득 차 지내던 아키카주에게 아내는 어린 딸 카나코(고마츠 나나 분)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아키카주는 평소 카나코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단지 이유 없는 미움의 감정이 카나코에게 있어왔는데, 아내와 함께 카나코의 과거 행적을 추리해가며 그동안 자신이 모르던 카나코의 삶을 알아가게 된다.

부녀지간,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을까

 영화 <갈증>의 주인공 '아키카주'.

영화 <갈증>의 주인공 '아키카주'. ⓒ GAGA


<갈증>의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는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소개했다. 극 중 아버지인 아키카주는 미친 악마와도 같은 존재다. 폭언과 폭행은 예사이며, 가족은 돌보지 않고 딸이 마음에 안 든다며 죽이려 하기도 한다. 가족들의 힘든 속내는 아랑곳없이 지내온 빵점 아버지다.

그렇게 태생이 악마적인 아버지에게서 난 딸 카나코 역시 악마 그 자체로 그려진다. 카나코는 청순한 외모와 사교성으로 매력을 발산하며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의 우상이 된다. 그러나 카나코와 엮이는 남자 아이들은 모두 비극적인 죽음을 겪게 되고, 여자 아이들은 인생의 쓰디쓴 맛을 보게 된다. 카나코는 겉보기와 달리 영혼이 피폐해져 마약과 성매매에 중독된 삶을 살고 있었다.

부녀지간인 두 사람은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키카주는 늘 아주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의 예쁘고 착한 아내와 딸이 있는 자신을 꿈꾸지만 그건 그저 꿈일 뿐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 속으로 빠져 한없이 내려가고 있는 카나코에게 아키카주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린 여자에 미친 중년 남성일 뿐이다. 아키카주 역시 카나코를 딸이라 여기지 않는다. 정신 나간 문제적 청소년으로 볼 뿐이다.

영화는 이렇게 극단적인 부녀지간을 통해 이 시대의 타락한 아버지 세대와 어린 세대를 모두 고발한다. 경찰·의사 할 거 없이 사회적으로는 멀쩡한 아버지 세대들이 섹스에 미쳐 폭력조직과 연계된 변태적 성매매를 자행하는 건, 요즘 부쩍 늘어난 성범죄 사건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마약과 폭행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어린 세대의 모습은 삐뚤어진 청소년들의 현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사람에 대한 탐구, 조금 더 깊이 있었다면

 영화 <갈증>의 주인공 '카나코'.

영화 <갈증>의 주인공 '카나코'. ⓒ GAGA


<갈증>이 놀라운 점은 올해 56세인 중견 감독이 마치 20대의 젊은 감독처럼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영상과 이야기를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고백> 등을 통해 알려진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CF와 뮤직비디오 경력으로 익힌 스타일리시한 화면 구성을 고스란히 영화에 옮겨놓았다.

쉴 새 없는 편집으로 계속된 장면 전환이 이뤄져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테크닉은 일견 서툴러 보이지만, 끝내 보는 이들이 적응하도록 만든다. 범죄 미스터리답게 사건의 진실과 이야기의 결말이 무엇인지 끝까지 알 수 없게 만들어, 카나코를 둘러싼 사람들의 사연을 보면서 추리하듯 관람할 수 있다.

일본의 국민배우로 불리우는 야쿠쇼 코지는 <갈증>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막장 인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맡은 아키카주는 비교적 좋은 이미지였던 그가 아니었으면 참아내기 버거운 캐릭터였으니 캐스팅이 '신의 한수'가 아닐까. 카나코 역을 맡은 고마츠 나나는 수지와 하연수를 섞어놓은 듯한 외모에 자유로운 이미지로 일본에서 각광받는 모델이자 배우다. 부성애가 결여된 가정에서 자신을 놔버린 소녀의 본성을 잘 표현했다.

두 배우 외에도 오다기리 조, 츠마부키 사토시, 니카이도 후미, 나카타니 미키 등 유명 배우들이 중요한 조연의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심한 폭력과 유혈 낭자에 잔인하고 끔찍하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사고와 난리가 벌어지는, 어찌 보면 괴작인 이 작품에 참여한 그들의 용기와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는 결국 아버지와 딸을 통해 부성애에 대해 탐구하며, 더 나아가 사람이라는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결혼은 했지만 사랑할 줄 모르는 부부와, 내가 낳은 자식인데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는 부모들, 그리고 사랑 없이 지내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만든다.

아쉬운 건 분명 그런 철학적인 영화이지만 과한 영상미와 폭력성 추구로 깊이가 부족해졌다는 점이다. 영화 시작에서 명시한 문장처럼 혼란스럽게 보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혼란스러웠고, 시각적 쾌감에 대한 '갈증'은 해소됐지만 철학적 깊이에 대한 '갈증'은 남는 작품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영화 <갈증> 상영시간 119분. 12월 4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갈증 나카시마 테츠야 야쿠쇼 코지 고마츠 나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