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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원한 것은 '파워 레인저'나 '로보카 폴리'가 아니었다. 핸드폰이었다. 아내가 쓰다가 사용하지 않던 폰을 수리하여 아들에게 주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엄마 아빠에게 전화하기로 약속하고...
▲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있는 처째 아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원한 것은 '파워 레인저'나 '로보카 폴리'가 아니었다. 핸드폰이었다. 아내가 쓰다가 사용하지 않던 폰을 수리하여 아들에게 주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엄마 아빠에게 전화하기로 약속하고...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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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이었다. 눈이 아프게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우리 아들이었다. 왠지 조금 들뜬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아빠, 저예요."

"어, 그래. 학교 끝났어?"
"예, 아빠 저 받아쓰기 백 점 맞았어요."

"정말? 축하해. 잘했어 △△야"
"근데요. 선생님이 잘 했다고 칭찬해주셨어요."

웬일인가! 칭찬이라니…. 그동안 받아쓰기 한두 번 백 점 맞았을 때도 아무 말 없으셨는데 칭찬을 해주셨다고?

선생님의 칭찬에 난리 난 아들!

"△△야, 선생님이 칭찬해 주셨어? 받아쓰기 잘했다고?"
"네, 받아쓰기 백 점 맞아서 축하한대요. 그리고 발표도 잘해서 또 칭찬해주셨어요"

아이가 이렇게 기뻐하는 건 처음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우리 아들이 이렇게 기뻐할 수가! 아이가 좋아하니 그냥 집에 들어가기 뭐해서 말랑말랑한 홍시 한 봉지 사 가지고 들어갔다.

"△△아, 선생님이 칭찬해주셔서 그렇게 좋아?"
"네, 정말 정말 좋아요. 친구들 다 있는 데서 칭찬해주셨어요"

기분이 하늘을 찌르는가 보다. 선생님의 '잘했다'라는 칭찬 한마디에 아이가 완전히 달라졌다. 해맑게 웃으며 선생님 자랑도 하고 다음에도 받아쓰기 백 점 맞아서 꼭 칭찬 듣고 싶단다. 이제는 수업시간도 재미있다네. 정말 좋아 죽는다.

그동안 받아쓰기며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거며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친구들 칭찬받는 거 구경만 하다 막상 자기도 칭찬받으니 정신을 못 차린다. 그렇게 좋은가?

생각해보니 나도 초등학교 시절을 비롯해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 대학시절에도 돌이켜보면 그다지 칭찬이나 '축하한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만, 첫째 아들의 오늘 이야기는 나를 잠시 생각에 잠기게 했다. 물론 사람마다 처지가 다르고 성격과 인성 또한 제각각이니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 있지만, 40년을 넘게 살면서 느끼는 것은 칭찬에 인색한 우리네 삶이다.

칭찬의 힘은 어디까지 일까?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을 쓴 '오토다케 히로타다'나 호주의 '닉 부이치치' 같은 사람은 팔다리가 없는 채로 태어났다. 심각한 육체적 장애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이들도 누구보다 불우한 인생을 살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인생에는 감동이 있었고 도전이 있었다.

말 그대로 그들은 '힐링'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들이 어릴 적 남들과 다른 자신의 육체를 원망하며 실의에 빠졌을 때 항상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은 사랑과 용기를 주는 긍정적인 말이었다고 한다. '참 귀엽구나', '우리 아들, 이것 참 잘하네?

오토 다케와 닉 부이치치 모두 팔다리가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을 현재의 삶으로 이끈 것은 긍정의 힘이요 칭찬과 배려의 삶이었다.
▲ 오토 다케의 '오체불만족'과 닉 부이치치의 'Hug' 오토 다케와 닉 부이치치 모두 팔다리가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을 현재의 삶으로 이끈 것은 긍정의 힘이요 칭찬과 배려의 삶이었다.
ⓒ 창해출판사, 두란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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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이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외면이나 동정이다. 자칫 그들 부모들조차 불쌍한 아들을 무조건 감싸주고 동정하려는 일관적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신감을 키워주었고 아들이 하려는 일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아무리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신을 돌보고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힘을 보태주더라도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육체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다케와 닉 부이치치는,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 위에 자신들이 세상을 향한 꿈과 도전 정신을 얹었다. 그리고 현재 그 누구보다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자국 유수의 대학과 대학원을 나왔고, 책도 썼으며 각종 강연에 사업가로서도 성공하였다.

오늘 우리 아들의 에피소드와 이 두 사람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특히 교육자로서 혹은 부모나 직장 상사로서 칭찬이라는 것이 상대에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것이다. 학교생활 내내 주눅 들고 수업 자체를 싫어하던 아이가 선생님의 '축하한다'라는 한 마디에 이렇게 즐거워하고 자신감을 얻다니 말이다.

오토다케나 닉 부이치치 역시 그동안의 삶 자체가 일관되게 즐거웠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눈물 나는 노력도 있겠지만 그 노력이 있게 한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긍정적인 말이 커다란 힘이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한국인만큼 칭찬에 인색한 민족도 드문 듯...

한편으론, 한국인들만큼 칭찬에 인색한 민족도 드물다는 생각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버젓이 나도는 이 사회에서 상대방을 향한 배려나 칭찬은 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영어권 국가 사이에 녹아 있는 '고맙습니다(thank you)'라든지 중국 사람들의 '좋아요(好)'는 특별한 상황에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수시로 입에 붙어 사용하는 말이다. 일본어의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라든지 '예, 좋습니다'라는 말 역시 실생활에 없어서는 소통이 안 될 정도로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하루에 수십 수백 번 일상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언어의 힘은 크다. 행동이 언어로 나타나기까지는 어느 정도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도 행동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나타내는 것 정도는 문화인으로서 생활에 습관이 되어 있다. 그러나 행동과 함께 언어로 표현하는 것까지는 아직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부부 간에도 사랑의 표현이 너무나 서툰 우리 삶이다. 더구나 '고마워', '감사해요', '축하해' 등의 말 또한 조금은 특별한 상황에서야 들을 수 있고 내뱉을 수 있는 말이다. 단순히 민족적 특성이나 언어 사용의 문화에서 오는 결과물로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다. 감사와 칭찬과 축하는 고래를 춤추게 할 수도 있게 하지만, 학업이나 직장 생활에 찌든 우리의 사회에 부드럽고 따뜻한 윤활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태그:#칭찬, #축하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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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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