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종목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야구에서도 타국에서 '외국인 선수'로 생활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 리그에서 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함은 물론이고 낯선 언어와 음식, 낯선 환경에도 적응해야 한다.

이는 한국 리그로 넘어오는 외국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매 경기 성적에 대한 압박에 시달려야 하고 동료들과도 잘 어울려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리그를 얕잡아 보기라도 한다면 결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자신이 뛰는 리그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는 이름값이 높은 선수들을 제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4방의 홈런을 터트리며 MVP를 차지한 야마이코 나바로처럼 말이다.

화려한 경력의 거물들 사이에서 초라했던 나바로

 1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넥센 히어로즈 대 삼성 라이온즈 경기.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삼성 나바로가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넥센 히어로즈 대 삼성 라이온즈 경기.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삼성 나바로가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4 시즌을 앞두고 프로야구는 외국인 선수 보유를 3명으로 늘렸다. 다만 같은 포지션에 3명의 선수를 계약할 수 없게 제한을 두면서 2011년 코리 알드리지(전 넥센 히어로즈) 이후 자취를 감췄던 외국인 야수를 부활시켰다.

각 구단들은 수준 높은 외국인 야수를 선발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두산 베어스는 빅리그 통산 104홈런에 빛나는 호르헤 칸투를 데려 왔고 SK와이번스는 작년 시즌 템파베이 레이스 소속으로 91경기에 출전했던 '현역 빅리거' 루크 스캇과 계약했다.

당연히 야구팬들의 관심은 통합 4연패를 노리는 최고의 명문 구단이자 '부자 구단' 삼성 라이온즈에게로 쏠렸다. 삼성의 영입 예상 선수 중에는 전성기가 지난 빅리그 올스타 출신 거물 선수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자금에서 아쉬울 것 없는 삼성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영입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를 넘기고 삼성이 영입을 발표한 선수는 야구팬들에게 낯선 이름인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내야수 나바로였다. 지난 2010년 보스톤 레드삭스에서 데뷔해 빅리그에서 4년 동안 활약한 나바로는 빅리그 통산 타율 .206 2홈런 20타점에 불과한 무명 선수였다.

이미 삼성은 채태인-조동찬-박석민-김상수로 이어지는 훌륭한 내야진을 보유하고 있었다. 부상으로 인한 이탈이 생기지 않는 한 나바로의 자리는 마땅히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바로가 '국민타자' 이승엽을 밀어내고 지명타자로 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바로의 쓰임새가 애매해지자 군에 입대한 배영섭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외야수로 전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기도 했다(실제로 류중일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나바로의 외야전향을 고려하기도 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나바로에 대한 기대치가 삼성 내부에서조차 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득점권 타율 4할, 한국시리즈 4홈런

나바로는 작년 시즌 무릎 부상을 당한 조동찬의 복귀가 늦어지면서 시즌 초반부터 2루수로 출전했다. 그리고 방황(?)을 끝낸 나바로는 물 만난 고기처럼 맹활약하며 삼성의 강력한 톱타자로 자리잡았다.

정규시즌125경기에 출전한 나바로는 타율 .308 154안타(공동10위) 31홈런(공동5위) 25도루 118득점(3위)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특히 1번타자로 활약하면서도 98타점을 올리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는 박해민, 김상수 등 삼성의 하위 타선이 좋은 활약을 해주며 밥상을 잘 차려준 덕분이기도 하지만 나바로가 많은 타점을 올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407에 달하는 경이적인 득점권 타율 때문이다.

나바로는 타율 .322로 대활약을 펼쳤던 전반기에 비해 후반기 성적(타율 .288)이 다소 하락하면서 한국시리즈의 활약을 의심케 했다. 하지만 나바로는 한국시리즈에서 거포로 거듭나며 삼성 타선을 이끌었다.

1,2,4,6차전에서 홈런포를 쏘아 올린 나바로는 한국시리즈 6경기에서 24타수 8안타(.333) 4홈런 10타점 8득점으로 원맨쇼를 펼쳤다. 특히 우승이 결정되는 6차전에서는 3안타 5타점을 몰아치며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삼성은 외국인 제도 초창기에 활약한 찰스 스미스와 매니 마르티네즈, 틸슨 브리또 정도를 제외하면 외국인 타자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그 중에는 '야통' 류중일 감독의 흑역사로 남은 라이언 가코도 있다).

하지만 올 시즌 통합 4연패의 일등공신으로 떠오른 나바로로 인해 삼성은 그동안 외국인 타자의 부진으로 겪은 아쉬움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명성이나 실적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라는 걸 몸소 증명한 나바로의 화려한 플레이를 내년 시즌에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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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야마이코 나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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