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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해제
제목 '들꽃'은 일제강점기에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 침략자들과 싸운 항일 독립전사들을 말한다.

이 작품은 필자가 이역에서 불꽃처럼 이름도 없이 산화한 독립전사들의 전투지와 순국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으로, 그분들의 희생비를 찾아가 한 아름 들꽃을 바치고 돌아온 이야기다. - 작가의 말

 철쭉꽃으로,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이다. (장소제공; 강원도 횡성 자작나무숲 미술관)
 철쭉꽃으로,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이다. (장소제공; 강원도 횡성 자작나무숲 미술관)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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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輓章)이 십리를 잇다

왕산 허위가 경성감옥에서 감옥 개설 제1호로 교수형을 당하자 뜻있는 백성들은 피울음을 울었다. 일제의 감시 속에 고향 구미 임은동에서 치른 허위의 장례에는 만사(輓詞, 고인을 추모하여 지은 글)와 제문(祭文)이 장례기간 동안 이어졌고, 상여 뒤를 따르는 만장(輓章)이 십 리를 이었다.

하지만 구미 임은동 바로 이웃 마을 칠곡 오태동(현재는 구미시 오태동)에 사는 전 국무총리 장택상의 아버지 장승원(張承遠)은 비탄에 빠지기는커녕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까닭은 왕산 허위에게 경상도 관찰사 벼슬자리 값으로 갚기로 한 20만 원을 통째로 떼어먹어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 사연은 이러하다.

장승원은 집안 대대로 영남 제1의 만석꾼 갑부였다. 그는 벼슬이 경상도 도사였는데, 이웃 고을 왕산 허위가 고종 임금의 신임을 얻어 중추원의관, 평리원수반판사, 비서원승 등 고관에 오르는 것을 보고 20만 원을 고액권으로 바꿔 보스턴 가죽 가방에 넣고 한양(서울)으로 올라갔다. 그는 왕산 집 문을 두드렸다.

인동 장씨와 임은 허씨는 바로 이웃마을로, 오래전부터 세교가 있던 터라 허위는 문전에서 장승원을 쫓지 않고 맞아들였다. 장승원은 좌정 후 곧 원거리 방문 사유를 단도직입적으로 아뢰었다.

"소생이 돈은 좀 있사오니 나라 살림에 보태십시오."

그러면서 장승원은 허위가 자기를 경상관찰사로만 천거해 주면 가죽 가방에 든 거금 20만 원을 다 드리고 가겠다고 했다. 평소 강직한 왕산은 일언지하 거절한 뒤 장승원을 쫓으려 했다. 그 시절에는 벼슬을 돈으로 사는 일이 매우 흔했다. 하지만 꼬장꼬장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허위가 어찌 매관매직을 한다는 말인가. 그때 박상진(후일 대한광복회 총사령)이 왕산가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눈치채고 스승을 불러낸 뒤 슬며시 진언했다.

박상진의 진언


 대한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의사
 대한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의사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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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조선은 이제 곧 망합니다. 다시 나라를 되찾으려면 군대와 인재를 육성하고, 젊은이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일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지금 그 돈을 받지 마시고, 후일 나라가 망한 뒤 독립자금이 필요할 때 그에게 받기로 단단히 약조하시고, 그의 청을 못이긴 척 들어주십시오. 제가 보기에는 장승원이란 자가 저 돈가방으로 누구를 구워 삶건 틀림없이 벼슬자리에 오를 것입니다."

허위는 제자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알아 차리고 사랑에 든 뒤 장승원과 독대했다.

"그 돈의 액수가 얼마요?"
"20만 원입니다. 이 돈이 적으시다면 더 보태겠습니다."

당시 20만 원은 거금이었다. 허위도 장승원의 배포에는 놀랐다.

"음, 20만 원이라. 그만하면 됐소. 어쨌거나 내가 그 돈은 나라를 위해 쓰겠소. 지금 당장은 그 돈이 필요 없으니까 장(張) 공께 맡겨두겠소. 우리가 일본을 몰아내는 일이나 조선의 독립을 위한 일을 할 때 그 돈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장(張) 공에게 사람을 보낼 테니 그때는 지체 말고 주셔야 합니다."
"아무렴, 대감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 자리에서 수결(手決, 서명)을 둔 문서라도 써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소.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며, 일구이언(一口二言)은 견자(犬子, 개새끼)지요."
"그러고 말구요. 제가 어느 안전(案前, 존귀한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인데 감히 허튼 말씀을 올리겠습니까? 더욱이 두 집안 간은 선대부터 오랜 세교에다가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지호지간이 아닙니까."
"알았소. 그럼 물러가 기다리시오."
"대감 은혜 망극합니다."

 칠곡 부호 만석꾼 전 국무총리 장택상의 생가
 칠곡 부호 만석꾼 전 국무총리 장택상의 생가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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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헌병, 참 잘 하는 짓이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허위는 소정의 절차를 밟아 장승원을 경상도관찰사로 천거했고, 조정에서는 허위의 바른 성품을 신뢰한 터라 곧 장승원을 경상도관찰사로 제수했다. 장승원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그런데 왕산 허위가 그 당시로는 대역죄인으로 감옥소 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졌으니 장승원에게는 이런 횡재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되는 집안은 가지나무에도 수박이 열린다'고 하더니, 이 장승원이는 세상이 뒤집어져도 끄떡없군. 왕산과 독대로 아무도 본 사람도 없고, 게다가 왕산이 수결도 마다고 하였으니 물증 하나 없지 않은가. 일본 헌병, 너희들 잘한다. 참 잘 하는 짓이다.

칠곡 부호 만석꾼 장승원은 이웃 마을 곡소리는 들리지 않고, 자기 허파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하루에도 몇 차례씩 뒷간에 갔다. 그는 뒷간에 앉아 똥냄새도 꾸린지도 모르고 입을 벌린 채 헤헤거렸다.

'세상에 어찌 이런 횡재가 다 있는가! 사람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오래 살면 시어미 죽는 날도 있다고 하더니….' 

그는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는 세상이치를 그 나이에도 모르고 있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태그:#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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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