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드라마에 있어 로맨스는 가장 큰 경쟁력이자 동시에 한계다. <미생>이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 편성된 이유를 멜로라인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듯, 지상파에 편성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극이든 장르물이든 남녀간의 로맨스를 필수조건으로 한다. 그래서 때로는 <미생>처럼 훌륭한 작품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긴 하지만, 그래도 멜로라인은 시청자를 불러 모으기 위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거짓말을 못하는 가상의 '피노키오 증후군'을 소재로 하는 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 역시 매회 박신혜와 이종석의 멜로라인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방송사를 배경으로 기자의 역할과 언론의 책임 등 매우 흥미로운 주제의식을 내세우면서, 드라마는 최인하(박신혜 분)와 최달포(이종석 분)를 예쁘게 포장하기 위해 상당히 애를 쓴 흔적이 엿보인다. 그만큼 멜로라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이다.

식상한데 끌리는 멜로라인, 이유는?

 지상파 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남녀주인공의 멜로라인. 주제의식이 강한 <피노키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상파 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남녀주인공의 멜로라인. 주제의식이 강한 <피노키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sbs


가령, 지난 2회에서 두 사람이 비를 맞는 장면에서는 고깔모양의 안내 표지판을 뒤집어쓴 채 눈을 맞추는 연출을 통해 한편의 동화 같은 순수함을 표현했고, 20일 방영된 4회 상상 장면에서는 이른바 '식빵 키스'를 선보이며 시청자에게 설렘을 안겨줬다. 멜로드라마에서 늘 화제가 되는 이색 키스신의 유혹을 <피노키오>도 피해가지는 못하는 듯 보인다.

게다가 최인하는 최달포에게 있어 원수의 딸에 다름 아니다. 인하의 엄마인 송차옥(진경 분) 기자의 자극적인 보도와 추측성 여론몰이 때문에 달포의 가족이 풍비박산 났기 때문이다. 원수의 딸을 사랑하는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수많은 고전과 현대극에서 차용했을 정도로 익숙한 구조다.

이쯤 되면 <피노키오> 속 박신혜와 이종석의 멜로라인은 "식상하다"는 비판이나 혹은 "결국 기자가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조롱에 직면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드라마에 대한 호평은 물론이고, 두 사람의 멜로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역시 지상파는 멜로의 힘인 것일까? 부정할 순 없겠지만, 우선은 드라마가 가진 '이야기의 힘'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앞서 언급했듯이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못하는 피노키오가 기자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하는 '기레기(기자+쓰레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언론의 책임과 사명감이라는 다소 묵직한 메시지가 극을 탄탄히 받쳐주기 때문에 시청자는 두 사람의 멜로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박신혜-이종석의 멜로라인이 진점됨에 따라 극의 흥미가 더해지는 <피노키오>

박신혜-이종석의 멜로라인이 진점됨에 따라 극의 흥미가 더해지는 <피노키오> ⓒ sbs


또, 인하와 달포의 성장과 멜로가 결국에는 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설득력을 불어 넣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는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닌 꼭 필요한 흐름과 전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멜로와 메시지의 균형이 전부는 아니다. 결국 멜로라는 것은 '남녀 주인공이 얼마만큼의 호흡과 시너지를 자랑하느냐'로 귀결된다. 아무리 예쁘고 멋진 남녀 배우가 주인공을 맡아도 두 사람의 '어울림'이 빛나지 못하면 멜로라인은 실종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피노키오>속 멜로라인이 호평 받는 것은 박신혜와 이종석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외모와 연기는 이제 막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풋풋한 청춘 로맨스를 표현하는 데 있어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을 만큼 딱 적당하다.

물론, 거기에는 순수함과 애틋함을 오가며 두 사람의 감정을 표현해내는 극본과 연출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하나하나 뜯어보자면 우연의 연속이고, 기존 드라마에서 답습한 전개와 구조가 한 가득이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화면 구성과 연출력, 또 다음 회를 기다리게 만드는 마력의 극본은 그 약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피노키오>를 보고 있자면, 로맨스라는 것은 지상파 드라마의 한계인 동시에 그 활용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가장 큰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케이블 드라마에 시청자를 빼앗긴 지상파 드라마가 로맨스를 앞세워 다시 부활의 신호탄을 쏟아 올릴 수 있을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saintpcw.tistory.com),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피노키오 박신혜 이종석 멜로 수목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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