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사이는 이토록 먼 것일까.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던 김광현(SK)에 이어 양현종(KIA)마저도 메이저리그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에서 저조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며 충격을 주고 있다.

KIA 구단은 지난 22일 공시 마감 결과 최고 응찰액을 통보받았으나 공개하지는 않았다. 선뜻 입찰 구단과 금액을 밝히지못한 것으로 볼때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임은 분명해 보인다.

속타는 KIA, 양현종 헐값에 내줘야하나

양현종에 앞서 김광현은 샌디에이고로부터 200만달러를 제시받았다. SK 구단이 김광현의 몸값으로 내정했던 500만 달러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KIA 구단 역시 내심 양현종에게 비슷한 몸값을 기대했으나, 입찰 결과 양현종의 포스팅금액은 김광현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보다 더 낮은 수준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에서는 양현종에게 최고 응찰액을 제시한 팀으로 미네소타 트윈스(100만 달러 추정)를 거론하고 있다.

KIA 구단으로서는 난감할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완전 FA 자격으로 먼저 미국무대에 진출한 윤석민에 이어, 이번엔 또다른 에이스 양현종을 '헐값'으로 보내주는 것은 구단 입장에서는 막대한 손해가 아닐수 없다.

그러나 선수의 의지가 워낙 확고한 상황에서 자칫 돈에 연연하여 앞길을 가로막는 모양새가 되는 것도 부담스럽다. KIA는 지난 2011년 해외진출을 원하던 윤석민을 억지로 잔류시켜서 2년을 더 함께했지만, 결과적으로 팀성적도 저조했고 윤석민의 활약도 기대에 미치지못했다.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윤석민을 그때 포스팅을 통해 미국으로 진출시켰더라면 서로 훨씬 좋은 모양새와 함께 KIA도 적당한 보상금액을 챙길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또한 앞서 SK 구단이 낮은 포스팅금액에도 불구하고 김광현의 의지를 존중하여 해외진출을 수락한 것도, KIA 구단에게는 비교가 될수 있는 대목이다. 김광현과 마찬가지로 양현종 역시 포스팅 금액과 별도로 해외진출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KIA 구단이 울며 겨자먹기로 양현종의 미국행을 승인할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너무 특출했던 류현진, 한국과 미국의 시각차

김광현과 양현종 한국을 대표하는 두 좌완 에이스의 연이은 포스팅 '굴욕' 해프닝은, 여전히 한국야구가 바라보는 메이저리그와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류현진(LA 다저스)은 2년 전 포스팅에 참가하면서 2573만7737달러33센트(약 280억원)를 받았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의 포스팅 참가 사상 최고 금액이었고, 미국 현지에서도 깜짝 놀랄 정도의 초특급 대우였다. 많은 국내 관계자들은 그만큼 한국야구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류현진과 동시대를 풍미한 윤석민-김광현-양현종은 미국 현지에서 그만큼의 평가를 받지못했다. 윤석민은 포스팅없이 완전 FA자격으로 미국무대에 진출했음에도 각 구단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받지못했다. 뒤늦게 볼티모어에 계약을 맺었지만, 데뷔 첫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전전하며 초라하게 마감했다. 김광현과 양현종은 포스팅에서 류현진 몸값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못하는 금액을 제시받는 굴욕을 당했다. 결국 한국야구의 위상이 높아진게 아니라, 류현진이 특출한 경우였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듯하다.

류현진은 국내 시절부터 구위, 제구력, 내구성, 멘탈, 경기운영 능력 등 다방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광현, 윤석민, 양현종 등이 경쟁자로 부각되던 시절에도 부동의 1인자는 류현진이라는게 대부분의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관된 평가였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않았다고 봐야한다.

분명한 시각차는 류현진은 미국 진출부터 철저히 '선발 요원'으로 분류된 반면, 윤석민-김광현-양현종은 어디까지나 '선발이 가능한 불펜 자원'에 더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어느 쪽에 무게가 쏠리느냐에 따라 선발과 불펜의 몸값 차이는 클수밖에 없다. 알고보면 세 선수는 모두 약점으로 평가받는 부분이 유사하다. 부상경력, 단조로운 구종, 이닝소화능력, 꾸준함, 멘탈에 대한 의문부호 등이고, 이를 한마디로 종합하면 결국 '내구성'으로 요약된다.

일단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계약을 제시받았다는 것만으로 잠재력은 인정받았다고 할수 있다. 다만 일정이 빡빡하고 치열한 빅리그에서 아직 풀타임 선발투수로 롱런할만한 확신을 심어주기에는 부족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미국 야구계가 한국 프로야구나 한국 정상급 투수들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이기도 하다.

타고투저의 시대였던 올시즌 국내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밴덴헐크(삼성)나 밴 헤켄(넥센) 등이 김광현이나 양현종보다 과연 가치가 떨어지는 선수들이었을까. 그렇다면 국내 정상급 토종 투수들이 포스팅에서 받는 냉대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동안 류현진같은 몇몇 초일류 투수들의 활약으로 인하여 다소 근거없는 환상에 빠진 감이 있던 국내 야구계와 언론에게도 '멘붕'과 함께 냉엄한 현실을 일깨워준 순간이었다.

양현종의 선택, 명분과 실리 사이

이제 관심은 양현종과 KIA 구단의 선택에 쏠린다. 김광현의 사례에서 보듯,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 본인의 의지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신중하고도 냉철한 선택을 내려야할 순간이다.

양현종은 아직 선택의 여지가 남아있다. 김광현의 결정은 양현종에게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조건에 얽매이지않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명분은 순수한 의미에서는 물론 아름답지만, 현실로 돌아보면 그만큼의 위험부담도 감수해야하는 선택이다.

차선책은 일본행을 꼽을수 있다. 메이저리그만 바라봤던 김광현과 달리, 양현종은 포스팅 응찰액이 낮을 경우 일본으로 진출하는 것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올해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둔 특급 마무리 오승환이 좋은 예다. 오승환은 다음 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현재 양현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 구단들도 존재한다.적어도 미국행보다는 더 좋은 조건의 계약을 제시받을 가능성이 높다. 양현종도 국내보다 수준이 더 높다고 평가받는 일본에서 실력을 검증받으면 2년뒤 미국행을 다시 검토해볼수 있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충족시킬수 있는 선택이다.

혹은 윤석민처럼 국내에서 2년 더 선수생활을 한 뒤 완전 FA 자격을 얻어 다시한번 해외 진출을 타진하는 것도 가능하다. 양현종은 앞으로 두 시즌을 풀타임으로 소화하면 2016시즌이 끝난 뒤에는 구단 동의없이도 해외진출이 가능한 완전 FA 자격을 얻게 된다. 어차피 KIA 구단은 다음 시즌 명예회복을 위하여 양현종같은 선발 에이스의 존재가 절실하다.

물론 그때는 한국 나이 29세로 서른에 근접한 나이가 된다는 것은 해외진출에 부담이 될수 있다. 국내에서 2014시즌보다 더 나은 성적을 올린다는 보장도 없고, 그때가서 지금보다 '더 나이든' 양현종이 미국 구단들에게 더 높은 평가를 받을지도 미지수라는 건 사실이다.

다만 지금같은 상황에서 양현종이 어차피 서둘러 미국에 진출한다고 해도 당장 빅리그 진입을 장담할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포스팅 금액이 낮다면 선수 본인의 계약조건도 불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당연하다. 양현종은 27세로 유망주가 아니라 이제 투수로서 전성기를 맞이해야할 시기다. 굳이 불확실한 도전에 모험을 걸 시간에,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을수있는 곳에 가서 실력에 맞는 대우를 받는 게 옳다. 또한 그때 가서도 국내에서의 FA 대박이라든지, 일본행같은 차선책이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해도 늦지않을 부분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김광현이나 양현종의 도전정신이 가진 순수성과는 별개로, 국내 정상급 선수들의 연이은 '헐값' 진출이 나쁜 선례가 될수있다는 점이다. 물론 실력이 부족하여 냉정한 평가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선수본인이 그런 대우도 감수하고 미국무대에 일단 도전하겠다면 그 의지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린 유망주가 아닌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정상급 선수들이, 굳이 한창 전성기를 맞이해야할 시점에 미국에서 불확실한 입지나 보직 변화 등을 감수해야 것은 선수 본인이나 한국야구계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 포스팅 때마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될 경우, 자칫 미국 구단들이 한국야구를 우습게 보고 상습적인 '몸값 후려치기'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젊은 선수들의 꿈을 향한 열정이 메이저리그라는 거대한 정글속에서 상처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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